제주의 귤은 맛있다. 초록색 귤이 맛있는 곳은 제주 뿐이라고, 수없이 많은 귤을 실컷 먹어본 지금까지도 나는 생각한다.
약 10년 전, 초록색 귤도 맛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해 준 곳이 제주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수학여행으로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난생처음 와본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용돈을 사용한 곳이 귤 파는 매대였다. 빨간 그물망에 귤 몇 알을 넣어서 3천 원인가에 팔고 있었다. 빨간 망 속에 비치는 귤 빛깔이 요상했다. 흔히 알던 덜 익은 과일의 짙은 초록빛.
'관광지라고 바가지 씌우나?'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노랗게 잘 익은 귤도 아닌 초록빛 자그마한 귤들을 보란 듯이 3천 원이나 하는 가격에 팔고 있는 늙은 어멍을 속으로 욕했다. 그녀가 맛 좀 보라며 귤 한쪽을 입 안으로 쑥 넣어주기 전까진. 귤을 씹었던 그 순간의 놀라움은 표현하기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상식이 깨지며 올라온 상큼한 배신감의 맛이었으리.
초록색 귤 맛에 충격받았던 그 고딩이 다 자라서 제주에 와 초록색 귤을 판다. 일주일에 한 번 송악산 인근의 농산물 판매장을 지키며 귤과 농산물 가공품을 판다. 송악산이 볼 만한 관광지라 거대한 관광버스가 하루에도 몇 대씩 들락날락거리니 꽤 괜찮은 장사 터다. 매장 바로 옆엔 관광객을 위한 공중 화장실이 있다. 볼 일을 보고 나오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붙잡아 장사를 잘만 하면 거의 매일이 대목이 될 거다. 그렇지만 오늘은 한가하다. 이렇게 한가한 날엔 세 가지 답을 고민하며 시간을 보낸다. 귤이 맛이 없거나, 손님들이 귤을 먹기 싫은 날이거나, 내가 장사에 소질이 없거나. 송악산 비석 옆에 자리 잡은 트럭에서 불법으로 귤을 파는 아줌마는 쉴 틈 없이 팔고 또 판다. 싸게 팔든 비싸게 팔든 어쨌든 잘 판다. 대목과 소목의 차이는 장사꾼이 만든다. 그게 내 결론이다.
청년들이 운영을 맡은 마을의 농산물 직판장은 매일 연다. 캠프 멤버들이 돌아가며 두 명씩 출근한다. 매장은 깔끔하면서도 톡톡 튄다. 청년들이 낡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영혼을 갈아 넣어 매장 안팎을 세련되게 꾸몄다. 처음 보면 사랑스럽고 오래 보면 정겨운 작은 매장이다. 청년의 꿈이 신기한지 사람들은 자주 매장을 두리번거린다. 가끔은 응원도 전해준다. 내가 만든 매장도 아닌데 그럴 땐 내가 괜히 벅차다. 나도 참 주책이다. 매뉴얼도 꽤 섬세하게 잘 짜여 있다. 처음 오는 스텝들도 매뉴얼대로만 하면 크게 어렵지 않다. 장사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청년들의 노력과 시행착오의 결과가 깔끔한 매뉴얼 책자에 녹아있다. 송악산과 그 앞바다가 잘 보이는 매장에서 청년들은 살기 위해 매일 애쓴다. 대목이든 아니든, 매일 문을 여는 매장은 매일 바쁘고 간절하다.
귤이 다 팔릴 때쯤 다시 귤이 입고된다. 오래된 귤보다 탱글하고 상큼한 귤들이 노란 컨테이너에 담겨 몇 개씩 들어온다. 옛 귤도 새 귤을 시기하며 마지막 향을 발산한다. 옛 귤과 새 귤이 교차하는 매장에서 귤의 순환은 향기롭다. 새 귤을 예전의 그 빨간 망에 담아 6천 원에 판다. 그때보다 가격이 두 배로 뛰었으니 새삼 내가 어른이 될 만큼 시간이 지났음을 느낀다. 귤 값은 그때의 두 배인데, 나는 두 배만큼 자라진 못 한 거 같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 들어온 귤 맛이 조금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