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사랑하는 편이 아니다. 여행을 계획하면 짐을 싸고 풀고 다시 싸는 과정의 번거로움과, 먼 거리를 이동하는 피곤함과, 낯선 잠자리의 불편함과, 어쨌든 꽤 큰돈을 소비해야 하는 부담 등 여러 가지 부정적 요소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았다. 특히 외로움과 싸우며 홀로 떠나는 여행은 막연하고 두려웠다. 언젠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보자는 다짐도 20대가 다 지나도록 미뤄두고 있었다. 늘 사람을 그리워하고 외로워하는 사람이라 여행에 쓸 시간에 동네에서 지인들과 소주 한 잔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제주로 떠난 셀프 유배가 내게는 어쩌면 태생적 외로움과 싸워 이겨보려는 노력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어쨌든, 나는 제주에 왔다. 그것도 혼자서, 무려 한 달이나. 다행히 이곳엔 사람이 있다. 아니,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 사실만으로 내 유배는 오히려 즐겁다.
나는 밥을 참 잘 먹는다. 먹는 것을 좋아해 뭐든지 잘 먹고 또 많이 먹는다.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은 함께면서도 또 별개다. 공용 주방을 함께 쓰면서도 각자의 재료로 각자의 요리를 해서 따로 먹는다(물론 밤마다 파티를 열거나 하여 함께 먹는 경우도 많지만). 먹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도 있고 먹을 걸 즐기지 않는 여행객도 있지만, 어쨌든 먹지 않으면 여행을 할 수 없다. 여행과 밥은 뗄 수 없다. 그래서 나도 공용 주방에서 혼자 어설픈 밥을 차려 먹었다. 주로 시리얼이나 3분 요리나 인스턴트식품을 먹었다. 그렇게 먹는 밥은 즐겁지 않았다.
그러다 식구가 생겼다. 이곳에 와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의 고마운 제안 덕이다. 밥 먹었냐는 평범한 안부에서 대화를 시작했고, 밥을 제대로 못 차려먹는 나를 위해 자기가 쓰는 방 사람들과 장을 함께 보고 같이 식사를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당연히 너무 좋다고 대답했다. 뛸 듯이 기뻤다(창피해서 뛰진 않았다. 대신 심장과 눈빛으로 폴짝거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셀프 유배인데 외로운 삼시세끼 걱정도 덜다니. 이래도 괜찮은가 싶었다.
식비를 모아 함께 장을 보고 밥을 먹을 사람들은 다섯 명 정도였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 우리는 우리를 식구로 부르기로 했다. 낯설고 먼 제주 땅에서 식구라는 단어는 괜히 더 벅찼다. 게스트하우스는 본질적으로 공간만 공유하는 개인들의 장소인 만큼 개인을 제약하는 규칙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개인당 하루 재료비를 얼마로 책정할 것인가, 식사시간은 언제로 할 것인가 등 식사의 중요성만큼 식구의 규칙을 정하는 일은 엄숙하고 진지했다. 그래서 꽤 오랜 논의를 통해 식구의 규칙이 완성됐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많은 끼니에 식구들과 밥을 먹는다. 그래서 밥이 맛있고 기쁘다. 앞으로도 식구들과 오래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끼니를 함께 할 때마다 떠날 날과 이별할 시간은 가까워진다. 그래서 어떤 날은 문득 밥이 슬프다. 나는 식구들과 밥과 국과 반찬을 먹으며 기쁘고 슬프다. 기쁘고 슬프게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 그들이 나의 새로운 식구다.
11월. 넷이 시작한 식구가 늘었다. 어느새 함께 만들고 먹고 치우는 식구가 열 넷이다. 식구가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밥을 더 많이 짓거나 반찬을 더 많이 만들거나 찌개를 더 큰 솥에 끓이는 일과 다르다.
하나하나가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는 일이 주방과 밥상의 숭고함 앞에서 벌어진다. 매 끼니가 전쟁이고 환희고 역사고 기쁨과 슬픔의 만남과 충돌이다.
그러니까 매 끼니 우리 밥상 앞에는 열넷의 우주가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