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와 마노르블랑과 탄산온천

9/24

by 차구마

<추사관>

추사 선생을 찾았다. 숙소에서 버스로 20분 정도면 가는 거리에 추사관이 있었다. 제주에 유배 왔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머물렀던 장소에 기록관을 만든 곳이다. 제주에 와서 처음 혼자 나서는 나들이이자 관광이기도 했다. 교통편이 불편하니 시간이 날 때 가까운 곳부터 돌아보자고 생각했다. 첫날 버스를 타고 오는 도중 지나쳤던 추사관이 떠올랐다. 즐겨보던 티브이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혼자서 숙소를 나섰다. 하늘은 맑고 또 맑아서 밖을 나서기 좋은 날이었다.


낯선 곳에서 대중교통을 타면 신경이 곤두선다. 길눈이 어둡고 방향감각이 둔해 길을 자주 헤매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면서 매 정류장마다 노선표를 확인했다. 버스 밖으로 지나가는 동네의 풍경은 정겹고 낯설었다. 안내방송에 귀 기울이며 시선을 움직였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추사관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길을 헤맸다면 오히려 더 즐거웠을지도 모를 만큼 제주는 곳곳이 예뻤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대로 추사관은 건물 자체가 아름다웠다. 그 멋들어진 추사관의 외형을 만끽하기도 전에 건물에 들어서 똥을 쌌다. 겨우 20분 동안 곤두선 신경이 장을 공격했던 모양이다. 추사를 뵙기도 전에 배설부터 하다니. 비누로 손을 씻으며 추사 선생에게 용서를 구했다. 다행히 구린내가 나지 않는 똥이었다.

바닥에 붙어있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찬찬히 움직이며 둘러보았다. 추사는 기록관 대부분의 공간에서 글로 존재했다. 조선의 뛰어난 지식인이자 중국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그의 지성은 고증학, 금석학, 서예, 회화 등 다양한 이름으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추사의 생애와 글과 그림을 찬찬히 톺아보았다. <추사체>라 불리는 추사의 서예와 그가 그린 유명한 문인화 <세한도>는 제주에 유배 온 뒤 만개한 추사의 재능이라 평가받고 있었다. 천재를 더욱 천재이게 하는 고립과 슬픔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스스로 제주 유배기를 쓰는 내게도 만개의 계절이 오길 다만 바랐다.

전시물을 둘러본 뒤 계단을 올라 밖으로 향하면 추사가 살았던 유배지가 재현되어 있다. 대문 같지 않은 대문인 정낭을 지나 터를 둘러보면 유배지 곳곳이 제주의 문화를 품고 있다. 추사는 낡은 초가집에서 묵었다. 짚으로 묶은 지붕의 처마는 낮아서 허리를 숙여야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추사는 집 터 곳곳에 모형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추사의 모형이었다. 한 사람의 인재가 유배를 온다는 것은 고립된 제주가 뛰어난 선생을 얻게 되는 일이었다. 추사가 유배 온 뒤 그에게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낙후된 탐라의 문화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수많은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분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유배지를 둘러보고 나오면 <세한도>의 그림이 추사관 건물과 나무의 배치로 눈 앞에 재현된다. 이번엔 똥이 마렵지 않아 그 모습을 충분히 만끽한 뒤 걸음을 옮겼다.

<마노르블랑>

추사관을 둘러보고 며칠 동안 못 썼던 글을 조금 쓰기로 했다. 적당한 카페를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꽤 유명한 카페가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었다. 태양이 뜨겁지 않고 날이 좋아 걸어서 가기로 했다(솔직히 버스비도 아끼고 싶었다). 풍경을 바라며 가는 도보 위에서 뜬금없이 매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마늘이 도보에 잔뜩 놓여서 말려지고 있었다. 마늘 몇 개 집어가도 괜찮다는 듯 무심하게 놓인 마늘 길을 지나가며 한산한 시골 동네의 정취를 느꼈다. 마늘은 알싸한 냄새를 고소하고 은은하게 풍기며 말라가고 있었다. 마늘 길 위 하늘은 유난히 파랬다.

꽤 긴 거리를 걸었더니 땀이 조금 났다. 카페로 가는 마지막 길은 언덕이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언덕을 오르는 내 뒤에 차 몇 대가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한 걸음씩 더디게 내딛는 나를 비웃듯 차들은 빠르게 언덕을 올라 사라졌다. '그래도 두 다리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괜히 지고 싶지 않아 걸음을 재촉했다. 땀이 조금 더 흘렀다. 괜한 오기는 전혀 쓸모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기만 했다. 빠른 걸음을 멈출 수 없다. 뒤에서 룰루랄라 다른 차가 또 오니까. 속 오니까.


도착한 카페 주차장엔 이미 차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야외에서 커피와 풍경을 만끽하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망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붐비는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조용조용 글을 쓴다니. 게다가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행복한 연인들의 주고받는 셀카 속에서. 걸어온 시간이 아까워 주문을 하고 일단 자리를 잡았다. 고급지게 7,000원짜리 요거트스무디를 시켰다. 스무디를 홀짝이며 글을 쓰는 고독한 글쟁이의 느낌으로. 최대한 세련되고 멋지게. 결코 외로워 보이지 않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글을 쓰다 보니 문장이 안 만들어진다. 특히 눈 앞에서 연인들이 꽁냥 거리는 순간엔 괜히 하늘만 쳐다본다. 젠장할 하늘은 또 왜 이렇게 이쁜지. 해가 낮아지면서 신나게 놀던 연인들이 슬슬 빠져나간다. 이제 은밀한 곳으로 가서 둘만의 사랑을 속삭이겠지. 그래, 잘 가라. 얼른 가라. 다신 오지 마라. 나는 언젠가 누군가와 반드시 다시 올 테니. 추사 선생이 다시 보고 싶다.


<탄산온천>

캠프의 보일러가 고장 났다. 며칠 동안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아마 오늘도 나오지 않을 거다. 사죄의 의미라며 캠프에서 산방산 탄산온천의 할인쿠폰을 나눠줬다. 평소에 대중목욕탕에 자주 가지 않지만 일단 챙겨 나왔다. 오늘은 좀 많이 걸었다. 추사관, 마노르블랑을 돌고 또 걸었다. 튼튼한 다리도 오래 걸으면 아프다. 청춘의 혈기와 사내의 오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아픈 다리도 쉴 겸, 찬물로 후딱 샤워하고 말았던 몸도 좀 불릴 겸 탄산온천으로 향했다. 물론 그곳까지 또 걸었다.


산방산 탄산온천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온천이다. 산방산 북서쪽에 자리 잡아 산방산의 정기를 가득 머금은 온천수에 사람들은 몸을 담근다. 원수탕은 다소 차갑다. 자연 그대로라는 30도 언저리 탕의 온도에 사람들은 몸을 맡긴다. 탕에 앉아 기다리면 김이 조금 빠진 사이다처럼 탄산 기포가 뽀글거리며 몸에 달라붙는다. 탄산수 속의 탄산이 몸의 혈관 속을 타고 들어가면 혈액순환도 잘 되고 근육통이나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단다. 믿진 않지만 탕에 몸을 오래 담근다. 몸이 조금 추워지면 온탕으로 옮겨간다. 온탕은 사골국처럼 뿌옇다. 탄산수는 열을 가하면 탄산칼슘이 되어 그렇단다. 원수탕처럼 기포는 올라오지 않는다. 그래도 탄산만 증발했을 뿐 천연 미네랄 등 좋은 성분은 그대로라고 했다. 역시 믿지 않는다. 원수탕과 온탕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니 시간이 꽤 갔다. 효능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몸이 풀리고 나른한 게 기분은 꽤 좋다.


캠프에서 새삼 밥을 차려 먹기 귀찮을 예정이다. 고기국수라도 한 그릇 먹고 가기로 한다. 검색을 했는데 주변에 마땅한 식당이 없다. 그래서 또 걷는다. 피로를 풀고 걷고, 다시 피로를 풀고 또다시 걷는 것이 내 두 다리고 내 인생이다. 나는 계속 걷고, 때론 뛴다.


제주에 몇 번 왔을 때도 고기국수는 한 번도 먹지 않았다. 그것 또한 신기한 일이다. 여행을 자주 간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것이 내 개똥철학이다. 그런데도 제주에선 고기국수 한 번 안 먹어봤다. 이 또한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 먹기로 했다. 식당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혼자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소주도 한 병 먹기로 한다. 물론 혼술도 처음이다. 조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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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국수를 시키면 설렁탕처럼 뽀얀 국물에 노란 빛깔 국수가 말아져 나온다. 두툼한 고기 덩어리와 숙주가 그 위에 올려져 있다. 국물부터 한 수저 떠먹는다. 제주 음식은 대체로 간이 슴슴하다. 고기국수의 간도 꽤 슴슴하다. 그러나 그 진한 빛깔만큼 국물 맛이 묵직하다. 만족스럽다. 소주 한 잔 곁들이니 금상첨화다. 혼자 여행, 혼자 관광에 홀로 카페. 홀로 목욕탕에 혼밥과 혼술까지. 오늘은 나 혼자다. 내 옆엔 소주 한 병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것으로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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