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비 소식이 있었다. 환상 속에서 제주의 하늘은 늘 파랬기에 구름이 잔뜩 낀 제주의 모습은 아직 낯설다. 비 내리는 제주도 나름 운치 있지만 교통편도 불편한 와중에 비가 오면 밖에 나가기 더욱 힘들어지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오늘은 빼박 숙소에서 뒹굴어야겠구나 생각하던 와중에 식구 누나의 고마운 제안이 들려왔다. 플리마켓이 크게 열려 구경 갈 건데 외출 갈 거면 가는 길에 데려다주겠다는 것. 당장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플리마켓 가는 방향에 있는 중문으로 가기로 했다.
중문은 하나의 거대한 관광단지를 이루고 있다. 푸른 바다의 동선을 따라 해변, 호텔, 박물관, 맛집까지 다양하게 모여 마을을 이룬다. 중문은 외지인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제주 아닌 제주의 동네다. 단지를 골고루 둘러볼 시간과 교통이 없었기에 오늘은 중문의 대포 주상절리만 보기로 했다. 구름이 조금 꼈을 뿐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식구 누나는 식구 둘을 더 태우고 흥겹게 달렸다.
30분을 달리니 이곳부터 관광지라고 말해주는 듯 야자수가 중문으로 향하는 길 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대포 주상절리 입구쯤에서 식구 누나는 나를 내려주고 마켓으로 떠났다. 나는 다시 또 혼자가 되었다. 혼자 놀기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서 시작이 언제나 쑥스럽다. 옆에서 맞춰 걸을 발걸음이 없으니 걸음의 속도는 서툴렀다. 혼자 놀기의 걸음마를 떼는 단계니까, 조금 더 연습이 필요했다.
그렇게 서툰 발걸음을 옮기니 주상절리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 곳에 매표소가 있었다. 성인 2천 원, 아이 1천 원쯤의 요금을 받고 있었다. 키오스크의 계산은 간단하고 철저했다. 에누리 없는 차가운 기계의 음성을 따라 티켓을 사면서 나는 아이의 시야에 대한 비용은 청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상절리 입구의 사무실 창밖으로 직원이 무심하게 손을 뻗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직원의 손 위로 티켓을 올려놓고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관문을 지나가면 주상절리가 보일 터였다.
주상절리라는 어려운 이름처럼 대포 주상절리는 어려운 모습으로 당당했다. 각각의 바위가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의 모형으로 깎여 나란히 붙어 서 있었다. 주상절리 사이사이를 약한 파도가 두들기며 상쾌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소리는 바람에 섞여 바다 냄새를 퍼뜨리고 있었다. 푸른 바다와 검은 현무암질의 바위 절벽이 만나는 공간의 분위기는 인위를 걷어낸 자연의 경이로움을 자아냈다. 사람들은 난간 너머 자연 세계를 만끽하며 사진기로 자연을 찍고, 자신을 찍고, 남을 찍었다. 절리를 뒤에 두고 사진기 앞에 선 사람들의 웃음은 아름다웠다. 찍을 사람과 찍어줄 사람이 옆에 없어서 나는 다만 자연을 몇 장 담기로 했는데, 렌즈 안 절리의 모습은 내 망막에 비친 모습보다 작고 초라해서 안타까웠다. 절리를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눈에 치여 금방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냥 떠나기 아쉬워 주상절리 공원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사람들은 덥고 습한 날씨에도 걸으면서 행복해했다. 그중 한 커플이 눈에 띄었다. 다소 더워 보이는 체크무늬 긴팔 셔츠를 맞춰 입고 공원 이곳저곳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와중에도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사랑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꽤 우습고 예뻤다.
공원 중심에는 키 큰 야자나무들이 서 있었는데, 남의 나라에서 크고 곧게 자란 녀석들을 보면서 나는 남의 땅에 머무는 나의 유배를 떠올렸다. 이 유배를 끝내는 날 나도 한 뼘 더 곧게 자라 있길 바랐다.
공원을 둘러보고도 떠나기 아쉬웠다. 주상절리를 한 번 더 보고 가기로 했다. 전망대엔 아까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문득 아깐 신경 쓰지 않았던 전망대의 나무 길이 다시 보였다. 위태로운 절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 길. 자연의 위대함에 가까이 가고자 했던 인간의 도전. 인위는 자연의 반대가 아니라 보완이라는 사실이 절벽 위 나무 길에 새겨져 있었다. 주상절리와 전망대 길을 멀찍이서 바라보다가 곧 걸음을 옮겼다.
주상절리를 빠져나와 다시 걸었다. 걷기는 유배의 고통을 만끽하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자주, 많이 걸을 것 같았다. 해변을 찾아 습기와 더위 아래 한참을 걸었다. 땀을 많이 흘려 윗옷이 축축했다. 가끔씩 몸에서 바다 냄새보다 지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바다 냄새와 지린 냄새가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어느새 바다 냄새가 강렬하게 치고 나왔다. 중문 색달해수욕장이었다.
바다를 느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눈으로 느끼는 것과 발로 느끼는 것. 셀프 유배를 온 뒤 눈으로는 실컷 바다를 느꼈다. 오늘은 발가락과 발바닥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10월이 다 되어가는 해수욕장에서도 사람들은 여름처럼 놀고 있었다. 나도 용감하게 바다에 발을 담갔다. 바다는 차갑지 않고 포근해 여름의 바다 같았다. 제주는 가을에도 여름의 바다를 간직해 푸르렀다. 파도에 쓸려온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다가 빠져나가는 감각이 오랜 추억처럼 되살아났다. 나는 파도와 모래의 간질임을 느끼며 해안가를 가만가만 걸었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히 좋은 날이었다. 쇼핑을 마치고 이제 태우러 온다는 식구 누나의 연락이 아니었다면 하염없이 걸었을 가을의 바다였다.
해변을 올라오며 발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물로 씻어낸 모래는 돌아서는 순간 발 구석구석에 다시 붙었다. 다시 씻어내고 몇 발자국 걸으면 모래는 다시 내 발을 찾아왔다. 모래는 내 발과 발에 남은 바닷물을 그리워하며 나를 자꾸 따라왔다. 자신이 살던 해변에서 엉겁결에 딸려 나와 내 발이라도 붙잡는 모래의 심정을 조금만 이해하기로 했다. 홀로 떨어져 나오는 건 나에게도 두려운 일이니. 벤치에 앉아 발가락을 말리고 있으니 멀리서 식구 누나의 차가 보였다. 오늘은 하루가 길었고 기뻐서 누나 차의 모습이 유난히 반가웠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