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간의 황홀, 김영갑과 두모악

10/15

by 차구마

날은 맑고 바람은 적당히 서늘해졌다. 제주는 서서히 바뀌는 하늘의 색과 바람의 질감을 통해 깊은 가을로 가닿고 있었다. 아침저녁엔 몸을 움츠릴 만한 추위가 찾아오다가도 낮동안의 따가운 햇볕과 함께 여름의 싱그러움을 잠시 되찾는다. 변덕스러운 가을의 마음은 제주와 육지가 비슷하다. 가을은 쓸쓸하기에 더욱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더욱 사랑하고 싶은 계절이다. 나의 유배는 가을에도 이어서 여전히 즐거울 예정이다.


내가 떠나는 날은 식구 누나의 회색 SUV와 함께 하는 일이 많으니 크게 감사한 일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아 식구들을 꼬깃꼬깃 태울 수 있는, 그 정겨운 이동수단의 운전석에 좋은 누나가, 조수석엔 내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음은 더욱 고마운 일이다. 바퀴가 구른 거리만큼 우리가 더욱 정겨워짐은 사랑스러운 일이다.

오늘은 누나와 나 둘이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맑던 하늘은 흐려졌고, 목적지에 다다르니 비가 왔다. 비 오는 날의 두모악갤러리는 추위를 잊거나 이길 만큼의 정경과 운치를 드러내며 성산에서 객들을 기다린다.

예술적 재능을 모두 제주에 쏟아부은 위대한 사진작가. 20년 동안 오로지 제주만을 프레임에 담아낸 미친 사랑의 괴짜. 난치병으로 떠난. 제주를 사랑했고, 제주가 사랑한. 예술인 김영갑. 그의 사진에는 날 것 그대로의, 긴 기다림 속 찰나의 제주가 녹아있었다.

김영갑의 사진에는 바다가 없다. 갤러리 조명 아래 놓인 사진 몇 프레임만이 바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고립의 섬 제주. 저 청록의 아름다운 바다는 오랫동안(비록 지금은 아닐지라도) 제주의 산 자들을 가로막는 담이자 슬픔의 벽이었음을, 제주의 진짜 얼굴은 산과 들과 야트막한 오름과 억새와 돌담과 말과 바람과 구름,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영갑의 피사체는 사진 속에서 흔들린다. 마른 나뭇가지의 끝, 화사하거나 소박하게 세를 이룬 들꽃들, 이름 모를 풀과 억새와 바다와 구름이 액자 속에서 흔들린다. 자발적 역동이 아닌 타발적 괴로움이다. 작가가 죽은 지금도 여전히 피사체들은 프레임 안과 밖에서 흔들리고 있을 거다. 그 작고 크고 약하고 격한 흔들림들이 제주가 품은 생명들의 본질이다. 그렇게 흔들리며 버텨낸 생명력들이 바로 사랑스러운 제주다. 일생을 제주에 바쳐 가난하고 남루하게 흔들리며 살았던 작가는 죽어서 남긴 사진으로 말한다.


나는 사진을 모르는 문외한이라 작가의 사진에서 구도, 조명, 촬영기법 따위를 분석할 수 없었다. 사진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사진인지도 평가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글과 사진 앞에서 제주를 얼핏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속에 담긴 그의 완전한 제주 사랑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염없이 제주를 바라보다가 어떤 감정이 벅차오르는 순간 셔터를 누르는, 작가가 삽시간의 황홀이라 일컬었던, 그 깊고 고요한 순간의 사랑이 제주와 제주의 사람들에겐 완벽에 가까운 시간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갤러리를 들어가고 나가는 야외전시장에, 생전 작가가 쓰던 모습 그대로 보전해 놓은 작업실에, 그의 절친한 친구가 빚은 토우인형들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김영갑의 황홀은 성산읍 삼달리에 남아있다. 비가 조금 내렸으니 오늘은 그 사진의 황홀이 더욱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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