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육지로 갑니다.

10/16

by 차구마

내일이면 잠시 육지로 갑니다.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제주를 떠나는 길에 '잠시'라는 단어를 가만히 덧대어봅니다. 제주를 떠나는 항공권과 제주로 돌아오는 항공권을 같이 결제했습니다. 기약이 있는 떠남이라 떠남이 아쉽지 않은 밤입니다.


벌써 한 달입니다. 스스로 유배를 떠나겠다는 허세 잔뜩 낀 다짐을 품고 야심 차게 닿은 제주. 그 예쁜 땅이 너무 따뜻해서, 바람과 밭과 들과 오름과 파도가 사랑스러워서, 만난 사람과 만날 사람이 좋아서, 그래서 조금 더 머물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머물기로 합니다. 잠시 육지를 밟다가 다섯 밤이 지나기도 전에 돌아오려 합니다.

이곳은 멈춰있습니다. 서울의 화려한 야경은 그 속에 포함된 사람들의 수고로움으로 반짝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도 그 불빛 중 하나였기에 잘 알 수 있습니다(물론 나는 다른 이들처럼 화려하거나 찬란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제주의 밤은 어둡습니다. 운진항과 하모해변의 밤바다엔 등대와 달빛이 전부입니다. 낮에는 조용히 움직이고 밤에는 차분히 쉬는. 그래서 느리고 더디고 무딘. 치열하게 치고 나가는 이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속도감조차 느낄 수 없는. 그런 곳이 제주라, 가만히 멈춰 있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 저는 금방 다시 돌아오려고 합니다.


이번에 육지에 가도 많은 사람을 만나진 않기로 했습니다. 한 달. 길다면 긴 시간이 훌쩍 흘렀는데 정말 보고 싶은 사람과 꼭 봐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슬픔입니다. 제가 지닌 본질적 외로움입니다. 제가 서울과 그 화려한 야경 속에 기필코 존재할 필요는 없었다는 초라한 사실입니다. 그 사실들은 차갑고 아프지만, 떠나 있어야 알 수 있는 소중한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육지의 내 사람들을 많이 사랑합니다. 가끔은 문득문득 그들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시간을 짜 맞추어 이번 기회에 만나지 않아도 다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리움이 뼛속을 파고들 애절함으로 변하기까진 한 달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서울과, 야경과, 그 속에서 빛나는 내 사람들이 애절하게 그리울 때 다시 한번 육지로 돌아갈까 합니다. 지금 떠난다면 제주가 더 애절하게 그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섬으로 돌아오겠단 결심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애절한 그리움을 준 이곳이 오늘은 그저 고맙습니다.


애초에 떠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짧은 기간을 떠납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다시, 제주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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