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
오랜만에 혼자다. 성산. 먼 길을 온 김에 차도 하루 빌리고 게스트하우스도 잡아 기꺼이 혼자가 되려는 날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흑돼지 바비큐와 맑은 된장국 앞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말을 트고 술잔을 기울이며 어색한 친구가 되는 날이다. 순천에서 온 35살 공무원 누나, 구미에서 온 31살 회사원 형, 여자를 만나러 서울에서 온 동갑내기 무리들(여자 손님이 거의 없어 이들의 마음은 무너진다만)과 아직 말을 섞지 못 한(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 없을) 다른 테이블의 여행객들. 1인당 만 오천 원 흑돼지 바비큐 파티 속에 만난 인연이다. 아니, 인연보다 스쳐갈 우연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잘 구워준 흑돼지 바비큐 한 점에 소주와 말을 섞으면 잘 익은 돼지보다 대화의 맛은 더 감칠 난다. 고기는 금세 물리고 소주와 대화가 주를 이룬다. 값으로만 따지면 대화 한 꼭지에 천 원 즈음할 거다. 제주 유배를 시작한 나를 얘기할 때 나는 뭇사람의 부러움을 받고, 육지에서 안정된 그들의 삶을 얘기할 때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오가는 대화와 구운 돼지와 소주잔 아래 저녁식사는 짧다.
오랜만에 모든 게 낯설다. 익숙한 사람들이 곁에 없는, 왠지 그저 낯설고 싶은 하루다. 낯선 것이 낯설어 익숙한 편의점 간판 아래서 사 온 맥주 한 캔을 뜯으며, 잘 보이지 않는 밤바다를 보며, 오늘은 그렇게 글을 쓴다. 낯설고 싶은 밤. 그저 익숙한 것이 행복한 건 줄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밤. 그리고 익숙한 것이 곧 행복한 것이 맞다는 것을 오늘 나는 다시 깨닫는다.
숙소에서 제공되는 따끈한 죽 한 그릇으로 간밤에 뒤집어진 속을 달래고 길을 나서니 시간은 벌써 아홉 시께다. 해 뜨는 오름이라는 성산일출봉 머리 위로 해가 이미 걸려있을 시간이었다. 바다에서 뿜어져 나오는 해를 볼 순 없으나 일단은 일출봉을 오르기로 했다. 구름이 잔뜩 껴 날이 흐렸다. 일찍 나섰어도 해는 볼 수 없었을 거라고 위안을 삼는다.
입구 아래 주차장부터 거대한 관광버스 몇 대가 나란히 주차되어있고 매표소 근처는 타국의 언어로 북적였다.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많은 이곳에서 나는 홀로 표를 끊었다. 나는 혼자였으므로 완전한 한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인도 아닌 어설픈 객이었다. 일출봉과 각국의 사람이 만들어 내는 매표소 풍경 속에 나는 어색하게 녹아있었다. 표는 한 장에 5천 원. 비싼 건지 싼 건지 판단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는지라 성산의 언덕은 유난히 가파르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면 성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풍경 곳곳에 박혀있어 나는 땅을 보며 걸었다. 해발고도 90m, 오름의 중턱에 매점이 있어 음료를 늘어놓고 팔았다. 기계가 오를 수 없는 등산로이므로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올렸을, 음료에 담긴 수고로움을 생각했다. 오늘은 날이 덥지 않아 음료가 전혀 팔리지 않았다.
정상에 다다르니 오름 계단에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먼저 뛰어올라 부모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계단 아래를 바라보며 부모가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봤다. 부모는 피가 탁해지고 근육이 쇠해가며 이제는 오름 한 걸음이 힘겹고, 아이들은 그 힘겨움을 먹고 날로 건강해 부모보다 빨리 산을 오른다. 아래서 올라오는 부모가 보이기 시작하니 아이들의 표정은 밝게 흥분돼 다시 오름을 뛰어오른다. 부모와 아이의 술래잡기는 그렇게 평생 이어진다.
내가 제주의 풍경에 감탄한 첫 순간이 아마 이곳 성산일출봉의 정상이었을 거다. 수학여행으로 처음 온 제주도에서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다색을 닮은 푸른 하늘과 그 아래 움푹 파인 녹색의 거대한 잔디밭. 의리와 패기로 함께 오른 남고생들의 건강한 땀냄새. 그 모든 기억을 곱씹으며 기대감을 품고 올라온 오늘 이곳은 풍경이 삭막하다. 하늘이 흐려서인지, 날씨가 달라서인지, 사람이 없어서인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날이다. 일출봉 정상까지 마지막 몇 계단을 남기고 오늘은 끝까지 오르지 않기로 했다. 다음 언젠가, 풍경이 좋은 날, 날씨가 예쁜 날, 그래서 사랑에 빠지고 싶은 날, 그날 정상에 다시 오를 거다. 하산길에 이슬비가 내렸다. 비에 조금 젖으며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빨랐다.
<섭지코지>
제주는 바위섬이라 아름답고 바다와 맞닿는 어떤 바위는 특히 더 아름답다. 섭지코지가 그렇다. 바람이 제법 불어 오늘은 바다가 힘이 있다. 바람이 계속 부딪혀 오는 섭지코지 절벽에서 세를 이룬 보라색 공작초와 듬성듬성한 노란 씀바귀 꽃이 끊임없이 흔들린다. 제법 황갈색 빛을 띠는 가을의 잔디 사이를 보랏빛으로 수놓은 공작초보다 사람이 이룬 세력이 더 크고 건강해 주말의 섭지코지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의 발과 다리는 완만한 섭지코지를 가볍게 오르내린다. 평화로운 언덕 아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주차장은 전쟁터다. 선착순에서 이긴 자들이 온전히 누리며 오르는 곳이 섭지코지다. 돌로 빚어진 절벽은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다.
완만한 동산 널찍한 바위 위에 사람들은 돌을 쌓는다. 탑인지 무더기인지 모를 모양의 돌들은 하나하나가 쌓는 이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탑 위에 희망을 쌓고 꿈을 쌓고 추억을 쌓는다. 그렇게 쌓다가 탑이 높고 날카로워져 더 이상 쌓을 수 없을 때 새로 쌓을 곳을 찾는다. 길을 따라가면 그런 돌무더기가 여럿이다. 더하기를 원하고 빼기를 거부하며 곱하기를 좋아하고 나누기를 싫어하는 인간 본성의 형질이 돌탑으로 전승된다. 그 돌탑은 투박하지만 결코 밉지 않은 사람의 것이다. 그래서 돌탑엔 사람 냄새가 난다. 나는 위태로운 맨 꼭대기에 놓인 돌 옆에 나의 돌을 주워 가만히 쌓았다. 내 돌이 평평해 옆 돌의 주인과 나와 그 아래 모든 쌓인 이들의 바람이 무너지지 않길 바랐다.
언덕의 높은 곳에서 파란 후드티를 맞춰 입은 한 무리의 가족이 정겹다. 등짝에 흰 글씨로 새겨진 이름은 손주 1, 손주 2, 손녀, 사위, 손주 사위, 딸 등이다. 할머니의 등에 적힌 이름은 대빵이다. 옆에서 걷는 할아버지 등보다 더 위풍당당한 등으로 가족을 짊어지고 노파는 잘 걷는다. 나는 그 가족의 가문과 성씨와 이름을 모르고, 살던 곳과 사는 곳과 살 곳을 모른다. 이름 모르는 가족의 등 뒤로 셔터를 누르며 은근한 정을 느끼는 것은 나는 아들이자, 손주이며, 언젠간 사위, 혹은 대빵으로 불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족을 부르는 말은 나의 가족과 남의 가족이 같아서, 우리는 구별 없이 가족을 느끼고 구분 없이 가족이란 이름 아래 아련하다.
걸음마다 펼쳐진 풍경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섭지코지 한 바퀴를 다 돈다. 섭지코지를 내려오면 다시 닭꼬치나 한치빵 따위의 간식을 파는 매점들과, 여전히 전쟁 중인 주차장과, 그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북적이는 사람들이 있다. 한적한 자연의 풍경 아래 사람이 만들어낸 요란한 풍경이 대조를 이루는 곳에서 나는 다시 차에 오른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듣는 노래는 잔잔하고 아름답다. 오늘은 잔잔하고 아름답고 싶은 날이라, 일부러 그런 노래를 고르고 느리게 달린다.
<우도>
우도는 성산 유배의 마지막이기 적절하다. 짧게 정든 렌트카를 반납하고 버스를 기다려 성산항으로 향했다. 대합실엔 사람이 차고 넘쳐 우도로 가는 배를 기다린다. 기다릴 사람이 없고 복잡한 절차도 없으니 배에 금방 올랐다. 우도행 배엔 정해진 좌석이 없다. 마룻바닥에 사람들이 널브러져 앉으면 그곳이 곧 그들의 좌석이다. 나도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몰려들어와 눕지는 못 했다.
제주도가 그렇듯 우도 역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섬이다. 소를 닮았다 하여 우도다. 나눠준 안내책자에서 우도 지도를 살피니 도무지 소가 보이지 않았다. 미련이 남아 지도 속에서 계속 소 모양을 찾다가 포기했다. 배는 출발했고, 곧 우도에 도착했다. 잘생긴 소 동상이 객들을 맞았다. 오늘은 비가 내렸다. 소 동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우도를 비(雨)의 섬으로 기억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스쿠터로 돌았지만 오늘은 자전거다. 자전거는 내 두 다리를 동력으로 나아간다. 허벅지 근육의 장단에 맞춰 무릎 관절은 정밀한 기계처럼 부드럽게 움직인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며 난 내 몸이 무사함을 느낀다. 보다 사람에 가까운 기구의 도움으로 나는 시원한 우도를 돈다. 땀이 조금 나고 다리가 저려오지만 바람이 열기를 식히니 우도를 만끽하기 충분하다.
자전거를 타다 허기가 지면 흑돼지로 만든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콜라를 먹는다. 그 익숙한 세 음식의 조화는 우도의 바다와 바람 앞에서 새로운 맛으로 혀를 간질인다. 버거를 먹고 있으니 구름 사이에서 해가 조금 난다. 햇빛 몇 줄기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니 곧 완벽한 하루다.
점심을 먹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atv를 타기 위해 우도봉을 향해 언덕길을 달렸다(사실은 거의 달리지 못 했다). 조금 전까지 행복하던 자전거 바퀴 굴리는 일이 고통스러운 수행이 된다. 해안도로가 아닌 우도의 중심을 가로질러 언덕을 오르는 길에 땀이 맺히고 자전거는 애물단지가 된다. 힘겨운 언덕 뒤 가끔씩의 내리막길. 다리가 후들거리다가도 언덕의 절정에서 페달을 밟지 않고 중력이 더해주는 속도에 취하는 쾌감을 반복하며 나는 언덕을 올랐다. 한참을 걸어 우도봉 입구에 도달했다.
우도봉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던 내 애마 이름은 산악용 5555. 붉고 단단함 몸을 가진 녀석이다. 야생마 같은, 거친 들판도 가파른 언덕도 힘차게 달리는 네 바퀴 오토바이 위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온몸으로 통제해야 하는 거친 기계의 굉음과 그것이 달리며 뿜는 모래바람 속에서 나는 액션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 속도계는 시속 30km 언저리를 결코 넘지 않았지만.
우도를 떠나 캠프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철저히 혼자였던 이틀. 내가 잘 몰랐던 나를 하나씩 조립해 나가는 순간들을 보내고, 다시 그리운 유배지로 향한다. 여정이 피곤했는지 몸이 무겁다. 적당한 무게감을 얻은 마음도 결코 가볍지 않다. 가는 길에 바다가 맑고 잔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