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꽥 소리를 질렀다

5초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 말을 듣자

by 모구차

엄마와 함께 전통재래시장에 아주 오랜만에 갔다. 채소가 싸고 좋은 곳이 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계산을 위한 줄만 해도 가게 안 절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물건은 채우는 족족 동이 났는데, 과연 채소라고는 고를 줄 모르는 내 눈에도 좋은 물건들처럼 보였다.


"어제 산거 다른 걸로 바꿔달라고!!!"


나와 엄마처럼 물건을 고르기에 분주했던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곳으로 눈과 귀가 쏠렸다. 어제 사간 뭔가를 교환하러 온 사람 같았는데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는 바람에 주인도 손님들도 모두 놀랐다.


"아니 차분히 바꿔달라고 하면 되지 왜 소리를 지르세요"


주인이 알겠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자 가게 안의 아주머니부대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그래, 왜 소리부터 질러.



대부분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곡해를 했다, 오해를 했다, 고깝게 생각했다 생각한다.(이를 설명하는 말표현만 해도 이리 많으니 오죽하랴) 하지만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은 쌍방이다. 혼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듣는 쪽만이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은 소극적 행동인 듣기보다, 적극적 행동인 말하기에서 문제의 씨앗이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걸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건을 바꿔달라는 이는 본인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의도했을까? 의도했다면 이게 모두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 알았더라도 나만 이득(교환이라는 이득)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 어떤 것이라도 중요한 한 가지 이상을 놓쳤을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클 수 있고, 화가 났을 수도 있고, 억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원래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다, 왜 곡해하냐, 오해하냐는 큰 의사소통 오류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의도가 그렇지 않다면 말하는 이는 한 번 더 청자의 입장이 되봄직 하다. 아니 무조건 그래야 한다. 우리 사는 살이가 그거 한번 생각해보지 못할 정도로 급박하지 않다. 5초만, 10초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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