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버티기

by 모구차

버티기, 그냥, 꾸역꾸역 모드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기분이 자주 든다. 이게 나쁜 건가 하는 생각도 잊은 지 오래다. 김연아 선수가 무슨 생각을 하며 스트레칭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냥 하는 거지 무슨 생각을 하냐는 대답으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씬이 있다. 그녀의 거룩한 결과물을 생각하면 이를 빗대어도 되나 싶지만 요즘 내가 딱 그렇다. 그게 서글프거나 안타깝지 않다. 이 상황마저도 아무 생각이 없다에 가깝달까.


다만 내가 버티기 모드에 진입하면서 아차 싶은 것이 있었다. 회사에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른 이들도 이렇게 견디는 자들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나처럼 가까운 누군가의 아픔을 고생을 안고 있을지도 모르고, 육아의, 공부의 고단함과 피곤함을 이면에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직장인이라는 정체성만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다들 내가 모르는 다른 역할들에서 고군분투하며 직장인이라는 역할에서는 그저 버티기 모드로 출근길에 나서고 있을 거라는 깨달음.


그래서 요즘 회사에서는 항상 가능하다면 친절해야지, 늘 다짐한다. 나의 피곤을 짜증을 핑계로 다른 이에게 감정소모는 절대 말아야지. 툭 건드려도 울 것 같은 버티기만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인 날일 수록 되새긴다. 나의 짜증을 아픔을 드러내지 말아야지. 다정해야지. 친절해야지.


잘 안 된다. 그래서 다시 다짐한다. 내일의 버티기엔 좀 더 다정한 버티기를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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