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의 대가

by 모구차

요즈음 회사에서 통제할 수 없는 무력감과 진땀 나는 난처함의 대가로 월급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아침이면 늘 일하기 전에 다이어리에 오늘 할 일, 미팅을 적어두고 순서나 중요도를 머릿속에 대략적으로 그리는 게 내 오랜 습관인데 이것이 참 뜻대로 안 된다. 정말 안된다. 직무상 지금의 회사뿐만 아니라 늘 임원이나 리더십을 상대할 일이 많은 나는 그들의 스케줄에 내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밖에 없는 때가 많은데 이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특히 리더십의 급작스런 질문, 요청 등에 대응하다 보면 기존일은 다 꼬이고, 나조차 그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팀이나 동료에게 밑도 끝도 없는 요청,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양쪽에서 낀 나는 난감함과 진땀남의 연속. 시시각각 다 되었냐는 최초발주자의 메시지가 오면 속이 탄다. 타다 못해 증발하고 싶다. 어찌어찌 한 차례 그런 폭풍이 휩쓸고 가면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요청하고 정리하느라 내 시간, 집중력도 만신창이. 어려운 부탁을 하고 어려운 요구사항을 대응하느라 쓴 내 멘털도 만신창이. 기존에 해야 할 일은 내팽개쳐 있기에 처음부터 집중력을 다해 다시 해야 하고 쑥대밭처럼 밀리고 엉망이 된 미팅 스케줄은 다시 잡아야 한다. 내 시간, 내 능력을 내가 온전히 컨트롤하지 못하는 무력감. 이 무력감의 대가로 월급이 들어온다.


가끔은 그저 황당하고 어이없음을 대가로 받기도 한다. 예정되어 있지 않은 회의에 주제가 뭔지도 모르고 갑자기 불려 가서는, 마치 내가 원래부터 발제자인 것처럼 의견을 묻거나 발표를 시킬 때가 있다. 나의 전문성이나 업무를 믿어주는 상황이라고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늘 어이가 없고 황당하기 그지없다. 자 셋 둘 하나 큐, 하는 사인에 들어가야 하는 느낌. 대사를 하나도 외우지 못하고 연극을 해야 하는 기분. 내가 준비할 시간은 고작 3초. 파일을 열지도 못할 때도 많아서 파일을 여는 시간 동안의 임기응변도 내 몫이다. 재밌다 못해 어지럽다. 이 진땀 나는 황당한 상황의 대가로 월급이 들어온다.


배부른 소리였으면 좋겠다. 손이 심장이 벌벌 떨리는 상황이 아니라. 계속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모두에게 다른 상황과 정도이겠지만 월급의 대가는 쉽지 않다. 늘. 모두에게. 그리고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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