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암진단을 받은 때는 내가 새로운 회사에 이직한 지 6개월째 되는 달이었다. 새로운 회사는 외국계라 영어를 써야 했는데, 영어에 그리 자신이 없던 나는 영어공부에 온 힘을 다 쓰고 있었다. 새로운 회사의 프로세스나 문화, 업무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거기에 영어공부 정도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더하는 건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힘들었지만 할 만했다.
아빠소식 이후 부모님 집을 오가며 병간호를 돕는 일이 추가되었다. 아빠와 이 모든 것에 놀라고 충격받은 가족들은 괜찮은 듯 속으로 모두들 애쓰고 있었다. 이 순간을 잘 헤쳐나가야 한다는 마음, 모두가 힘드니 서로에게 아픔이나 스트레스를 보태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이 늘 공기 중에 있었다.
나도 그랬을 테다. 아빠가 더 힘들 테고, 그 곁의 엄마가 더 힘들 테니 젊은 나는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개인적인 쉼이나 시간들은 조금 포기해야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서의 야근이나 격무가, 가족일들이, 영어공부가,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일정들이, 괜찮은 척 내색 않는 마음씀씀이 모두가 너무 벅찼던 모양이다. 몇 달이 지나자 번아웃과 비슷한 증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짜증이 늘었다. 정확히는 짜증을 내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너무 격한 짜증이 났다. 피곤이 늘었다. 아무리 잠을 자도 가시지 않는 피곤이 늘 따라다녔다. 집중이 안 됐다. 머리가 늘 맑지 않고, 팽팽 돌아가지 않는 멍한 상태들이 자주 찾아왔다. 가장 짜증을 내지 말아야 하는 엄마나 아빠에게도 짜증이 나려고 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책임과 의무들만 가득한 내 하루들이 나를 다 소진시키고 나 스스로를 내팽개쳐버리게 할 것 같았다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했다. 떨어진 체력에 첫날은 2분 뛰기도 어려웠지만 하루하루 늘려갔다. 의무를 줄였다. 영어공부를 내려놨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을 버렸다. 당장의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으니 일단은 개떡같이 말하되 내 심신의 건강을 먼저 챙기기로 했다. 그만두었던 독서도 다시 시작했다. 한가하게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를 뒤로하고, 오로지 내가 읽고 싶은 당장의 삶에 무용한 듯한 문학류를 읽었다. 틈틈이 미드나 유튜브도 봤다.
숨통이 조금씩 트였다. 해야 할 것들만 가득한 삶에서 조금이나마 하고 싶은 것들을 채웠더니 꼴깍 넘어갈 것 같은 마음이 살아나는 듯했다. 물론 아직도 불현듯 힘들다. 벅차다. 하지만 일단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는 것에 다행을 느낀다. 숨통이 조금씩 트임에 다행을 느낀다. 하고 싶은 것을 조금은 해도 된다 싶다. 아니해야 된다 싶다. 책임과 의무만은 곤란하다. 아니 큰일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