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커피

by 모구차

아빠는 어쩜 그리 인정머리 없냐고 했다. 오늘은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었다. 2주마다 며칠씩 입원하는 곳이고 벌써 몇 달째 오가는 곳이었다. 큰 병원이라 아빠의 담당 의사교수님을 제외한 나머지 스태프들은 매번 층도 담당 간호사분들도 쉴 새 없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아빠는 오늘 간호사분들에게 빵과 마실 것 등을 사주자고 했다. 아빠는 상주보호자로 매번 동행하는 엄마에게 그동안 호사분들에게 사준 적이 있냐고 물었다. 커피 몇 잔 사서 넣어준 적이 있다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어쩜 그리 인정머리 없게 하냐고.


거실에서 병원에 나설 준비를 마치고 앉아서 쉬며 엄마아빠의 대화를 듣던 나도 뜨끔했다. 아빠의 의도는 알겠으나 저렇게 얘기할 건 또 뭐람. 일단은 나까지 참전하면 괜히 진짜 말다툼처럼 될까 봐 가만히 있었다. 마음은 알겠으나 나도 솔직히 매번 바뀌는 스태프들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 뒤로도 빵을 사네 몇 개를 사네 과자면 되네 대화가 왕왕 이어졌다.


결국 아빠는 엄마를 인정머리 없는 매몰찬 사람으로 만들더니, 병원에서 빵집은 한참거리에 있는데도 거기서 빵을 사서 주자고 했다. 엄마를 그리 대하는 것도, 입원수속에 힘들 엄마에게 그 거리를 다녀오게 하는 것도 싫어서 내가 한마디 했다. 그럼 빵을 배달시킬 테니까 그걸 여기서 가지고 가요. 내가 지금 주문할게요.


아빠는 양껏 좋은걸 티 나게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빵을 열댓 개를 주문해서 한가득 배달을 받았다. 그제야 맘에 드는 듯했다. 근데 아빠는 마실 것은 가서 사냐고 했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한마디 했다. 아빠, 이 정도면 충분해요. 우리가 이렇게 해줘도 그렇게 고맙다 생각 안 할 수도 있어요.


아빠는 말이 없었다. 더 이상은 싸움이 되겠다 싶었는데 아빠는 아직도 뭔가 백 프로 성에 차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냥 병원 앞에 프랜차이즈 커피집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서 올라가자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걸 더 좋아한다고.


병원에 도착 후 엄마 아빠가 입원수속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몇 가지 입원 시 검사를 하는 동안 나는 병원 앞 카페에 가서 커피 12잔과 아이스티 4잔까지 총 16잔을 샀다. 혼자 어떻게 들지 했는데 8잔씩 양손에 겨우 들렸다. 낑낑거리며 입구를 지났고, 입구보안요원에게는 손을 뺄 수가 없어 보호자확인증이 내 주머니에 있으니 내 주머니를 보라고 했다.


그렇게 병실옆 간호사스테이션에 겨우 도착했다. 오늘따라 인원이 좀 많길래, 아빠가 원하는 대로 마실 것을 양껏 많이 사 왔는데 웬걸 엄청난 리액션들이었다. 젊은 여성들이라서인지 다들 눈을 반짝이며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하셨다. 아. 그제야 아빠가 원하는 게 이거였구나 싶었다. 다들 너무 크게 호응을 해주며 감사하다고 잘 나눠 먹겠다고 하셨다. 아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내 옆에서 무뚝뚝히 서있었다.


아빠는 늘 호의를 많이 베풀고 그 호의가 돌아오지 않을 때 상심이 크셨다. 사실 오늘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또 이런 작은 걸로 뭔가 기대할까 봐. 하지만 큰 병원은 다 시스템으로 돌아가서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뭘 더 준다고 더 잘해주거나 못해주거나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게다가 엄마에게 하는 말이 신경이 쓰였다. 하루 종일 붙어서 아빠만 챙기며 고생하는 엄마는 몰인정한 사람취급하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물론 오며 가며 이제 안면이 있고 다들 친절하시다)에게 이렇게까지 잘하려고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


간호사분들의 환한 웃음을 보니 아빠는 그냥 이게 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다. 오늘 쓴 빵과 커피값에 무뚝뚝한 아빠가 속으로 지었을 작은 미소가 있었을 테니 그거면 됐다 싶었다. 엄마가 상처받았으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은 있지만, 아무 말 없이 전 과정을 지켜보던 엄마도 어쩌면 다 알고 있었나 싶기도 했다. 참 어렵다. 그래도 어쨌든 이걸로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책임과 의무만은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