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지나고 드는 수만 가지 감정

by 모구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했다.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한 아빠와 함께 있는 엄마와의 통화에서였다. 담당교수님이 항암치료는 암을 조금씩이지만 작아지게 하고 있지만, 워낙에 기력이 많이 쇠하고, 진행이 많이 되어서일까, 쉽지 않다고 했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도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하는 엄마도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기력이 많이 없는데 잘 먹지도 못하는 상황이란다. 어떻게 통화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찌어찌 통화를 끝냈다.


이런 말을 들었음에도 덮쳐오는 듯한 슬픈 감정이 들지 않았다. 공허하고 무력한 설명할 수 없는 큰 구덩이를 마주한 감정에 가까웠다. 슬프지 않은 내가 나를 보며 딸이라는 게 참 못됐다, 잔인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


처음 아빠의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정보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슬프다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애통한 감정이 덮쳐왔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저 이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졌다. 그즈음 아빠가 여러 병원을 옮기는 운전을 하며 따라다니던 때는, 혼자서 돌아오는 길에 부산 바다가 보이는 다리를 건너다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그냥 햇빛 찬란한 맑은 날씨의 파아란 바다를 아빠가 더 이상 볼 수 없을 수도 있겠구나, 아빠랑 이런 바다를 보러 마실 한번 제대로 못 나왔구나 이런 여러 가지 생각에.


그 뒤 아빠의 간병이나 여러 가지 생활들이 겹쳐져 시간이 흘렀다. 환자 본인인 아빠도, 그리고 나머지 우리 가족들도 잘 버텨낸 시간들이지만, 그 사이에 단 한 가지 슬픔이라는 감정은 수만 가지의 감정으로 분화되었다. 체념, 무력감, 분노, 피로, 안타까움, 어이없음, 놀라움, 기대, 안도, 실망...


그래서일까. 오늘 전혀 달갑지 않은 소식을 들었음에도 착잡하고 씁쓸한 마음만이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채워질 뿐,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슬픔이 없었다. 그 슬픔이 없음에 슬펐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아빠는.

복잡하고 어려운 하루다. 나는 못된 딸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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