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차를 여러 번 바꾸었던 것 같다. 아빠는 잠깐의 회사원 시절을 빼고는 매번 장사, 가게를 했었는데(엄마와 함께) 대부분 바뀌는 차들은 바뀌는 장사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나이 드신 어른들은 하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차가 올 때마다 우리는 고사를 지냈다. 이 차를 타는 동안 사고 없이 무탈하기를, 이 차를 타는 동안 모든 일이 잘 되기를.
집집마다 고사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우리 집은 이랬다. 우선 자동차 앞 엔진이 있는 본닛을 열고, 북어포랑 아주 간단한 과일을 올린 다음, 막걸리를 잔에 조금 따라 같이 올려두고 아빠가 두 번인지 세 번인지 절을 했던 것 같다. 그다음 날달걀을 4개 준비해서 타이어 앞에 놔두고는 살짝 차를 움직여서 그걸 모두 깨뜨렸다. 아마도 미리 이것으로 사고는 퉁치는 식이었으리라.
그다음은 항상 내가 운전석에 올라타서(물론 시동이 꺼진 채로) 핸들을 두어 번 운전하는 사람처럼 좌우로 돌리면 모든 고사가 끝이 났다.
마지막 의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초등학교도 채 들어가기 전부터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브레이크나 엑셀에는 발이 닿지도 않는 작은 키일 때도 어쩐지 마지막 의식은 내가 운전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우연히 내가 그렇게 한 후로 별달리 사고가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빠는 나를 행운의 아이콘이라 생각한 것 같다. 우리 집 고사는 매번 내가 와~하는 소리를 내며 운전하는 척을 하고 끝이 났다.
그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아빠가 나를 행운의 아이콘으로 생각해 준 것이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행운을 가져온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얻는 게 얼마나 될까. 누군가의 행운의 아이콘이 된다는 게, 맹목적인 사랑과 믿음을 받는다는 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