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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Sep 18. 2020

라이킷이 되어줄게

브런치 서랍에서 글을 발행하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세상은 넓고 글 쓰는 사람은 많고 잘 쓰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은 거야... 단이나 출판이 아니더라도 을 써서 자기만족과 소통을 해내는 통로야 여기저기 있지만 굳이, 이곳, 무려 작가 신청까지 면서 서랍 안의 글을 발행하는 이유 굳이 찾아보자면,


일단 쓸데없이 진지하고 문학적이낭만 특유의 분위기았다. 이제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고가 없는 긴 호흡의 감수성, 아마도 소싯적 문학소년소녀이었을 게 분명한 사람들 적당히 폐쇄적인 분위기도 맘에 들었다. 여기라면 내 본체를 적당히 변시켜서 맘껏 감성 폭발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처음 브런치의 피드들을 찬히 둘러보는데 먼저 의사, 변호사, 피디 같은 전문직을 가진 작가들의 글이 먼저 눈에 띄었다. 내가 늘 감탄하는 지점, 어쩜 이리 박학다식에 인성도 훌륭하고 자기 일에는 프로에다가 까지 잘 쓰시나. 역시 공부도 잘하고 인성이 훌륭하니까 글도 잘 쓰는 건가. 나로선 결코 쓸 수도 없는 세계라 그런지 더 부럽다.


그다음으로는 여행 에세이에 눈길이 간다. 

앗 나도 여기 갔었는데! 여행기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공감이다. 가봤던 곳이라도 등장하면 나대는 심장 부여잡으며, 특히 나의 첫 배낭여행지였던 인추가로 검색까지 해가며 다른 이들의 추억과 나의 추억을 견주어 곱씹어본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거리의 풍경보다 더 믿을 수 없었던 건 세상에 여행하는 인간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거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을 보면서 그동안 경기도 ㄱㅍ시 ㅅㅂ2동 우물 안에서만 살아왔던 내가 무한히 초라해지던 기분을 느꼈었는데 브런치 속 세련되고 윤기 나는 여행 에세이들을 보고 있자니 바로 그때 느낌이 되살아났다.

, 다들 정말 많이도 다니는구나.

특히 가 사랑하는 제주, 파리, 인도는 여행기의 수준을 넘어 살아보 같은 생생한 삶의 현장이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비행기 탄 지 십 년도 넘었으니 여행기는 쓰고 싶어도 못쓰겠네...


살림, 육아, 요리 관련 에세이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분야다. 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평생 매달렸기에 이제 일종의 회의감마저 가지고 있는 독서글쓰기에 관한 글 역시 전문가가 수두룩. 출판시장이 그리도 어렵다 하고, 가족을 비롯한 내 친한 사람 중엔 책 읽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브런치에서는 들 책 읽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일하고 사유하고 사진 찍고 예술하고... 못하는 게 없는 사람들 뿐.


그럼 난 뭘 쓰지?


40대, 여성. 주부, 두 아이의 엄마, 시간제 계약직, 도농복합도시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나의 일상은 특별하지도 아름답지도 전문적이지도  별다른 이벤트도 없다. 그나마 쓸 거리라곤 케케묵어 미화된 추억담뿐.


사실 내가 발행한 몇 개의 글들은 그동안 여기저기서 써먹었던 글들이다. 주로 잠 안 오는 우울한 밤마다 썼거나 작은 글쓰기 모임의 강요 없는 과제작으로 썼었거나. 독립출판 워크숍을 통해 작은 책으로 만들어 동네 아는 독립서점에 몇 권 입고도  남는 것은 오래된 친구들에게만 나누어 주었다. 할 때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신났는데 조금 지나자 급 현타가 오고 나무에게 심히 미안한 기분이 들어 다시는 그러지 않겠라고 다짐했다. 랬었던 글들에 조금 더 진실과 허구를 보태어 발행 버튼을 눌본 것이다.


그러자 브런치의 매력적인 에티켓 '라이킷'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좋아요엄지 척이나 빨간 하트와는 뭔가 느낌이 다른 라이킷. 출전 선수가 되고 싶은 후보들이 벤치에서 수줍게 하이파이브를 해주는 기분이다. 

라이킷을 누르는 사람들은 쩌면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 글을 읽지도 않았을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브런치를 홍보할 요량으로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도 노출이 되지 못했을 나의 조잡한  열 명 남짓한 모르는 사람들이 눌러준 라이킷 가슴 기에 충분다. 이제 더 이상 트와이스의 앙증맞은 ' 라 라 라킷 라킷~ 두근두근두근~' 하는 노래를 흘려들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의 나는 조금 더 솔직해지거나 조금 더 거짓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해보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채근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곳에서 울고 웃고 떠들고 심각해지고 릴랙스 하며 한 잔의 커피처럼 한 잔의 맥주처럼 한 잔의 짜이처럼, 그렇게.


브런치를 모르는 남편은 말한다.

요즘 누가 책 읽고 글 쓰냐. 차라리 유튜브를 하지. 그런데 책 읽고 글 쓰며 문학과 낭만 시대와 지성과 아름다움과 절망과 행복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더라.

런치엔 아주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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