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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Sep 23. 2020

사랑, 사랑, 사랑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이란 늘 뜨거운 연애였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절규하는 사랑, 폭풍 같은 사랑,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 믿었고 그런 사랑만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의 마음 사전에 사랑에 관한 두 번째 정의가 자동 등록되었다.

모성애.

휘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젖어들어, 원래 그랬던 것 마냥 내 삶의 전부가 된 사랑. 그렇다. 엄마가 된 것이다.

엄마가 되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참으로 달라진다. 결혼-임신-출산-육아에 이르는 길고 지난한 나날들 속에서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내 품에 갓난아이를 안게 된 순간에는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과연 이 작은 인간이 내가 낳은 아이란 말인가. 이 작은 인간이 커다란 인간이 될 때까지 내가 키워야 한다는 말인가.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나 곧 젊은 날의 미친 사랑 대신 젖을 먹이며 아이와 눈을 맞추는 사랑이 시작되었다.

연락 안 되는 폰을 붙잡고 밤새 오백 통 가까이 받지 않는 전화를 걸어대는 사랑 대신, 아픈 아기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가며 눈물짓는 사랑. 추운 밤 길 아래를 걸으며 너 한입 나 한입 호호 불며 아껴먹는 붕어빵에 속삭이는 사랑 대신 첫걸음마에 무한 괴성을 지르며 희열과 감동을 느끼는 사랑. 사소한 다툼으로 토라져 있다가 갑자기 찾아온 그에게 뛰어나가 입 맞추는 사랑 대신 마트에서 떼 부리며 굴러대는 아이의 궁둥이를 때리며 그래도 속으로는 이뻐 죽는 사랑. 몇 장을 써도 끝나지 않는 연애편지를 고이 접어 그에게 전해주는 사랑 대신 잠든 아이의 땀 젖은 이마를 쓸어주며 이 아이의 앞날이 부디 평안하기를 오래도록 빌어주는 사랑.

연애 때는 사랑이 아닌 날도 있었지만 모성애는 단 하루도 아닌 날이 없다. 물론 지치고 힘들고 괴로워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싶은 때가 찾아오기야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면 신은 나에게 다시, 사랑을 선물해준다. 그 날의 해가 떠오르듯이 그 밤에 달이 차오르듯이 사랑이 날마다 가슴에 차오른다. 다행이다. 나는 늘 인생에서 사랑이 사라질까 봐 전전긍긍하던 여자였는데 앞으로 이십여 년간은 이 모성애로 맹렬하게 불탈 것 같으니. 물론 너무 티는 내지 말아야지. 지난 연애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랑은 잘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이가 스무 살 즈음이 되면 이 넓은 세상 속에서 뜨겁게 연애하라고 마음껏 살아보라고 나의 모성애는 비밀리에 접어 간직해야겠지.

즐겁지 아니한가. 때로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내 영혼을 잠식하여 괴로운 날도 있지만 내가 가는 길 중에 이런 따스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렇게 오늘도 사그라드는 모성애에 불을 지펴본다.

사랑, 사랑,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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