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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Nov 10. 2020

알아야 할 것들

코로나19가 일상을 뒤흔들기 시작할 무렵, 아직은 먼 곳의 불행인 줄 알았던 그때. 작고 조용한 우리 동네에도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재난문자보다도 더 신속 정확 방대하게 확진자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곳은 바로 동네 맘카페였다.

평소의 맘카페는 맛집, 시댁, 남의 편, 학원정보, 버스 시간, 병원 찾기, 팔아요, 드립니다 같은 엄마들의 평범한 수다가 일렁이는 곳이지만 확진자 발생 소식은 마치 너울성 파도처럼 그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신천지나 이태원을 향한 충격과 분노와는 결이 달랐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위협하는 실체가 바로 가까이 다가왔다는 점에서 주는 공포는 대단했다.

맘카페에는 확진자의 신상을 추측하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비난과 억측, 혐오가 뒤를 이었다. 분명 마스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딜 싸돌아다녔길래 걸린 거냐고, 청정지역이었는데 망했다, 이 동네는 어린아이들도 많은데 큰일이다, 이제 급속도로 퍼질 것이다, 지금 구급차랑 소독차가 서있는 거 봤는데 그 아파트인 모양이니 조심하라는 걱정과 비관이 쏟아졌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공식적으로 확진자의 주소지와 동선이 공개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날짜와 시간별로 확진자의 동선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공개되었고 어디서 유출되었는지 르지만 그보다 훨씬 디테일한 동선이 담긴 비공식적인 엑셀 파일까지 떠돌아다녔다. 분 단위로 동네 마트, 음식점, 술집, 정류장 등등의 정보가 담긴 문서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코로나 걸리면 이렇게 탈탈 털리는구나.... 였다.

그렇게 동네의 가게들이 초토화되었고  확진자의 아파트 주민들은 덩달아 공포와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그 아파트에는 배달을 하지 않는다 했고 외출을 삼가달라고도 했다. 나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와 나, 그리고 모두의 안전을 위하여.

그러나 화살이란 게 내가 쏘아 올릴 때 표적을 맞춰 박살을 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표적이 되버리면 피 흘리며 도망가는 가엾은 짐승이 되버린 단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후 발생한 다음번 확진자 바로 우리 아파트 입주민이었던 것이다. 그 문자는 출근길에 받았는데 운전 중이었던 나는 차를 돌렸다.  어린이집에 보낸 아이 때문이었다. 얼마 전 확진자의 접촉자 가정의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온갖 항의를 받아 일주일 폐쇄했던 기억이 났고, 나는  접촉자가 아니었지만 우리 아이가 원에서 혹시라도 손가락질을 받게 될까 두려웠다. 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를 내보내 주며 어머니, 몇 동인지는 모르시죠?라고 물었다.

, 저도 아직 모릅니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아마 맘 카페는 알지 않을까 싶어 살펴보니 역시 우리 아파트 이름이 오르내리며 동정과 비난의 댓글이 한창이었다.  마침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이 나왔는데 현재 확진자에 관한 문의는 많지만 동은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맘카페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날 밤 마스크를 두 겹씩 끼고 비상식량을 구축하기 위해 마트를 갔는데 혹시라도 그 아파트 사람이 나왔다고 욕할까봐 무지하게 눈치를 봤다.

날 밤,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과 시선으로 맘카페의 글을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걸린 게 몇 동 몇 호인지 아시는 분은 쪽지 부탁드려요.라는 댓글은 양반이었다. 요즘 택배도 불안해서 소독제를 뿌린다,까지는 이해하겠다. 정수기 점검 온 아주머니 가고 난 자리마다 소독했다,는 걸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그 아주머니가 그 글을 볼 수도 있는데. 아이와 한 달째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있으며 남편도 재택근무 중인데 식당과 술집이 열려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는 글도 있었다. 그래,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날마다 출근을 하고 셔터를 올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가 집안에서 안전하게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머무를 수 있으려면 누군가는 집 밖에서 그것에 필요한 일들을 해야만 한다. 분명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냥 모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중국은 미세먼지부터 시작해서 뭐하나 도움이 안 되는 무식하고 더러운 나라이며 중국인은 겪어봐서 아는데 아예 상종 못할 인간들이다, 미국이 핵미사일 좀 쏴줘서 중국을 없애버리면 좋겠다는 게시물도 있었다. 질병 하나로 온 세계가 쑥대밭이 된 이 꼴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올까? 이미 온세계는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나라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다면 얼마나 큰 불행이 닥칠지 상상력도 없는 걸까.


그것들은 포털 사이트의 무분별한 매크로 악성 댓글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이웃들, 아이를 함께 키우는 엄마 아빠들이 쓴 글들이었다.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해 사실적으로 드러난 우리의 민낯이기도 했다. 말없이 클릭만을 반복하고 있는 나 역시 동조자이고. 


혐오야말로 마스크로도 막지 못할 강력한 전염병인 데다가 약도 없다는 점에서 코로나19와 다를 것이 없다. 정복할 수 없는 질병 앞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주어야 할 마땅한 배려나 예의라는 게 이렇게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이 허무했다.

시간이 흐르요동치는 확진자 그래프를 경험하고 방역과 거리두기 지침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이 잔인한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다. 이제 아침이 되면 확진자 수와 정부지침을 살피는 것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되었다. 외출과 모임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하고 손 소독을 하고 어딜 가든 큐알코드를 찍으며 나와 가족과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애를 쓴다. 소중한 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로를 배려하고 지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자 기사에서 이제 확진자의 성별, 나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읽었다. 이제 확진자 동선도 접촉자가 확인되는 경우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 알아야 할 것만 알면 되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 근처에 확진자가 발생해도 맘카페에 이전만큼 혐오 발언이 쏟아지지는 않는다. 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자가 되거나 유증상으로 검사를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생긴 변화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확진자가 될 수 있고 과도한 비난은 자제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공지가 올라온 후부터는 확진자들의 쾌유를 빌고 의료진을 응원하는 이야기들도 많다. 맘카페 원래 따스하고 정이 넘치는 곳이기도 한데 난데없이 친 재난 앞에서는 다들 너무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날카로웠던 걸까. 그러고보면 인류애라는 것은 끝없는 학습이 있어야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무자비한 비난과 무례한 호기심을 저마다 마스크 뒤에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불안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지키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쓰다보니 나 정말 무논리이긴 하다...)

 코로나19가 계속되는 동안 우리 가족은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맸다. 아무도 없는 들판을 만나면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어던진 채 마음껏 달리고 마음껏 고함을 질러댔다. 그 모습이 어떤 영화 속의 장면보다 아름답고 서글펐다. 저 아이들에게 얼마나 더 버텨야 할지 아무도 모르기에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줘야 할 것이다. 너무 어렵지만 그게 나의 할 일겠지. 습관처럼 입장하던 맘카페는 즐겨찾기에서 잠시 지워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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