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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May 20. 2021

넷플일기

넷플릭스와 왓차를 번갈아 결제하며 컨텐츠에 노예가 되어 한동안 독서와 글쓰기를 멀리하였다.

지인들의 추천작들을 몰아봤는데 넷플의 나의 아저씨. 먼훗날 우리는. 두 교황. 찬실이는 복이 많지 등등 었다.


'먼훗날 우리는'은 그냥 뻔하게 결말이 예상되는 첫사랑 추억팔이 영화 줄 알았다. 보다보면 '8월의 크리스마스' '첨밀밀' '비포썬라이즈' 같은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가난한 연인에게 절실한 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좀 다르긴 하다. 거슨 바로 아파트! 요즘 세상에 아파트 장만하기가 이리 어렵습니다...

친구가 이 영화는 앤딩크래딧까지 꼭 봐야한다길래 뭐가 나오나했더니 사람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나오길래 러브액추얼리여 뭐여~ 피식 방심하다가 눈물보 터졌다. 다들 헤어진 연인에게 하고픈 말들을 늘어놓는 거였다. 안부도 묻고 그리워도 하고 미워도 하고 그러면서 안녕을 다. 누구에게나 애틋하다 못해 가슴을 후벼파는 그 이름 첫 사랑, 첫 연애, 첫 이별. 첫번째인 그것만큼 찌질하고 절절한 것이 또 있을까.

영화를 보며 이미 타락한 40대 아줌마의 심정으로 반전이 있길 내심 바랐다. 예를 들면 그 게임 지분의 40프로 정도는 샤오샤오에게 바친다 라든가. 러나 끝내 그런 말은 없었다. 하여간 일편단심 뒷바라지 해주는 여자의 말로는 늘  이모양이.


'나의 아저씨'는 5화 까지 보다가 우울하고 힘들어 한 동안 미뤄두었는데 끈질기게 이건 꼭 봐야하는 거라고 권해주는 친구 덕에 다시 시작해 이틀만에 싹 다 봐버렸다. 과연 꼭 봐야하는 드라마가 맞았다. 이 드라마는 선량하고 무해한 인간에게 바치는 찬가와도 같다. 착하기만 해선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듣싫은 사람들 다정히 잡아 주면서 착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으다.

한편으론 퇴근길에 뭐 사갈까 묻고 청소기 밀고 설거지하는 박동모습이 어쩜 그리 내 남편과 닮았는지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전문직에 상무까지 올라가는 배경은 빼고) 한결같이 말없고 성실하고 착한 모습이 때로는 속상하고 짜증날 때도 있지만 그게 바로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 죽었다 깨나도 나는 그와 같은 인격을 가질 수 없을거라고 종종 생각한다. 결혼한지 십삼년이 넘으니 이제 남편에게 측은지심이 많이 생기고 아마 남편도 나에게 그럴 것이다. 부부는 서로가 불쌍해지기 시작하면 게임 끝이라는데. 작가님도 아마 그런 거 잘 아나봅니다...


마지막에 지안이가 너무나 맑고 화사한 얼굴이어서 참말좋았다. 게다가 내가 그리도 부러워하는 사원증 목걸이를 걸고서 말야. 지안이가 끝내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은 정규직(으로 추정되는) 목걸이 힘도 컸을 것이다.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행에는 꼭 한번쯤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미생에서 장그래도 그랬듯. 막강한 힘을 가진 이가 그런 기회를 많이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 그러려면 일단 착해야 하는데...

 

이 드라마 속 명대사와 명장면 너무나 많았지만 상처받은 동훈이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못했습니다  열 번 말하라던 밤은 오래도록 못잊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말해보고픈 사람들이 있다. 잘못했다고 열 번 말해주면 이제 그러지 말자고 하고는 인간은 한 겹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하고 싶다. 그러나 이제 그러지 못할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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