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일기

by 정짜이

넷플릭스와 왓차를 번갈아 결제하며 컨텐츠에 노예가 되어 한동안 독서와 글쓰기를 멀리하였다.

지인들의 추천작들을 몰아봤는데 넷플의 나의 아저씨. 먼훗날 우리는. 두 교황. 찬실이는 복이 많지 등등 었다.


'먼훗날 우리는'은 그냥 뻔하게 결말이 예상되는 첫사랑 추억팔이 영화 줄 알았다. 보다보면 '8월의 크리스마스' '첨밀밀' '비포썬라이즈' 같은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가난한 연인에게 절실한 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좀 다르긴 하다. 거슨 바로 아파트! 요즘 세상에 아파트 장만하기가 이리 어렵습니다...

친구가 이 영화는 앤딩크래딧까지 꼭 봐야한다길래 뭐가 나오나했더니 사람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나오길래 러브액추얼리여 뭐여~ 피식 방심하다가 눈물보 터졌다. 다들 헤어진 연인에게 하고픈 말들을 늘어놓는 거였다. 안부도 묻고 그리워도 하고 미워도 하고 그러면서 안녕을 다. 누구에게나 애틋하다 못해 가슴을 후벼파는 그 이름 첫 사랑, 첫 연애, 첫 이별. 첫번째인 그것만큼 찌질하고 절절한 것이 또 있을까.

영화를 보며 이미 타락한 40대 아줌마의 심정으로 반전이 있길 내심 바랐다. 예를 들면 그 게임 지분의 40프로 정도는 샤오샤오에게 바친다 라든가. 러나 끝내 그런 말은 없었다. 하여간 일편단심 뒷바라지 해주는 여자의 말로는 늘 이모양이.


'나의 아저씨'는 5화 까지 보다가 우울하고 힘들어서 한 동안 미뤄두었는데 끈질기게 이건 꼭 봐야하는 거라고 권해주는 친구 덕에 다시 시작해서 이틀만에 싹 다 봐버렸다. 과연 꼭 봐야하는 드라마가 맞았다. 이 드라마는 선량하고 무해한 인간에게 바치는 찬가와도 같다. 착하기만 해선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듣기 싫은 사람들게 다정히 손 잡아 주면서 착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으다.

한편으론 퇴근길에 뭐 사갈까 묻고 청소기 밀고 설거지하는 박동훈의 모습이 어쩜 그리 내 남편과 닮았는지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전문직에 상무까지 올라가는 배경은 빼고) 한결같이 말없고 성실하고 착한 모습이 때로는 속상하고 짜증날 때도 있지만 그게 바로 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 죽었다 깨나도 나는 그와 같은 인격을 가질 수 없을거라고 종종 생각한다. 결혼한지 십삼년이 넘으니 이제 남편에게 측은지심이 많이 생기고 아마 남편도 나에게 그럴 것이다. 부부는 서로가 불쌍해지기 시작하면 게임 끝이라는데. 작가님도 아마 그런 거 잘 아나봅니다...


마지막에 지안이가 너무나 맑고 화사한 얼굴이어서 참말로 좋았다. 게다가 내가 그리도 부러워하는 사원증 목걸이를 걸고서 말야. 지안이가 끝내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은 정규직(으로 추정되는) 목걸이 힘도 컸을 것이다.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행에는 꼭 한번쯤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미생에서 장그래도 그랬듯. 막강한 힘을 가진 이가 그런 기회를 많이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 그러려면 일단 착해야 하는데...

이 드라마 속 명대사와 명장면은 너무나 많았지만 상처받은 동훈이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못했습니다 를 열 번 말하라던 그 밤은 오래도록 못잊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말해보고픈 사람들이 있다. 잘못했다고 열 번 말해주면 이제 그러지 말자고 하고는 인간은 한 겹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하고 싶다. 그러나 이제 그러지 못할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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