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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Oct 28. 2021

여름이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농담 중에 그런 게 있다. 아무문장이나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글이 된다는.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볼 참이다. 정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지난 일이 아름다워질까나.


지난여름, 남편이 퇴사를 다. 

그동안 그의 고민과 고생을 알기에 말릴 수가 없었다. 대책을 마련하고 그만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남편이 종일 집에 있게 되자 아이들은 신이 났다. 큰아이는 살짝 "아빠 회사 그만뒀어?"라고 물었지만 한 달만 쉬기로 했다 하니 그렇구나 하는 눈치였다. 둘째 아이는 마냥 신이 났다. 실은 나도 좋았다.  우린 모두 남편의 빅팬이다. 어느 정도냐면 남편이 집에 오면 모두 달려가 서로 먼저 독차지하려 경쟁을 벌다. 그렇게 좋은 남편이자 아빠가 24시간 집에 있다니!  코로나 19만 아니었으면 신나게 놀러라도 다녔을 테지만 시국이 이모양이니 그럴 순 없었고 아무리 가정경제에 큰 역할을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까지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 출근시간에 모두 집을 나서서 나를 데려다주고 (엄마 돈마니 벌어!) 셋은 가까운 공원이며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동굴 등등을 다니다가 내 퇴근시간에 맞춰 데리러 왔다. (엄마 돈마니 벌었어? 아니...)

다시 4단계가 되고 나니 정말 갈 곳이 없어그때부터는 매일 집에서 서로 뒹굴고 살 부비고 이야기하며 그 어느 때보다 거리를 둘 수 없는 로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쉬기로 하였으니 마냥 즐겁게 걱정 없이 쉬면 좋겠지만 그날의 즐거움을 소진하고 나면 불안이 파도처럼  려오는 어쩔 수 없었다. 밤이 되고 아이들이 잠들면 특히나 그랬다. 최선을 다해 희망을 이야기해보지만 딱히 희망적인 소식을 나눌  없다는 것은 곧 절망이었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이럴 때만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는 성경구절이 떠오르는지. 만나를 내려주시던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지. 

이직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희망부서에 경력과 호봉을 그대로 인정해주며 집에서 다닐만한 거리의 곳을 찾기란 더더욱 힘들었다. 게 맞으면 저게 안 맞고 저게 맞으면 이게 안 맞고. 이렇게 가다간 아무 곳도 못 가는 거 아닐까 싶남편은 점점 더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다시 출근을 하던 아침, 남편의 얼굴은 결연하면서도 우울해 보였다. 아마 내 얼굴도 비슷했을 것이다.


결혼하고 모든 것이 마냥 좋았던 신혼시절, 17평 좁고 낡아서 오히려 낭만적이었던 그 집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첫아이를 낳고서도 그랬다. 우린 지금보다 앞으로 더 가난해질 것이다. 둘째를 낳고서는 만약 남편이 아프기라도 하면 이제 우리 구는 나락에 떨어지겠구나 하는 생각 했다. 우리가 함께 하는 모든 행복한 시간과는 별개로 그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재정적으로 지금보다 부자가 될 확률이 희박하다. 가끔 서로에게 농담을 한다. 어쩌면 이렇게 조금도 조건을 보지 않고 결혼했지? 찐 사랑이야, 이건. 사실 결혼 전까진 미래 경제에 대해 둘 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어쩔 수 없이 달라졌다. 남편은 먹고살기 위해 새로운 진로에 뛰어들었고 나 역시 출산 했던  해를 빼고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아르바이트를 며 생활비를 벌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득으로는 노후는커녕 몇 달도 보장할 수가 없을 이번 여름에 뼈저리게 깨달았. 연봉과 성과급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점점 더 좋은 도시 평수를 넓혀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굉장히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 사실 돈이 많지 않은 것보다 더 큰 비극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자신을 하찮고 쓸모없는 루저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야지 안 그러면 늙어서 폐지 줍는다는 말을 어린아이들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세상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이내 억울해지곤 했다. 무 게으르게 살고 있나? 지금이라도 투잡을 뛰어야 하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결단을 내려서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너무 낭비하고 있나? 더 몰아붙여야 하는 건가,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좀 더 가혹해져야 하나? 우린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일하고 로를 랑하며 살고 있는데 늘 가슴 한 켠에서는 불안과 자책이 맴도는 것 같다.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어 좀 더 벌지 않으면 미래가 없을 거라는 그 생각으로 괴로웠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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