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짜이 Oct 27. 2021

비건은 아니지만

난 고기를 좋아한다. 몇 권의 책과 영화를 보면서 (모르는 게 마음 편했을) 육식 위주의 삶이 어떤 비극을 낳는 것인지 새삼 충격을 받고 회의가 들긴 했지만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에 이미 찌들어려서인지 고기를 먹지 않는 삶을 실천할 의지는 없었다.


지금까지 비건을 만나본 적도 없었다. 어쩐지 비건이라 함은 뭔가 진취적이고 싱그럽지만 까다로운 젊은이들일 거라는 편견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한 모임에서 우연히 비건을 만났다. 다 함께 식사를 해야 해서 최고의 난제인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던 중 모임의 누군가가 요리도 같이 먹을 수 있는 식당에 가는 것이 어떠냐고 했고 그제야 이중에 고기를 먹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도 두어 번 그 모임에서 밥을 먹게 될 때면 또 다른 누군가가 비건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골랐다. 서로에게 배 것 같다. 누군가가 비건이라 하 놀라거나 탓하지 아니하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 찾보면 된다는 것을. 그 사람이 오기 전에 음식을 시켜야 했을 때는 "아, 그분은 비건이라 이런 메뉴를 하나 더 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는 것을. 그리하면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서로 존중받는 식사를 할 수 있다.


가만 보면 누구 하나만 희생하고 소외되며 노동하는 식탁이 의외로 많다. 예를 들어 대다수의 며느리들의 명절상이 그러하다. 다 먹지도 못할 무수히 많은 음식들을 주로 며느리들이 죽어라 차려내고, 먹는 동안에도 시중을 들다가, 치우는 것까지 책임진다. 우리 시댁은 그래도 많이 달라져서 아들들 상차림과 치우기에 동참하지만 아직도 식사시간 내내 종종거리는 것은 며느리들이고 끝나고 나면 어마어마한 음식물 쓰레기들을 적당히 처리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며느리들이다. 


시간, 노동, 자원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으며 무도 불행하지 않은 사시간을 바라는 . 비건의 마음이자 며느리의 마음이자 또 이 땅의 수많은 약자의 마음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봤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우리 애는 책을 안 읽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