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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Nov 23. 2022

가는 길목

11월이 떠나간다. 시간이 참 잘도 가네.


아이들이 중학교, 초등학교나란히 입을 했던 올해. 큰아이는 격정의 사춘기를 지나는 중이라 고생, 둘째 아이는 제 딴에는 학교라는 거대한 조직에 발맞추려 고생. 나는 괜히 걱정하느라 고생이었. 마냥 원격수업만 하던 작년과는 다르게 학급별로, 학년 별로 전면 등교가 시작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한 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하여 온 학교가 문을 닫고 검사와 격리를 반복하던 것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하기야 수난시대를 통해 류를 위협하던 질병 앞에서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어떻게 방법을 찾아내는지 배우기는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의 3월은 적응기간이라 12시 20분 정도에 하교를 했다. 때만 해도 코로나 이슈가 터지면 바로 하교 조치를 했기 때문에 1교시 마치기 전에 하교 알림이 울린 적도 서너 번은 되었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 한숨 돌리자마자 긴급 하교 공지가 울려서 다시 데리러 가는 는 길, 꼭 나와 같은 종종걸음을 한 엄마들을 마주치곤 했다. 그래도 바로 데리러 갈 수 있으니 다행이지  맞벌이 가정에서는 어찌하려나, 얼마나 애가 탈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 앞, 쏟아져 나오는 많은 아이들 중에서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내 아이 환하게 빛을 발하며 나를 찾는다. 3월, 아직 코가 시린 바람에 움츠린 봄날. 제 몸통만 한 책가방을 멘 작은 아이가 디어 엄마를 보고 좋아웃으며 달려오는 그 찰나. 손을 잡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리 마음이 좋았던 걸 보면 나도  엄마긴 엄마였다. 반면 중학생 아이 멀리서 나를 발견하는 날이면 못 본 척하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서 황당하 서운하고...


봄날을 지나며 온 가족이 코로나19를 앓았고 후유증으로 여름 내내 여기저기 병원 다니며 보내다가 이제 좀 괜찮아졌나 싶었더니 가을이 훌쩍.


지난달에는 6개월 만에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손바닥에 땀이 고일 정도로 긴장이 됐다. 다행히 작년에 비해 크게 나빠진 것은 없으니 이제 9개월 후에 오라 하시는 교수님 그 한마디에  내내 오그라들었던 마음이 스팀 다림질한 것 마냥 촉촉하게 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병원문을 나서기도 전에 내 곁을 스치는 엉엉 우는 젊은 여자, 무한 대기 중인 진료도 보기 전에 지쳐버린 노인들, 환자복을 접어 입고 휠체어에 앉은 맥 빠진 아이들을 보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또 쪼그라든다. 병원이라는 곳이 그렇다.


이제 내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딱 알맞은 시기에 무언가가 짠짠 나타나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겠지. 실하게 쌓아 올린 능력으로 건설적인 삶을 사는 지인들을 보면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이 피어오른다. 나는 이미 글렀다, 라기엔 서글프고 나도 아직 청춘이어라, 라기엔 주책맞네. 가슴에 불을 지피고 싶은데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하기가 멋쩍은 내 나이.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들으면 설레는 마음이 때로는 버겁다. 연말이면 반복되는 이런 지겨운 투정은 그만하고 싶지만 여기에 써본다. 가을이 가고 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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