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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Nov 18. 2022

당신의 인생을 사세요

사춘기열전

열네 살.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는 어느덧 키가 180 센티미터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더 이상  옛날, 나만의 사랑스러운 기 천사가 아니다. 2차 성징을 온몸으로 폭발하는 미성숙한 인간. 슨 말을 건네도 왜요, 뭐요, 싫어요.로 대답하 같이 화를 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대며 뒹구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는 시기. 정의 사춘기를 보내는 중.


말로는 다 못할 많은 변화들 중서도 사주는 대로 주워 입었던 시절 이제 끝이라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아이는 내게 자주 링크를 보낸다. 무땡땡 사이트의 장바구니 링크. 엄마, 이것 좀 주문해줘. 답을 하지 않으면 덧붙인다.  엄마가 사주기 싫으면 내 용돈으로 살게. 하나같이 왜 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옷들이다. 가뜩이나 땀이 많아서 한겨울에도 기모를 입은 적 없던 놈이 한여름 7월 중순에 기모 후드 집업을 왜 사는 거지? 그뿐이 아니다. 98년에나 유행했을 법한 통 넓은 바지. 두꺼운 면 카디건, 예일로고가 써져있는 맨투맨과 티셔츠들(일대학에서는 알랑가 몰라. 동방의 작은 나라, 경기도 ㅂㄷ읍 ㅇㅇ리의 미들스쿨 아이들이 그네들 대학로고 옷을 단체로 입고 다닌다는 사실을) 검은색만 주야장천 사길래 맘에 안 들어서 왜 이리 칙칙하냐 했는데 그 후론 흰색만 산다. 그것도 맘에 안 드네. 그 빨래는 누가하라고오...


지난 뜨거웠던 여름날, 대중교통으로 먼 곳에 가야 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게 더운 바지를 입고 나섰길래 가족과 함께 외출할 때만이라도 그 옷을 입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 아이는 왜요, 싫어요를 반복하더니 눈물까지 보이며 왜 자기는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없냐며, 그렇게 보기 싫으면 자기를 쳐다보지 말란다. 나라 잃은 백성도 그렇게 서럽진 않 것이고 그렇다고 자기를 쳐다보지도 말라는 버르장머리 없는 말에 또 한 번 울화가 치미는데 외출시간이 임박해서 더 이상의 실랑이는  포기하고 을 나섰다. 오늘 너랑 말 한마디 하나 봐라. 다짐하면서. 그리고 종일 땀에 젖어 더워하는 걸 보고 있자니 결국 그러게 왜 엄마 말을 안 듣고 그 고생이냐고 한 소리를 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결국 고백했다.

오늘 너무 더웠어, 엄마. 다음부터는  들을게.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그 두꺼운 바지를 입고 내 앞에 다.

예의 도전적인 그 눈빛으로.

바지를 입기만 한다면 세상 모든 것을 제 뜻대로 할 수 있을 것 마냥.

나도 똑같이 쏘아보다가 그만 웃고 말았다.

그래, 네 멋대로 해라.



그런 아이가 하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학교에서 공모전이 열렸다나. 수필, 시, 소설, 그림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자기는 소설을 쓴단다.

소설을 왜?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이 아이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여름방학 동안 폰만 너무 들여다보고 있길래 친구 녀석 한 명을 불러 소설 필사를 하기는 했다. 그러면서 단편도 몇 편 억지로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소나기'를 필사하며 이 소녀, 너무 무섭다 공포물 아니냐 하고.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읽고서는 돌싱글즈 나가면 될 일인데 하던 아이다. (방심하다가 빵 터짐)


대체 쓸건대? 엄마는 상관하지 말란다. 그럼 나한테 왜 얘기한 건데. 아이는 하루 전날에야 늦도록 키보드를 두들겨댔다. 제출하기 전에 한 번만 보여주면 맞춤법만 고쳐주겠다니까 펄쩍 뛰며 절대로 엄마에겐 안 보여줄 거란다.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야, 나 문창과 나온 여자야. 평을 하겠다는 게 아니고 틀린 거 있으면 고쳐주겠다고. 그러나 아이는 또 이글이글 불을 태운다. 엄마가 보면 제출 안 하겠단다. 관하지 말란다. 그래서 결국 아이는 단 한 줄도 보여주지 않은 채 인쇄를 하더니 방문을 쾅 닫고. 그렇게 그날 밤 우리는 또 싸우고..


다음날 아이는 학교에 갔다. 컴퓨터를 켜 둔 채. 그런데 소설은 바탕화면에 보란 듯이 저장되어 있었다. 


나는 읽었다. A4 6장을 꽉 채운, 아이의 첫 번째 소설을. 


주제는 27살 용사가 되고 싶은 지질한 청년의 모험 대작전이라 해야 하나. 읽으며 솔직히 좀 놀랐다. 문학적으로 잘 쓰인 글이어서가 아니다. 점수로 매긴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의 엄마 아닌가.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아이의 내밀한 세계를 본 것만 같았다. 웃기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읽다가 눈길을 끌었던 문장이 몇 개 있는데.




풍경은 아름다웠다. 해가 지고 있는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아직도 여덟 살 동생하고 싸우는 녀석에게 이런 감성이?

내가 감히 우리 문학 최고로 뽑는 이문구 선생님'일락서산'의 마지막 문장이 떠오른다.


최애 소설의 최애문장. 사진은 제자시절 직접 찍은 교수님.


쇠락하는 마을 해가 지는 모습. 두 번 바꾸어 쓴,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마지막  문장.


다시 한번 옛집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 너머 서산마루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지는 해가 있었다.


아이 저 소설을 읽은 적은 없겠지만 지는 해를 가만히 바라본 적은 있었나. 그렇다면 바라기는, 부디 '관촌수필'을 꼭 읽어보를.



눈길을 끌었던 또 다른 문장은 연애담이었는데



작년 겨울에 아이는 여자 친구랑 사귀다 헤어졌었다. 어린것이 무슨 연애냐고 잘 헤어졌다고 했었다. 그러나 녀석은 아마도 꽤나 슬펐나 보다. 그날 밤 말도 없이 난방 텐트 따수미 속으로 기어들어가더니 한참을 훌쩍였다. 동생만 안방에서 자는 게 질투 나서 그 덩치에 안방 구석에 따수미를 갖다 놓은 주제에 이별했다고 울기는. 나는 깔깔댔는데 그때의 감정을 저리 담아냈다니. 어쩌면 아이는 나에게 저 말을 듣고 싶었을지도.


우리는 널 보며 생각했어. 넌 완벽하고 착한 아이야. 그러니까 힘들어하지 마렴.

 

(저런 말 해주지 못하고 마냥 놀린 것은 미안하다...)


하교 후 아이는 내게 물었다.

엄마 그거 봤어?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은 같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날 아는 사람에게는 보여주기 싫고 날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고. 내가 그 맘 알지. 아이는 아마 그 마음 언저리에서 갈팡질팡 했을 것이다. 나는 말했다.

봤어. 잘 썼더라. 미리 좀 보여줬으면 좋았을걸.

아이는 씩 웃더니 그런데 아마도 수상은 못할 거라고. 그리고 소설 쓰기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안 할 거라고 한다.

그래, 엄마 생각도 같아. 힘들지, 그렇고말고.



덧붙이자면, 아이의 소설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러니까 이제 당신의 인생을 살고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부탁입니다.


(그... 그럴게.)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하지 말라고들 하지만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 말을 육성으로 듣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엄마의 인생을 살고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라고 하면 아주 고마우려나?그럴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네.


용사가 되고 싶었던 주인공은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일주일을 보내고 먼 길을 떠난다.

아들아, 읽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 나에게도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소설 중 장 인상 깊은 소설이었음을 여기서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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