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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Dec 07. 2022

빚지다

'쇳밥일지'에 쓰는 마음

여러 번 쓴 것 같다. 제대로 직업을 가진 적 없는 자격지심에 대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정규직으로 일해본 적이 없.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하기는 했다.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학원강사를 (하며 어려서 몰랐기에 노동력 착취를 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원장님 부부 정말 너무했다. 오후 2시부터  10시 반까지 일하는데 저녁 먹을 시간도 따로 주지 않아서 5분 만에 김밥을 욱여넣으며... 그래도 재미있어서 했다. 졸업 후에는 어리지도 않았방송국에서 (노동력 착취를 당했다고 쓰기엔 내가 하고 싶어 안달나서) 했다. 유달리 빠른 포기 능했기에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 후로도 회사나 학교, 사회복지시에서 근근이 일하긴 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았고 늘 최저시급 언저리의 일용직, 계약직 뭐 그랬다. 그래도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들을 해가면서 어찌어찌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는 건 나를 둘러싼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도권에 살고 성실하신 부모님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돈이 없어서 굶거나 못배운 적은 없었으니. 그런데 그런 울타리가 없는 이들은 어째야 하나? 즘 세상에 술만 배우면 먹고살 수 있다던데, 공부 쪽이 아니면, 가진 게 없으면, 뒷받침해 줄 사람 없으면 일찌감치 기술 배우는 게 낫지.
다들 게 말한다.


'쇳밥일지'를 쓴 천현우 작가는 그 말 그대로 일찌감치 기술을 배운 청년이다. 사연 많은 가정의 빚쟁이 몰리는 환경에서 특성화고와 전문대를 졸업해서 공장에 취직한다. 그럼 정말 돈 벌어 빚도 갚고 차도 사고 결혼도 하고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한 노동의 세계는 잔혹하다. 기술만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더니 굶어 죽지 않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란 저임금에 고강도 노동을 해야 하는 것, 크고 작은 산재들 속에서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는 휴게시간 보내야 하는 것, 게다가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잘 나가던 공장은 망하고 잘 나가는 공장에서는 정규직이 될 수가 없다. 그 안에서 그나마 개인의 저력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다.

작가는 실직과 구직을 반복하 쉬지 않고 찾아오는 불행에 맞서며 독서와 글쓰기, 운동으로 용접 노동자의 삶을 온몸으로 버티어낸다.

서울, 도심의 번듯한 회사에만 mz 세대로 통하는 청년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공장에도 청년들이 있다. 기술만 배우면 버티기만 하면 굶어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온 힘을 다해 성실하게 노동하는 청년들. 그러나 애초에 성실해질 기회 얻기가 힘든 청년들. 니들은 흙수저에 노력도 안 했으니 그리 사는 거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 모두 진작에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용접을 처음 경험하던 순간을 그려낸 장면. '천천히 진군하는 용융풀은 나긋하게 산책 나온 주홍 반딧불이 같다'라는 문장에 그제야 책 표지를 들여다보았다. 내 인생에서는 어쩌면 한 번도 보지 못할 고글 속 용접 장면이 아름답게 사무쳤다. 아버지 부고를 받고 사장님께 어렵게 하는 말. 그런데 차비가 없다고. 그러자 사장이 서랍 아래 죽은 바퀴벌레를 보는듯한 얼굴로 이만 원을 던졌다는 문장에서는 오래 울었다. 짠내 나는 로맨스에는 주먹을 쥐고 응원했고 직 성실한 노동만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린 띠동갑 넘는 노동자 아재들을 향한 통찰 박수를 보냈다.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싶을 정도로 가슴이 저리다가 나의 저림마저도 사치가 되는 것 같아 부끄러웠던 책.


청년 천현우는 결국 자신이 쓰는 글을 세상에 알려 기자가 되어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이 책을 남겼고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있고... 삶을 담은 글의 힘은 정말이지 세다. 더 세져야 한다.

그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서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꼈으면 한다고 했다. 전태일이 살아있었다면 그렇게 말해주었을까. '쇳밥일지'를 읽고 나면 누구 마음에 빚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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