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짜이 Aug 18. 2023

스위치를 누르면

 퇴근길, 버스를 타려는데 거리는 거대한 찜통 같고 하필 오전에 어깨 치료받은 날이라 몸은 늘어지는데 버스는 왜 이리 안 오는지 혼자 괜히 화가 나서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씩씩대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자꾸 나한테 "눌러요, 그거 좀 빨리 눌러요" 이러시는 거다. "뭘요?" 했더니 내 옆에 스위치를 가리킨다. "이게 뭔데요?" "아유 참. 저거 누르면 위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니까."

눌러봤더니 정말 머리 위로 시원한 바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에어컨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청량한 바람이. 아, 살 거 같아. 언제 이런 게 생긴 거지. 바로 옆에 앉았으면서도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던 스위치.

"어머, 전 몰랐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씩 웃으신다. 옆에 커다란 짐을 들고 힘겹게 서있던 외국인 남자분도 웃고 땀에 젖은 채 스마트폰만 보던 학생 두 명도 웃는다. 바람이 끝나갈 무렵, 버스가 왔고 나는 일어서면서 다시 한번 스위치를 눌러줬다. 버스에 올라 차창 밖을 내다보니 숨 막히는 더위 속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저 정류장 아래 바람을 맞는 사람들만 저마다 조금씩 머리칼을 날리며 한 뼘 씩은 웃는 얼굴이다.
꼭 마법처럼.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