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 처음 써보는 드라마
박해영 작가의 작품을 그 전에는 본 적이 없다.
그냥 이야기만 들었다. ‘또 오해영’이나 ‘나의 아저씨’를 추천 드라마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로. 특히 ‘나의 아저씨’는 꼭 봐야 할 인생 드라마라는 말도 들었다. 그냥 인생이기 때문이라고.
드라마를 끝까지 보는 것이 어려운 체질이다. 하고 싶은 게 많다보니 본방사수해야 할 그 시간에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이른 잠을 청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늦게까지 모임에 있거나, 다른 취미 활동을 하고 있어서이고, 나는 잠을 이기면서까지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다. 국민 드라마였다던 ‘모래시계’, ‘첫사랑’을 못 보았다. 과거에 OTT 서비스가 없던 시절엔 본방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한번 놓치면 내 입장에선 띄엄띄엄 이야기가 전개되니 끝까지 긴장감을 갖고 볼 수 없었다. 이런 내가 최종화까지 본 드라마를 말하자면 본방사수는 아니었기에 덕후 인증은 못하겠지만, 넷플릭스로 본 ‘동백꽃 필무렵’이 있다. OTT 서비스가 등장해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지만 최종회까지 시청한 건 드물다. 아주아주 오래 전 ‘궁’, ‘최고의 사랑’ 이 드라마는 밤을 새며 "읽었다". 밤 새워 만화책 쌓아두고 읽듯이 드라마 목록을 쌓아두고 읽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내가 끝까지 본 드라마의 특징이 있을까 싶어 하나하나 좀 이야기해보려 한다.
동백꽃 필무렵’
친구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말 속에 자주 등장하고, 절친인 그가 추천해서 보았다. 주말에 넷플릭스 영화를 보려다가 인기 드라마 분류에 이 드라마가 떠 있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첫 회를 재생했다. (제목만으로는 안 끌려서) 추천으로 본다고 해도 끝까지 보는 이유는 따로 있다. 1회차에 나온 남자 주인공이, 내가 사랑하던 사람과 비슷했다. 촌스러운 그, 그러나 인간미 있는 그 주인공을 보고 재생을 중지해야겠다는 생각을 잊었다. 그 뒤로 계속 재생이 되었다. 주말에 시작된 드라마 '읽기'였으므로 끝까지 읽어냈다. 드라마의 주인공 공효진 배우를 좋아하는데 그 시작은 ‘네멋대로 해라’에서였다. 이때 우리 아빠와 외모가 닮으신 복수 아버지(신구)와 그의 아들로 나오는 가난한 복수(양동근)가 좋아서 이 드라마를 봤다. 물론 이야기의 힘도 있었겠지만 나와 가까웠던 사람을 닮은 캐릭터가 큰 몫을 했다. 그들이 떠오르며 내 추억을 잡아 끌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들과 함께 한 순간에 머무르게 하며 의미를 재생산했다.
비현실적인 드라마 ‘궁’은 대한제국 황실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황태자비가 되는 평범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최고의 사랑’은 심장이 약한 그 시대 스타와 사랑에 빠지는 연예인 이야기이다.
‘궁’은 종영된 뒤에 수능 끝나고 탈탈 털린 영혼과 육체에 생기를 주려고 보았고, ‘최고의 사랑’은 내가 돈 벌지 못할 때 삶에 지쳐있을 때 챙겨 보았다. 현실을 탈출하고 싶어서 드라마를 밤새 쌓아놓고 ‘읽었다’. 현실 탈출엔 그만한 게 없다. 탈출했지만 다시 일어나보면 지긋지긋한 현실에 돌아와 있었다. 그 드라마들이 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지긋지긋함을 날릴 힘을 주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내가 한 드라마를 끝까지 보는 이유가 심리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탈출하고 싶어서거나, 내게 처한 상황 혹은 내가 만난 사람과 비슷한 캐릭터가 있는 드라마여서였음을 알았다. 참을성이 부족하여 모두 종영된 뒤에 봤고, 주말에 만화책 밤새워 읽듯 읽었음을 알았다. 감상 패턴이 있다.
꽤 오랫동안 보다가 끝까지 안 봤던 드라마도 있다. 드라마 중에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을 드라마가 있었다.
그녀는 예뻤다
어린시절 예뻤던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가장 형편이 악화되고 외모 컴플렉스가 점점 도드라져 못생겨진 캐릭터였다. 그녀가 명랑하게 살아보려는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였다. 신선하긴 했다. 왠만한 드라마 주인공들은 여신급 외모를 가졌는데 현실 드라마지만 그저 판타지 같았다. 내겐 이야기 전개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공감이 되지 않아 몰입이 안 되고 흥미가 없어졌다. 어떤 경우엔 온갖 악조건을 갖춘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미모가 여신급이라 재벌과 연애를 한다든지 등, 중간까지 보다가 현실성이 떨어져서 흥미를 잃었다. 아무리 멋진 남자 주인공이 나와도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서 재생 중지, 챙겨보지 않았다.
‘별에서 온 그대’
다음 편이 궁금했지만 본방이나 OTT로도 챙겨본 적이 없는 드라마였다. 드라마 덕후는 아니었나보다.
‘도깨비’
판타지였고 재미 있었다. 본방 사수하며 본 적은 없다. 그냥 텔레비전을 켜서 흘러나오는 대로, 식구들이 볼 때 옆에서 몇번 보고, 직장 동료와 화젯거리 이야기할 정도로, 각종 패러디에 쓰이면 알아볼 정도로만 봤다. 본방사수한다는 건 굉장한 정성이다. 요새처럼 바쁜 저녁시간이나 챙겨보지 않아도 흘러나오는 각종 컨텐츠들이 있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에 관심이 그다지 없는데 부러 본 적이 있기도 하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고. 왜냐면 대화 속 화젯거리가 되므로 그 안에서 소외감 느끼지 않으려고.
박해영 작가의 이 드라마는 8회 쯤 알았다. 초등 동창 셋이 놀러간 카라반에서 한 친구가 자신이 즐겨보는 드라마라며 끝까지 채널 사수를 하기에 보게 되었다. 그 때 나온 장면은 염미정이 만든 동아리 ‘해방클럽’에 행복 지원센터 팀장이 뭐 하는 곳인지 알아보러 온 모임 장면이었다. 밋밋해보이는 드라마 장면과 느릿느릿한 말투들, 무표정한 배우들이 나오는 그장면은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대강 보았는데, 친구의 설명도 곁들여 흘끗흘끗 보는데 뭔가 재미가 느껴졌다.
어디에서 재미가 느껴졌을까. 많은 이들이 그럼 것처럼 구씨의 존재가?
아니, 내겐 염미정의 말이었다. 전 남친이 돈을 갚지 못해서, 돈 달라고 말하자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 속에 하는 말들이 콕 박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내 직장의 역할-부장-에서 밀리고 있었다. 스스로 옭아매고 있었다. 친구들과 간 캠핑에서 부장 역할이 힘들어서 숨이 막힌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드라마 속 염미정(김지원)의 대사는 다른 아픔이었지만 염미정과 내가 웃지 못하는 상황,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상황을 하나씩 쥐고 있었다. 슬픈 동지 염미정을 더 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카라반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나는 박해영 작가가 궁금했다. 넷플릭스에 ‘나의 해방일지’가 있다는 걸 알고 1회 재생을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금 조금씩 보았다. 평일에도 한 편씩. 재생을 누른 이유는 한 회 한 회 내가 공감하는 대사, 나와 비슷한 동지들을 만나고 싶었다.
내 동지들…
‘나의 해방일지’를 치면 드라마 기획의도가 포함된 화면이 보인다. ‘경기도에서 거주하며 서울로 출퇴근 하는 이들의 빡빡한 삶을 그렸다.’
어라, 내 이야기네 하며 첫 회를 시청했다. 처음 보는 작가 스타일에, 담담한 드라마 특징에 빠져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 속에도 박혀들어오고 있었다. 창희(이민기)가 연애를 하면서 도드라지는 별볼일 없는 자신이 되는 걸 확인하는 것, 상대도 그걸 알고 결국엔 헤어지는 이야기, 집이 멀어 일찍 가야하는 미정에게 동료들이 집순이라고 부르는 거라든가, 기정(이엘)이 퇴근은 해 있을 때 했는데 밤이 되어야 도착한다며 가잔맥진한 장면. 어쩜 저렇게 현실적이지, 공감하면서도 이렇게 내 동지들이 직접적으로 드라마에 등장할 수 있다니 싶었다. 그런데 이 현실을 피하고 싶도 숨기고 싶도 탈출하고 싶은 게 아니라 계속 보고 싶게 하다니.
공감하는 드라마.
나와 같은 삶을, 통근의 피곤함을 느끼는 동지들을 드라마 속에서 보며 한회도 빼지 않고 보고 있다. 내가 원래 보던 드라마의 재미나 힘든 현실 회피로서가 아니라 ‘공감’으로 보고 있다.
물론 내 현실은 염씨 삼남매 통근거리보다 멀 것이다. 염씨 가족들은 마을버스 타고 탈 수 있는 지하철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버스밖에 없는 내 입장에선 버스 시간이 지하철처럼 시간이 정확하지 않아서 더러 지각을 한다. 서울 직장 살이를 멈추고 싶다. 경우에 따라 3-5시간을 길에서 보내고 있으니 에너지가 점점 줄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누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역시나 부담이 된다.
때로는 내게 “어디 사냐”, 질문한 후에 원거리 통근길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의 말이 왜 나를 더 메마르게 하는지 몰랐었다. 드라마에서 염미정이 지인들에게서 장거리 출퇴근길을 걱정하는 말들을 들을 때의 흐려진 눈빛을 보았다. 나와 같음을 읽었다.
그 때 알았다. 내 동지를 그려낸 작가의 의도를.
걱정하는 말을 한 사람들이 살짝 비아냥거리는 태도라도 있었다면 흉이라도 보겠지만, 진짜 걱정을 담은 걱정이다.
“번 돈으로 교통비 장난 아니겠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얼마야, 그러지 말고 집에서 나오라.”고 정말 다정한 말투로 걱정을 해주신다.
“집이 멀어서 힘들겠다, 멀리로 이사갔다며. 출퇴근 괜찮아? ”라고 걱정을 해줘도 왜 나와 염미정은 메말라지고 눈빛이 흐려질까.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구나. 많은 이들이 느끼는 감정임을 거울처럼 보여준, 그 장면에 멈춰서 버렸다.
내가 들었던 말들, 태도마저 진심어린 걱정을 바탕에 깔고 있는 말이었는데 “그러게요. 허허” 하며 헛헛하게 웃으며 별말없는 내 자신,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나 전철(드리마 속 어떤 얄미운 캐릭터는 전철이 뭐냐 지하철이라고 부르라 했다. ) 안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염미정과 같음을 자각했다.
늘 같은 시간에 나오는데 오늘은 차가 막혀 10분 지각했다. 평소엔 20분 전에 도착하는데, 월요일 출근길이 이렇게 불확실하다. 집 가까운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 그러나 그게 안 되지.
6시 10분, 이른 아침 일터로 가기 위해 광역버스를 타러 나간다. 버스안에 사람들이 정말 많다. 비슷한 시각, 차를 몰아야 할 때도 있다. 진짜 밤늦은 새벽이 아닌 이상 새벽 경부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 도로에는 차들이 많다. 이른 새벽 출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나는 내 현실을 거울처럼 투사해주는, 심지어는 내가 자각하지 못한 감정까지도 눈으로 보여주는 이 드라마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난 출퇴근 길의 해방을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정처럼 출퇴근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해방을 원하는 것인가, 생각해보려 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출근해야 하는 지금의 삶. 출퇴근 시간만 줄어들어도 조금은 나아지려나 이 삶이. 어떻게 꾸려가야 할 것인가. ‘나의 해방일지’에서 내가 당면한 해방은 출퇴근의 압박에서 해방이다. 해방되면 어찌되나. 창희처럼 소중한 가족을 돌볼 수 있나.
오늘도 이른 아침에 깨어 일터로 가는 사람들과 한 정류장에서 만나 인사도 없이 한 버스에 탄다. 거의 매일 만나는 같은 버스, 같은 자리를 고수하는 여사님, 내 앞에 항상 앉아 좌석을 뒤로 젖혀 잠들 준비를 하는 회사원,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버스에 탑승하고 있을까.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라고 한다. 평소보다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 유의미한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도권 통근을 하다보니 자동적으로 미라클 모닝의 기본인 기상 시간은 이뤄냈다. 그럼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보내는 출근길 2시간+ 퇴근길 2시간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난 미정이가 했던 말처럼 뭔가를 배우고 싶지 않다. 미라클 모닝을 버스에서 이뤄내는 사람들은 철인이다. 그러나 난 아니다.
박해영 작가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궁금하다. 내 동지들의 이야기가.
오늘 내 드라마 리뷰는 출퇴근과 관련된 ‘해방’이었지만,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부분에서 ‘해방’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내가 구속되었던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해방의 출발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