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흔들림이 있었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게 하는군요.

by 글담연

나의 꿈을 이룬 것은 늦은 시기였다. 그 뒤늦은 꿈이 나에게 두 번에 걸쳐 다가왔다.

그 시기, 나는 언제부터 초등교사가 되고 싶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아! 20여 년 전, 광화문을 지날 때였다.


20년은 숫자로는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방향은 정확하지 않으나) 종각역에서 광화문쪽으로 2차선 도로가 통제되었고,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을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피켓을 들었다가 내렸다하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었다.

간혹 멈춰서 구호를 외치고, 함성이 되어 거리를 가득 울렸다. 행진하는 사람들에게는 장대에 커다란 깃발들이 수십 개가 나부끼고 있었다. 평소엔 지나쳤는데 그날은 멈춰서서 무슨 뜻을 알리려는 집회를 하는지 자세히 보았다. 전교조 깃발이었다. 어? 나는 두리번거렸다.


이날 집회는 교육부가 학생 기록부(일명 학생부)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자 교사들은 정보의 지나친 집적화로 우려되는 인권보호를 위한 투쟁을 하는 집회였다. 전교조 주최로 NEIS (네이스) 반대 집회를 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근무하던 나는 2003년 그 집회를 바라보며 초등학교 교사가 된 선배언니가 떠올랐다. 수많은 행진 인파 중에 언니를 찾아보겠다고 생각한 내가 웃기겠지만, 언니가 지나가고 있는지 정말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선배 언니는 전교조니까 저기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결국 찾지는 못했다. 그런데 문득, ‘저분들 멋지다. 저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경이 생겼다.


이 마음 뭐지?


당시 회사를 다니는 내 입장에서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가 좋아보여서 갑자기 동경한 것은 아니었다. 교육을 고민하고, 사회를 고민하며,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새 시스템 도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모습에 감탄했다.


‘사회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는 동료들이 저렇게 많은 곳이 있구나. 교사 동료들은 든든하겠다.’


선배 언니를 찾으려고 뚫어져라 보던 그 행진에, 갑자기 나를 그 자리에 두고 싶었다.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렸다. 두번째였다.


그럼 첫번째는 언제인가?


27년 전, 성당 전체 신자들을 대상으로 가을 추수가 끝난 넓은 시골(!)에 야외미사를 간 적이 있었다. 버스 몇 대에 어른, 아이들, 청년들 다양한 연령대의 신자들이 탑승하여, 야외미사를 드리고 도시락을 먹고 오는 행사였다.


20대 청년들이 모여서 봉사활동했던 우리 단체는 행사 안내 등의 스탭으로 참여하였다. 행사장 관리 및 길 안내와 통제 등의 역할을 맡았다.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전, 어른 신자들이 신부님과 마지막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종일 성당의 진지한 행사에 지친 어린 자녀들은 추수가 끝난 논에서 와다다다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고삐가 풀린 듯 달려나갔다. 그걸 보고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뛰어나갔다. 순식간에 모여있던 아이들이 모두 흩어져버렸다. 행사 관리 담당이었던 우리들 중 발빠른 청년 두명 정도가 깜짝 놀라서 아이들을 데리러(실제로는 잡으러) 뛰어갔다. 옆에 있던 신자들은 이제 조금 있으면 버스 탑승인데 저 아이들을 어찌 챙겨가야 하나 걱정된 듯했다. 우리 단체장은 우리에게 지령(!)을 내렸다.


“애들을 잘 몰아와라.”

양떼를 모는 양치기 강아지처럼 선배 언니 오빠들은, 천방지축인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양치는 강아지처럼 몰아오기 시작했다. 선배 몇명이 몰아오거나 일대일로 잡아와서 앞에 앉힌 아이들은 너무 일찍 잡혀서 입이 부루퉁하게 나와 있었다.

그때였다. 나는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이리 와 보세요.”

몇몇이 내 앞으로 뭔 일인가 싶어서 왔다.

“여러분, 심심하죠? 그럼 같이 노래자랑 시간을 가져볼까요!”

“네!?” 하더니, “와아아아!!!!”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자 퍼져 있던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저기 뭔 일이 있나 싶어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우스꽝스럽게 술술술술 하고 있었다. 애들은 깔깔깔깔 웃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다.

“그럼 누구 한 명이 나와서 노래해볼까요?”

“와!!! 너무 좋아요!”


아까보다 더 큰 아이들 고함 소리에 논두렁을 마구 달리던 아이들은 갑자기 방향을 우리쪽으로 틀어 우르르 몰려들었다.

땀나게 아이들을 쫓아다니던 청년들은 ‘읭?’하며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넉살맞게 사회를 보고 있었고, 아이들은 배꼽 잡으며 웃고, 배꼽까지는 안 잡았을지는 모른다.하지만 그 것 분위기는 정말 기억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신이 났다. 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가 나왔고, 환호했고, 박수치고… 그리고 성당의 모든 아이들이 내 앞에 와서 앉아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이윽고 성당 행사ㅣ 모든 것이 정리되고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사를 마치고 타고 왔던 버스에 탑승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과 나는 이제 뭔가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이동해야했다.


우리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한 걸 아쉬워하며,

“벌써 끝났네요. 이제 버스에 타세요.”하며 파했다.


일주일 후, 단체의 모임이 있었다. 단체장 선배오빠가 나를 보고 말했다.


“아멜리, 너 초등학교 교사하면 진짜 잘하겠더라.”


나는 우리나라 현실 상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없는 일반 대학 코스를 밟고 있었다. 내게 쓸데없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하하하, 네.” 웃으며 한 귀로 흘렸다.


야외 행사날 논두렁에서 애들을 몰아오느라 열심히 뛰어다니던 선배 오빠였다. 내가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모이게 하고, 애들을 웃기며 앞에서 열연한 것을 보았다. 평상시 얌전하게 있던 나였기에 선배는 나의 색다른 모습을 보았고 칭찬인듯 인사를 겸했던 거였다. 그에겐 가벼운 소리였다.


하지만 내겐 가벼운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아이들과 잠깐이지만 함께 있었던 그 시간, 나는 고백하건대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그날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남몰래 뿌듯함을 느꼈다. 한편으론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기에 놀랐다. 그 장면을 본 선배가 지나가듯 던진 그 말은 내 무의식으로 가라앉았다. 그 뒤로 나를 부추기는 마음의 소리가 되었음을 나는 안다. 그 말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 마음을 흔들었다.


논두렁에서 잽싸게 달리던 그 아이들, 잡을 수 없는 아이들을 향해 뛰던 우리 단체 선배님들, 그때 내가 뭔가 해야겠다고 느껴서 .“여러분, 모여 보세요!“라고 소리쳤다. 나도 모르던 모습이 튀어나왔다.

아이들과 있을 때 내 모습은 재능 같았다. 웃음 코드가 맞는 아이들 앞에서 저절로 행동과 말들이 흘러나왔다. 내가 논두렁에서 발휘한 재능이 뿌듯함으로 남아 있어서 좋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선배가 지나가며 한 말을 듣고, 인정받았다고 느낀 것이다.


그 뒤로 내가 8년 뒤, 세상이 바뀌었다. 정부정책에 따라 무료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도 수능을 공부할 수 있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회사 사직을 하고 EBS와 강남구청 수능방송으로 공부해서 교대에 입학하여 예비교사의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을 용기있고, 대단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희망이 없는 배팅을 해야할 때 대담한 용기가 필요한 것인데 나에겐 희망보다도 더 큰 것이 있었다. 확신. 나는 그저 확신을 갖고 돌진했다.


어린이 캠프 봉사활동에서 수시로 발견하게 된 어린이들을 향한 나의 말 재주와 어린이와의 소통능력 ‘재능’, 어릴 때부터 형성된 직업 ‘소명’의식, 잠깐 발현된 모습에 때마침 선배가 알아보고 던져준 말로써‘공증(!)’받은 소질. 이 세가지를 마음에 심어두고 확신을 갖고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겪은 과정은 힘들고 괴로워서 서러워서 우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펼치며 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든든한 동료들이 있는 곳에 가서 살고 싶었기에 꿈을 이루고자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다.



세종로를 행진하던 그 선생님들 속에 들어가 한 사람 힘을 더 보태고 싶었던 나,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날마다 결심했던 나, 스스로 재능을 알아차리고 소명의식을 갖고 뒤늦게라도 어려운 길을 걸어온 나. 소망하던 그곳에 내가 발딛고 있는 것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못하는 것을 특히나 경계했던 나였던 만큼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걸어온 길을 잊지 말고 성찰하며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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