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해석하는 일
얼마 전, 티빙에서 흥미로운 실험관찰 예능을 본 적이 있다. 150명의 사람들이 사주팔자와 MBTI 중 어느 것이 자신을 더 잘 해석해주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제는 ‘연애’. 본격적인 매칭에 앞서 두 해석 도구를 통해 감수성과 표현력 같은 성향을 분석했고, 전문가는 이를 바탕으로 “이런 상황에서 이 사람은 춤을 출 것이다”, “눈물을 흘릴 것이다” 같은 행동을 예측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예측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이 실험은 이후 연애 매칭으로 이어졌는데, 사주궁합이 잘 맞는 커플과 MBTI 궁합이 좋은 커플을 각각 짝지어주었다. 흥미롭게도 실제로 커플로 발전한 경우는 MBTI로 맺어진 쪽이 많았다. 프로그램은 결과적으로 MBTI 쪽에 더 신뢰를 두는 듯한 뉘앙스로 마무리되었고, 총 2회 방송 후 막을 내렸다. 이 짧은 시도는 인간 해석의 욕망이 얼마나 크고도 유행을 타는지를 보여준다.
사주팔자는 “통계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높은 벽이다. 어렵고 생소한 한자들, 음양오행의 흐름, 생년월일과 시간의 복잡한 조합은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전문가의 해석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기 힘들고, 상담을 받더라도 남는 건 어렴풋한 기억뿐이다.
반면 MBTI는 클릭 몇 번으로 결과를 알 수 있다. 친절한 텍스트 해석, 유형별 설명, 장단점, 주의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 16가지 유형은 일종의 현대판 별자리처럼 사람들 사이에 들어와 있다. “나랑 맞는 유형은 뭐지?”, “가장 게으른 MBTI는?” 같은 질문은 유머와 심리 사이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회자 중이다. MBTI는 그 자체로 놀이가 되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MBTI를 물어보는 일이 낯설지 않다. 그 속엔 단순한 호기심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상대를 ‘알고’ 싶다. 그래야 대화를 조율할 수 있고, 어쩌면 내 기대를 조절할 수 있다. 상대가 E형이라면 먼저 말을 걸 수도 있고, I형이라면 조심스레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간단히 나뉘지 않는다. 나 역시 어떤 날은 사교적이고, 어떤 날은 고요함을 택한다. 어느 연수 자리에서 내가 조용히 있자 누군가 말했다. “내성적이신가봐요.” 나는 설명하려다 그저 웃었다. 해석은 늘 간편하지만, 그 간편함이 모든 걸 설명해주진 않는다.
사람은 왜 이토록 타인을 해석하고 싶어할까? 이해를 위함일 수도, 조율을 위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더 필요한 건 ‘자기 해석’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서 내 에너지가 고갈되는지를 아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그것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첫걸음이다.
사주든, MBTI든 — 해석의 틀은 도구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았는가이다. 해석은 단지 방향을 가리킬 뿐, 걸어가는 일은 결국 나의 몫이다.
다음 글에서는 AI 시대에 ‘인간 해석’이 어떤 유용함을 주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리고 나는 왜 타인보다 나 자신을 해석하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는지도, 조용히 고백해보려 한다.
<참고자료>
프로그램 소개
https://www.tving.com/contents/P001707290
리뷰
https://m.blog.naver.com/ezazniki/223081902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