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이라고 속상해하는 너에게
몇 년 전, 학생들과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출을 했다. 작품을 희곡으로 직접 각색하여 만드는 무대라 기대가 컸지만 배우들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갈등 끝에 간신히 마무리 한 연극은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했지만, 다시는 덤벼들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한편으로 연출가로서 연극배우는 어떤 느낌을 받는지 알고 싶었다. 단역으로 캐스팅 되어 풀죽은 학생에게 ‘엑스트라도 소중하단다.’라고 이야기했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엑스트라보다 주인공과 조연이 더 소중하지 않나 싶었으니 말이다.
결국 난 엑스트라든 주인공이든 배우의 맘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여 수소문 끝에 시민들을 위한 연극 학교에 연극을 배우러 갔다. 나는 연극을 잘할 사람이라는 기대가 있어서 가는 길이 설렜다. 연극에 대한 근자감이라고 해야할까. ‘근거없는 자신감’이었지만 40여 년을 살면서 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연극을 해본 경험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학기말 행사로 하는 학예회가 전부였다. 지나가는 개구리 역을 했던 그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는 연극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시민 연극 학교에서 나는 별로 튀지 않고 꾸준히 출석했다. 코로나가 사회를 휩쓸어버렸던 시기였기에 20명 중에 3명만 남았다. 조용한 존재감으로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 연극학교에서의 트레이닝 과정이 끝나고 졸업을 위한 작품이 선정되었다. 제목은 <분장실>, 일본 연극이다. 배종옥, 서이숙 배우가 공연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3명 중 누가 졸업작품의 주인공을 딸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나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주인공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였다. 하지만 목소리 성량이나 표현력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뒤지지 않았다. 복식호흡을 배우진 않았지만 체육관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응원구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표정 연기나 사실적인 감정을 담아 성대모사하기는 지인들이 늘 칭찬하는 부분이었다. 외모에서 하늘하늘한 드레스가 어울린다거나, 청순가련이라거나, 얼굴이 창백하다거나 하는 구시대적인 여자배우의 면모는 없었지만 연기력으로 자신감이 있었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대본 리딩을 하는데, 잘하려는 마음으로 했더니, 담연 씨, 감정 좀 덜 넣어봐요. 발음이 왜 이래. 하는 지적을 받았다. 나는 쭈뼛쭈뼛했다. 그리고 나는 여배우 B가 되었다. 주인공은 투탑으로 여배우 C와 D였다. 여배우 C는 호리호리한 키의 나이는 최고 연장자인 언니가 받았고, D는 최강동안으로 얼굴이 하얗고 청순한 언니가 되었다. 연극학교에서 트레이닝 할 때부터 나는 첫 배역을 받았을 때 실망감이 먼저 다가왔다. 가장 인물이 좋은 사람이 주연이었고, 나는 가장 덜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어떠할 때는 할머니 역, 미치광이 종교인 역 등이었다. 짧게 등장해서 분위기를 들쑤셔놓고 들어가는 역할들이었다.
연극을 보러 갔을 때 주연 배우가 선남선녀일 때를 떠올려보면 당연한 결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상업적인 연극이다. 정통 연극은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라 생각해서 연극배우로서 자신이 있었다. 주어진 외적 조건은 좀 부족해도, 연기력으로 예술성을 뒷받침하고, 대사 하나하나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력의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르라서 연극에 근자감이 있었다. 그런 연극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팀이 졸업작품에 캐스팅 되는 것을 보고, 정통 연극이라 믿었던 이 무대도 결국 외모가 기준이었나 싶어서 허탈함이 밀려왔다.
배우 세 명 중 가장 적은 분량의 배역을 맡은 나는 허전함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이 연기에도 영향을 미쳐서 주연들이 연극 디렉팅을 받을 때 옆에서 지켜보면서 씁쓸했다. 두 주인공들이 감정을 쌓아가며 말과 행동을 이어나가다가 표현이 안에서 끌어나오지 못할 때에, 한 마디로 연출 디렉팅 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컷하게 된다. ‘나라면 더 잘할텐데.’하는 자만심도 가졌다.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으려나 하고 뒤에서 흉내내기도 했다. 서로의 연기를 따라하며 웃기도 했기에 언니 배우들은 나를 귀여워했다.
어느 날 연출님은 내게 디렉팅을 하다가 나의 행동을 보고 웃기다고 생각했는지, 그 뒤로 몇 가지 웃긴 포인트들을 행동에 집어넣었다. 발성이 좋다며 소리지르는 역할을 추가하였다. 행동 동선을 복잡하게 블로킹하면서 현란한 동작을 하도록 시도하였다. 내 역할이 점점 복잡해지는 과정에서 살짝 짜증도 났다. 주연보다 복잡해지는 디렉팅에 조연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연출에게 슬쩍 물었다.
“연출님, 저는 조연인데 왜 이렇게 열심히 디렉팅하세요? 주연들에게 더 신경쓰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담연씨, 당신 역할은 대비야.
저 두 주연은 매우 정적인 캐릭터라서 연극의 메인을 담당하고 있지만 무거운 분위기라고.
하지만 담연씨가 나오는 장면은 한껏 띄워놓는 가벼운 장면이야. 그렇기에 대비되어 뒷부분의 주제의식이 팡 하고 부각될 수 있는 거지.
당신이 최선을 다해 띄워놓으면 이 연극의 맛이 더 살아나는 거야. 적당히 하면 그 정도의 맛만 날 거고.”
그 순간 나는 조연이, 엑스트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날 나는 무대를 한껏 뜨겁게 뒤집어놓고 퇴장하였다. 무대 뒤에서 다음 등장을 위해 서 있으면서 주연배우가 천천히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주연배우가 연극의 주제를 관객에게 던지는 장면을 보면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와 협업으로 만들어낸 그 장면이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역할은 없었다. 주연배우는 단지 주제를 말하는 키를 가졌을 뿐,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이가 각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비록 조연에 캐스팅 되었지만 연기력이 주연보다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구나. 단지 이미지와 맞는 역할이었음을 이해했다. 내가 신나게, 경박하게 돌아다니던 무대를 주연배우들이 나와서 무겁게 만들어 놓으면 비로소 관객들은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메시지를 위해 연극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존재하는 거였음을 알아냈다.
나는 그날 이후 단역이나 조연으로 캐스팅 되어 속상해하는 학생들을 위해 연출자로서 할 수 있는 몇 마디 경험치가 생겼다.
“네가 아주 작은 역할이라고 해도,
네가 무대에서 연기한 그 장면에 최선을 다한다면,
네 덕분에 연극이 빛이 나는 거란다.”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은 삶에 뚜렷한 윤곽을 긋는다. 전에는 백지처럼 막연했던 부분이 대비를 통해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 마치 암전에서 조명이 켜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