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부캐는 연극배우 : 연극연출가를 만났습니다

시민연극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by 글담연


불확실한 사회 속 부캐의 시대입니다. 실버세대들이 살아가는 법이 궁금하신가요. 그분들과 연극을 만드는 연출가를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


성공회대학 대학원생인 연극 연출가를 만나 인터뷰한 것은 우연이었다. 대학원 수업에서 인터뷰 글쓰기 과제가 있었다. 나는 인터뷰 대상 추첨을 통해 선생님을 뽑았을 때, 사전 정보 없이 이름만 알고 헤어졌다. 인터뷰에서 뭘 물어볼지 낯설었지만 설레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인터뷰 직전 그의 삶에 영향을 준 결정적 장면과 자기자신을 닮은 캐릭터에 대해 쓴 글 두 편을 읽고 그가 10년차 실버 세대 연극지도자이자 강인하고 소신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교육연극과 시민 참여 연극에 관심이 많은 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실버 세대를 위한 연극을 지도하는 분과 인터뷰할 공짜티켓을 얻었다. 서로 바쁜 몸이라 인터뷰는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짧게 50분간 이루어졌지만 연극을 중심으로 짧지만 상당히 많은 내용의 인터뷰 분량을 얻었다.

어떻게 구슬들을 꿰어 개성있는 글로 짜낼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12.3. 비상계엄이 발생하였다. 시국 불안정 속에서 인터뷰 정리는 엄두가 나지 않아 못하였다. 12.14. 탄핵이 가결되면서 막힌 속을 뚫으며 본격적으로 인터뷰 정리를 시작했다. 인터뷰를 몇 차례 다시 읽어보고 나의 인식틀에 맞춰 재구성을 하다보니 ‘시민 참여 연극의 양적확대’, ‘부캐의 시대’를 키워드로 뽑아낼 수 있었고, 관련 키워드로 몇몇 학술지 원고들을 읽었다. 학자들이 주체적인 시민사회, 포스트 모던 문화 현상을 서술한 글을 읽으며 황 선생님의 활동과 내가 시민 참여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사회적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다. 몇 가지 문제의식과 궁금한 점들이 있었지만, 추가 질문을 할 만한 시기를 넘긴 점과 간단한 인터뷰 글을 작성하는 수준에서 소논문의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은 시간상 불가하여 요청하지 않았다.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은 어떤 곳일까?


우리 대학 문화대학원에는 꽤 오래된 입학 노하우가 겹겹이 쌓여 있고, 두터운 지층같이 형성된 친목을 겸한 학술적인 네트워크가 있다. 이를 통해 전국 각지, 먼 곳에서 기꺼이 오는 학생들이 많다. 우리대학교가 KTX가 정차하는 광명역 근처에 있기 때문에 기차역이 있는 지역이라면 문화대학원 학생이 될 수 있다. 전국에서 학교에 등하교하기 및 졸업학점 수강 노하우는 구전으로 전파되면서 “그 곳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모인대.”라는 말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황 선생님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대학 문화대학원 (일명 문대원) 사람들 중 한 분인 황 선생님 인터뷰를 정리해보았다. 우리 대학이 추구하는 시민사회 육성과 문화대학원의 사회 트렌드에 맞춰서 두 가지 키워드를 추려보았다. 주체적인 시민이 되기 위한 예술적 방법, 보편화된 온라인 문화가 만들어낸 멀티 페르소나에 익숙해져 자아실현이 직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인들을 위해 부캐의 활성화가 그것이다. 이 두가지 키워드를 아우르는 “문화대학원”에 지역에서 기꺼이 입학한 24학번 황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가 만난 곳은 문화대학원 수업이 주로 있는 건물 4층의 규모가 큰 휴게공간이었다. 학술제를 앞두고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이 곳에서 황 선생님을 맞이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처럼 부당한 것들 잘못된 것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표현하는 당당한 캐릭터로서 살아가는 분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살짝 긴장되었다.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그녀는 10여년전 노인을 위한 한글 교사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어르신 대상 연극수업을 하고 있다. 보람할매 연극단이라는 팀을 만들어 현재는 고유번호증이 있는 단체로 성장시켰다. 보람할매 연극단을 이끌며 연극 공연을 하다가 최근에는 할매들과 랩을 시작해서 랩 공연도 하고 있다. 바야흐로 2020년도부터 유재석의 도전에서 시작된 연예계 대표적 트렌드로 부캐 열풍이 불어 사회현상으로 확장되고 있는 요즘, 사회적 역할인 어머니, 직업으로서 농민의 역할에서 부캐인 배우로, 래퍼로서 불리는 실버세대가 나타난 것이다. 본고에서는 어머니라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한 호칭을 썼다가, 글의 주제상 그분들의 부캐인 연극배우 또는 래퍼로 칭하려고 수정하였다.


원래의 그 사람을 ‘본캐’라고 하는데, 본래 캐릭터를 줄인 말이다. 부캐는 게임에서 활용되는 말이지만 2000년도부터 경제 불황에 시달려 부업을 여러 개 뛰는 N잡러 시대를 반영하고, 2000년대 들어 개인에 눈뜨면서 진정한 나를 찾는 열풍이 불면서 나의 취향과 즐거워하는 것을 누리는 것이 중요해진 개인의 시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하재근, ‘부캐, 또 다른 나를 찾다’)


그러한 의미에서 황 선생님이 연극배우인 보람할매 연극단의 구성원들을 바라보면서 하는 말은 본캐인 어머니, 농사일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부캐인 연극배우를 통해 개인들이 진정한 나를 찾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한 황 선생님 역시 본캐인 업에서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찾아냈다.


“연극을 하면서 그분들의 삶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뿌듯하고 좋았지만 연극을 창작하고 활동하는 일이 저에게 굉장히 희열을 느끼게 해줘서 지금은 다른 일들을 정리하고 연극 지도만 해요. 보람할매 외에도 지역에서 50대 이상 은퇴 세대들에게 연극 만드는 일을 같이 하고 있어요.”


매슬로우의 기본 욕구 중에서 자아실현의 욕구는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고, 자신의 본업인 본캐에서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적성, 흥미 등을 고려해서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엔 신자유주의 사회가 만들어준 직업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박봉에 시달리는 사람들, 100개가 넘는 이력서를 넣은 후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는 자본논리에 따라 일해야하는 거대한 부속품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대체되는 인간의 소외를 경험하는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성취하라고 하기엔 사회기반이 너무 얄팍하다. 이런 시대에 개인들은 얇은 월급봉투, 아니 통장을 스쳐지나가버리는 월급 때문에 찾게 된 부업에 자신의 취향도 대입시켜서 보다 행복한 일을 찾으려 한다. 그렇게 뛰어든 부업이 시장성이 확인되면 본업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연극이 어떻게 넝쿨째 들어왔을까?




황 선생님에게 연극 지도 부업은 우연히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선생님은 연극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때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연극공연을 했고,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다가 아이들이 조금 큰 후에 인형극단에서 인형극을 배우고 공연하였고, 늘배움학교에서 성인 문해력을 위한 한글 강사를 했다. 1년에 한 번씩 늘배움학교 마을끼리 장기자랑을 하는데 트로트에 맞춤 율동을 준비해서 발표하는 경우가 흔했다. 다양하게 무대를 만들면 관객들도 볼 거리가 있고 좋지 않을까 하여 한글 교실 어머니들에게 연극을 발표하자고 제안했다.

연극이 가진 전문성, 시간성 등으로 우리가 연극 무대에 어떻게 서냐고 주저하는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은 수업 때 함께 읽었던 ‘훨훨 간다’를 갖고 어머니들 눈높이에 맞춰서 대본을 만들고 연기도 보여주었다. 선생님의 설득과 적극성에 어머니들도 용기를 얻어 공연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5분짜리였는데 어머니들은 연습 기간 동안 농사일에서 떨어져 극 속의 인물이 되며 때로는 황새로 분장하여 그에 맞춘 의상도 갖춰서 다양한 동작을 하였다. 관객들은 자기가 알던 옆집 순이 엄마의 변신에 재미있어 하였고 연극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어머니들은 첫 무대에서 맛본 성취감이 놀라울 정도로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음을 알았고, 황 선생님 말대로 한 것을 잘했다고 느꼈다. 이후 황 선생님이 또 연극하자고 제안하자 선생님과 함께라면 무조건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한글 교실에서 대본을 읽으면서 글자를 자연스럽게 읽게 되고 10분짜리에서 30분으로 연극 시간도 늘려가면서 연극을 만들었다. 10년이 되면서 보람할매 극단에서 연세 많으신 분들이 은퇴하고, 마을 부녀회원들이 들어와 연령대가 다양해지고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의 확산을 고려하면 부캐의 의미는 결코 재미에 머물지 않는다. 부캐로 운위되는 멀티페르소나가 각 개인의 내면에 자리한 다양한 자아를 인정하고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실패의 가능성을 허용하는 여정이다. (중략) 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태에게는 본업이 아니므로 흠결이 되지 않는다. 부캐를 통해 실패의 자유를 얻었다. 생계라는 지리멸렬에서 거리를 둠으로써, 부캐들은 마음껏 도전하고 성공을 기뻐하며 실패 앞에 내일을 기약한다. (강민희, 이승우, ‘멀티페르소나의 사례와 의미’)


농사일을 하는 어머니들이 연극배우 부캐를 선택하면서 생계에 거리를 둠으로써 실패의 자유를 얻고, 황 선생님과 함께 하면서 마음껏 도전하고 성공하면서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느낌에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실버세대에게 인생의 후반부를 걷는다고, 에너지가 줄어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람할매 연극단에게는 어림없는 말이다. 황 선생님과 함께하는 이 연극단의 활약상을 보면 놀랄 것이다.


“1년에 공연 몇 편 올리면서 보람할매 연극단을 유지하고 있고, 현재 7작품 정도 만들었습니다. 공연 요청이 들어오면 관객들에 맞는 것을 여러 작품 중에서 선택해서 올리고 있어요. 현재 공연 의뢰와 보조사업에 선정되는 것을 합쳐서 1년에 30회 정도의 공연을 하고 있어요.”


선생님과 함께 한 보람할매극단이 마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어머니들이 연극하는 마을로 명성을 쌓으며 마을 내에 공연장을 짓게 되었다. 공연장이 있는 활기 있는 마을로 전국의 마을에서 배우고 싶다며 견학을 많이 온다. 그렇게 마을회관 무대에서 공연을 자주 하고, 초청받아서 사례 발표를 하기도 했다. 찾아가는 문화활동으로 요양원에서 공연을 하고, 교육청을 통해 학교나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과 실버세대가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한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했던 연극 활동이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멈췄다. 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넘기고 2024년까지 유지할 수 있었을까. 코로나로 인해 문화예술계가 신음을 했던 시기였기에 보람할매들은 연습도, 공연도 할 수 없었다. 연극단의 존재 이유인 공연이 없어지니 너무 힘들어하셔서 황 선생님은 실험실 사업을 지원하며 랩에 도전을 했다. 그동안 선생님의 지도로 연극을 하면서도 자신의 일상을 쓰고 시를 쓰면서 시집까지 출판했기에 일상 속에서 시처럼 랩 가사를 쓰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지역의 래퍼를 초빙하여 랩의 기초를 배우고 가사를 다듬으며 랩을 했다. 주제는 마을 소개, 어머니들 자신의 일상, 칭찬 등 여러 가지 랩을 만들었다. 선생님은 10대부터 80대까지 랩으로 소통하는 페스티벌을 기획했다고 한다.

“어머니들이 랩 하시는 것을 유튜브로 홍보를 했더니 랩 공연, 연극 공연하는 실버세대로 이슈가 됐네요, 작년에 고용노동부에서 우리가 캠페인 영상을 하나 찍었어요. 그게 또 알려져서 보람할매단 모두가 영화 섭외까지 됐어요.”


2020년 12월 SBS 스페셜 ‘N잡 시대, 부캐로 돈 버실래요?’ 에서는 ‘평생 직장은 없다’는 신념 아래 본업 말고 자신의 취미와 직무 관련 재능을 활용하여 다양한 수익을 창출하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중략)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본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해소하고,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한편, 자기변화와 자기 성장의 발판을 삼기도 한다. ‘사회 구조는 유연해지고 사고방식도 유연해지면서 새로운 직업의 탐구, 출현 등 앞으로도 부캐들은 계속해서 다원화될 것’임을 강조한다. (홍단비, ‘초연결시대, 복수 정체성에의 욕망과 문학적 상상력’)


보람할매극단은 젊음과 자유의 상징인 랩에 도전했다. 부캐는 이제 연령을 초월한 활동을 지지한다. 사회의 다원화는 우리가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편견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 할매 래퍼들의 활약상이 방송을 타고 전파되어 영화배우 부캐활동도 추천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개인의 자아실현을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부캐활동은 이전에도 있어왔다. 2020년에 방송에서 열풍을 일으키면서 주목받게 되었을 뿐이라고한다. 이제는 수많은 것 중에서 연극을 선택하여 부캐 활동을 하는 이분들의 속내와 사회적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2000년대에 김병주는 <교육연극의 확장-시민연극>에서 Applied Theatre/Drama를 ‘시민연극’으로 사용하자고 하였다. 이는 교육연극의 전통적인 무대인 학교 중심, 학생 대상의 연극 활용 수업과 차별화한 것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계층의 사회 대상으로 개인 및 사회의 변화, 공동체의식의 함양과 계발 등의 진보적이고 참여적인 제반 연극 활동을 지칭한다. 이 시민연극은 ’연극을 통한 교육’으로서 ‘연극을 통한 개인과 사회의 변화’라는 넓은 영역과 주제로 확장되었다고 보았다. 연극이라는 예술 형식이 참여자들과 예술가들로 하여금 미학적 체험의 과정을 겪으면서 궁극적인 개인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의 힘을 이끌어내는 ‘변화의 촉매제’가 된다고 하였다.




극단을 만들어낸 힘, 황 선생님의 연혁


보람할매단에서 황 선생님의 역할은 배우 빼고 모든 것이다. 연출, 극작, 매니저, 음향, 의상, 분장 등 필요한 모든 것이다. 어머니들이 농사일 하면서 대사 외우고 연기하는 연습 시간 맞추는 게 쉽지 않아서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코미디 작가의 꿈을 갖고 연극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든 학교든 연극 대본을 도맡아 썼고, 관객들은 연극이 재밌다고 반응했다. 대학에서도 연극 동아리에서 극작가 역할을 맡아서 동아리에 많은 시간을 보내서 어릴 적 꿈인 교사의 길을 밟지는 않았다. 졸업 후 결혼과 동시에 경력이 단절되었다고 한다. 보람할매단과 연극을 한 것은 10여년 전인데, 체계적으로 연극을 배우기 위해 지역의 연극극단에서 운영한 <나는 배우다>라는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연극공연을 마쳤다. 같이 공부하고 무대에 섰던 사람들과 시민극단을 만들어서 연극 사업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소외계층들을 위해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현대 연극사에서 아마추어 연극 전통은 상당히 두터운 역사를 형성한다. 민주사회 운동 현장 곳곳에서 촌극, 탈춤, 마당극이 연행되었다. 90년대에는 교육과 치유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화예술교육사업이 확대되면서 교육연극, 연극놀이, 만들기에 관심이 확대되었다. 한국연극장에 아마추어-비전문인 연극의 필요와 가치, 새로운 연극하기의 방법에 대한 헤게모니적 시선이 해체되는 전환적 탐색의 흐름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중략) 특별한 매체의 도움 없이 배우의 몸과 육성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는 연극 특유의 기동성과 감각의 총체성, 관객 앞에서 실연을 통해 완성된다는 집단 구성의 가능성은 소수자/억압받는 자의 자기 재현과 정체화에 주요한 도구가 되어 왔다. (박상은, ‘누구를 위한 연극 : 동시대 시민 연극의 질문과 연극예술의 경계’)


황 선생님과 극단을 만든 동인들은 이러한 연극의 가능성을 몸소 체험하고 연극을 기획하여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연극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다. 황무지와 같았던 지역에서 연극을 소외계층에게 전파하면서 시민들의 자아찾기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힘을 깨달은 황 선생님은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연극의 길을 걸었던 것을 깨닫고, 이후에는 연극과 관련된 일만 남기고 정리하여 연극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극단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고, 축제 기획을 위한 현장의 경험과 이론을 알고 싶었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들에게 우리대학교 문화대학원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연극을 지속하는 힘을 찾아서



“연극은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실버 세대들이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예술을 체험하기 좋아요. 그분들에게 연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존 작품으로 연극을 만들어도 좋지만 어머니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 훨씬 더 생생해요. 자기 이야기의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이니 연기가 아니라 그냥 있어도 그 사람인 거예요, 그러면서 치유되는 게 있어요. 자기 객관화도 되고요. 본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신을 다른 배우가 맡게 되면 그의 연기를 보고 내 삶이 저랬구나 저러니까 상처받았지 객관화가 되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극이 공동 작업이다 보니까 서로 이해해야지만 끝까지 갈 수 있어요. 욕심만 채워서는 또 되지도 않고 그래서 모든 면을 함양하는데 연극이 참 좋다는 거를 저나 어머니들이랑 너무 느껴가지고 앞으로 쭉 해나갈 생각입니다

어머니들이 제가 준비한 거에 대해서 군말 없이 따라주세요. 제가 준비한 만큼 기대치에 맞게 이루어 내시고요. 제가 없어도 장면 연습하고 있거나 미리 호흡 훈련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죠. 연극에 필요한 소품도 어머니들이 시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해온 것을 컨펌받고 직접 바느질 할 수 있다시면서 전대를 색깔별로 만들어 갖고 어떤 게 좋을까 고르기도 하고요. 서로 간식도 직접 만들어 오셔서 하는 열정들이 대단하세요.”


기획자로서 선생님도 대단하지만 농사짓느라 개인사로 바쁘시기도 할 보람할매 배우들이 오랜 시간 계속하는 힘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자기 마을에 대한 소속감과 사회적 나눔인 것 같아요. 마을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끈끈하게 이어왔어요. 마을에 연극단이 없을 때는 아무도 찾지 않는 산 아래 있는 조용한 시골이었어요. 저희 연극단이 생기고 마을에 활기가 생겼어요. 보람할매 극단이 칠곡에서는 10년 전 인문학 마을 콘텐츠로 선두여서 주민들이 마을에 공연장을 지었는데 ‘공연이 이어져야 한다, 방치하면 안 된다’면서 음악팀, 아이들 댄스팀도 불러서 공연하니까 마을이 북적북적해지는 거예요. 축제가 열리니까 사람이 모이고, 또 연극단이 잘 돼서 예산을 받아 무대가 열리니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마을에 견학을 오고 축제 구경하러 오고 이렇게 사람이 모이니까 자꾸 마을이 발전하고 있어요. 전원 주택들도 들어서고 수요가 생기니 실제로 땅값이 많이 올랐어요.

마을 주민 중에는 슈퍼하는 어머니가 계시는데 장사하면 하루 매출 5~6만 원이라도 받는데 그것보다 버스 타고 공연 가서 다른 분들한테 이렇게 공연을 보여주고 박수받는 게 더 좋으시대요. 보람 할매 배우들이 방송에 출연해서 알려지니까 시장에 나가면 “배우님 오셨어요.” 하고 알아봐 주시는 것이 좋으신 거예요. 노인회 인원으로는 극단 인원이 모자라니까 마을 부녀회원들이 몇 명 더 들어오시니까 서로 교류하면서 친밀감도 생기고 마을이 화합이 잘 되고 있어요. 그러니 마을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하시고, 배우의 꿈을 가졌던 분들도 있고,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하는 다양한 경험들이 굉장히 좋으신 것 같아요. 이번에 영화도 찍어서 서로 덕을 봤다면서 고마워하시더라고요.”


박상은은 <누구를 위한 연극, 동시대 시민 연극의 질문과 연극 예술의 경계>에서 다양한 미디어 기술의 확장과 발전의 시대에 연극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조직적이고 공적인 문화적 형식을 만들어내는데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했다. 시민 배우가 기술적이고 매체적인 차원에서 가장 소박하지만 개인의 실존적 고민을 공유하면서 만들어진 연극적 형식이 무대와 관객 간의 강력한 동시대성을 만들어내는 시민 연극이 출현했다.


시민 연극의 방식이 공적인 문화적 형식을 만들어냈다는 것과 실존적 고민을 털어놓으며 관객과 동시대성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 미디어는 할매들을 주목했다. 보람할매들은 영화에 섭외된 것이다. 극단을 이끌고 있는 황 선생님도 매니저로 참석했다가 캐스팅 되었다. 영화에 조여정의 친구로 나오고,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또다른 도전이지만 영화의 특성상 계속 재생되면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관객을 만난다는 점에서 그러나 피드백은 즉각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어떠했을지 추가인터뷰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삶의 활력을 주는 이 연극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자기 관리의 비결도 있다고 한다.

“어머니들이 공연을 해야 되니까 아프면 안 되잖아요. 미리미리 가서 침도 맞으시면서 건강관리를 하시고 배우니까 피부 관리도 해야 되고 옷도 좀 잘 갖춰 입고 다니셔야 되고 하니, 농사만 짓던 일상에서 벗어나서 생기가 넘쳐요.

우리 어머니들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공연을 다니시면서 좋은 일도 많이 하십니다. 공연이 필요한 곳이라면 무대를 올리고 있어요. 초청하는 곳 예산 상황에 따라서 봉사할 때도 있고 차비만 받을 때도 있어요. 예산이 넉넉한 곳에서는 필요한 만큼 넉넉히 받고요.


그렇게 공연을 하다보면 관객들의 반응이 모두 똑같지는 않아요. 어떤 요양원은 비교적 건강하신 분들이 있는 곳과 아프거나 의식이 없으신 분들이 있는 활력이 없는 요양원도 있어요. 그러면 리액션이 거의 없죠. 한두 명만 호응하고. 물론 관객의 호응이 있으면 조금 더 신나게 하지만 같은 연배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공연을 하게 돼요. 학생들이 관객이면 리액션이 좋고 특히 랩 공연은 학생들이 훅을 따라 해 주거든요. 그럼 또 신이 나고요. 연극의 완성은 관객이다. 연극배우들은 손주 또래 친구들한테 ‘멋있어요 같이 사진 찍어요.’ 이렇게 오면 굉장히 좋아하세요. 물론 주인공 위주로 몰려들기도 하지만 서운해하지 않도록 제가 중간에서 신경쓰고 있습니다. 영화 출연이나 방송 출연에서도 이야깃 거리가 되는 배우를 섭외하려고 하지만 제가 모든 8명이 다 출연하는 조건으로 공평하게 주목을 받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마추어 연극이 한국의 문화예술 운동에서 뿌리가 깊다는 이야기와 연극의 특성이 개인을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시민 참여 연극의 양적 성장은 주체적인 시민 사회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2023년 김수진은 <동시대 시민 참여 연극과 연기의 의미>에서 시민참여 연극의 연기는 주로 삶의 치유나 미적 체험 차원에서 언급되었던 연구에서 참여 행위에 초점을 맞춰서 일반적인 연극과 구별되는 시민들의 능동적인 사회적 활동으로 보았다. 이는 시민들이 연극에 참여하여 연기를 한다는 것은 모여서 관계를 맺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타인과 관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인간 존재에 있어서 관계맺기는 필수적인 활동이고 연극에 참여하여 연기를 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의 사회적 유의미함을 확인하는 능동적 행위이자 의식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마추어 연극이 여가 활동의 일환인 취미의 형태였지만 현재는 교육, 치유, 동시에 아방가르드 예술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연극이라는 예술 작품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사회성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 한국 시민 참여 연극의 양적 팽창은 과거 여가 활동으로서의 시민 연극과는 다른 동시대 연극이다.



조용한 마을을 활기 넘치게 하고,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황 선생님에게 중요한 점을 묻고 싶었다. 마을을 활성화시켜주고 사람들이 좀 더 활기차게 살게 해주고 이런 부분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위해서 기획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고 싶었다. 공동체를 활기차게 만들기 위한 기획을 하기 위해 어떤 역량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지 조언을 구했다.


“저는 공동체 구성원들과 라포 형성이 중요하다고 봐요. 지역 같은 경우에 보건소에서 하는 체조 교실만 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저희가 연극 사업을 이제 하고 싶다라고 갔을 때, 연극교실을 우리가 해도 되나 하면서 처음에 의심을 조금 하셨어요. 연극 교실 강사가 준비한 것을 잘 따라와 주시면 어려운 건 없으시다라고 설득해서 시작을 하셨는데 수업 10회 만에 작품이 하나 나온 거예요. 짧았지만 성과 공유회에서 연극을 올렸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었죠. 본인들도 무에서 유를 경험하고, 무대 위의 기쁨을 느끼신 거죠. 그러면서 계속 하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간식 싸들고 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책도 읽어드리고, 대사 연습도 같이 하면서 신뢰 관계가 쌓여갔지요. 마을에서 뭔가 하고 싶어서 젊은 사람들이 다가가면 관심 갖고 시간을 할애하시죠.”


시민 참여 연극으로 꿈꾸는 미래는?


앞으로 선생님은 어떤 계획이 있을까 싶어서 미래를 물어보았다.

“우리도 벌써 8년 됐으니까 준 전문가지만 계속 연극 훈련을 해야 돼요. 저희가 했던 것을 바탕으로 프로그램 틀을 갖고 주강사와 보조강사로 신입회원을 모집해요. 이렇게 역량 훈련을 하고 팀으로 같이 활동하면서 연극 교실을 운영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정도 독립할 수 있을 때 마을들마다 여기저기 파견되어서 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겠죠. 그럼 연극으로 네트워킹되어 연결될 거고요. 저는 지역에서 실버 연극제로 마을 연합체가 생기면 좋아요. 연극의 치유의 효과는 프로그램을 이끄는 저나 배우를 경험해본 어머니들 모두 생생하게 느꼈죠. 공연 한번 하고 끝내는 것은 효과가 적어요. 지속적으로 교육 받고, 체험하면서 지속하는 것이 중요해요. 연극은 주강사와 보조강사로 보람할매 극단 운영한 것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이제 가지고 있고 이제 어떻게 어떻게 한다 이제 차시마다 했던 거를 이제 봤기 때문에 이분들은 이제 내년쯤에는 이제 또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이제 저희가 또 새로운 신입사원 모집해서 또 이제 또 역량 강화 우리끼리 해갖고 이제 또 같이 나가서 팀으로 나갔다가 또 어느 정도 이제 소양이 쌓이면 또 각자 이제 마을이 많으니까 저희는 이제 한 마을을 이제 집중적으로 가는 것도 좋지만 이제 사실은 지역에서 이제 예술의 꽃을 여기저기 이렇게 피우고 싶어요. 그러려면 사업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공모사업도 지원하면서 산업도시를 예술로 촉촉한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저와 늘봄 가족들의 바람이지요.”


본업을 하면서 충만할 수 있을까?



연극이든 무엇이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충만해지려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듣고 싶었다.

“저는 함께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연극은 공동 작업이니까 그렇긴 한데 사실은 어른들이 고독사를 막고, 몸이 정말 불편하신 분은 어쩔 수 없지만 움직일 수 있다면 밖으로 나와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다 보면 조금 더 건강해지고 또 사람들이 이해하는 폭도 커지고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공동체에 속해서 같이 하는 활동들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연극이면 더 좋겠어요. 저는 연극밖에 없어요.”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자신의 본업이 자아실현의 필수충분조건을 채운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일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일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보며 문제시삼지 않았다. 나는 워라벨을 중시하는 요즘 분위기에 맞춰서 선생님의 업무가 워라벨이 잘 지켜지는 본업인지를 슬쩍 물어보았지만 선생님은 육아와 가사에서 벗어나 지금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본캐가 하는 일이 우리 시대의 지리멸렬한 생계에 갇혀 살았던 실버세대에게 늦은 시간은 없다고 알려주며 자아를 찾기 위한 개인들을 위해 연극을 지도하고 있다. 특히 인생 후반부라고 스스로 고립되거나 건강 상의 이유로 배제될 수 있는 실버세대의 에너지를 일깨우며 부캐로서 연극배우가 되어 실패할 자유를 주는, 그러나 도전하여 성공의 기쁨을 맛보는 자아를 찾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연극의 특성상 동료배우들과 스탭들과 관객과 만나는 문화의 장으로서 고독하지 않는 공동의 작업을 통해 주체적인 시민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이 본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연극창작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시민 사회를 성숙시켜가는 데 일조하는 충만한 삶을 사는 황 선생님을 어찌 멋있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2024.12월)



<참고문헌>

1. 부캐, 또 다른 나를 찾다, 하재근(2021), <지방재정, 문화트렌드>, p146-151

2. 멀티 페르소나의 사례와 의미-부캐를 중심으로, 강민희, 이승우 (2020), <한국문예창작>제19권 제2호, p123-143

3. 누구를 위한 연극: 동시대 ‘시민’연극의 질문과 연극 예술의 경계, 박상은(2023)한국극예술연구 제75집 p11-45

4. 동시대 시민 참여 연극과 연기의 의미, 김수진(2023), 한국연극학 제83호, p53-79

5. 교육연극의 확장-시민연극(Applied Theatre), 김병주(2012), 교육연극학 제4집,p1-13

6. 초연결시대, 복수 정체성에의 욕망과 문학적 상상력, 홍단비(2021), 인문과학연구,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1, 제69집 pp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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