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이야기,구체적으로!

상담하는 날

by 글담연
추상어가 필요한 순간?


학기말 학생들에 대하여 느끼고 생각한 바를 쓰는 교사의 글인 ’학기말 종합의견’은 추상적인 단어가 필요하다. 신뢰감, 성취감, 온화함, 성실함, 근면함,…

1년 간 지켜본 아이를 몇 문장 안에 들여놓으려면 함축적이고, 상위의 개념인 추상어가 제격이다. 그러다보니 문장력이 대단하지 않는 한 비슷비슷해진다. 이름이 없다면 얘 건가 쟤 건가 싶을 수도 있다. 내가 어린시절 받아온 통지표에 써 있던 말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나와 같은 문장을 받은 사람도 꽤 많을 듯하다. 우리들 거?


“조용하고 책임감이 강함.”

“소극적이고 발표력이 부족함.”


특히나 발표력이 학교생활에서 성취해야할 중요한 발달수행 중에 하나이니 측정되었고, 조용함과 소극적임은 부정적인 취급을 받았다.


연예인들도 학교를 다녔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낸 연예인들이 과거 자신에 대해 써 있는 문장을 우스갯 소리로 보여주거나 들려줄 때가 있다. 특히 박명수 씨의 건은 특이하다.


“형편에 비해 옷을 잘 입음.”


박명수 씨도 이 부분이 나오면 “옷 잘 입은 것이 뭐어때서요,”라고 하는데, 이 앞 부분은 빼야 마땅하다. 어쨌든 이 한마디에서 그려지는 것은 그는 어렸을 때 패셔너블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그것 외에 이 문장 속에서 떠오르는 그의 모습은 없다. 이 문장이 계속 회자되는 것을 보면 이 내용 이건 분명 아니올시다이다. 멋진 교사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일들이 적게 회자 되어서 그렇지. 우리 이제 박명수 씨의 이야기를 보며 웃지는 말자, 대신 반면교사 삼자.


누군가에 대해 말할 때 글의 길이를 말하고 싶은 거다. 한마디 말을 써주는 것이 과거 트렌드였나 보다. 학급당 60~80명 되는 아이들을 일일이 바라보기 어렵고, 한글자씩 눌러쓰는 일의 버거움, 그 아이들을 다 들여다볼 수 없고 대화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그 시절의 흑백사진을 들여다본다. 교사들은 한 문장 속에 그 사람을 담기 위해 더 크나큰 고뇌를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학급당 학생 수가 많기도 해서 선생님들이 위와 같이 몇마디가 포함된 한문장을 써주었다. 그게 트렌드였다. 두 문장은 없었다. 아마 있었을지도 모르나 나는 받아본 적 없다. 한문장 아니 한 단어로도 설명되는 명문도 있었을 것이다. 궁금하다.


최근에는 학급당 학생 수도 줄었고, 교사들이 아이를 종합적으로 보겠다는 의지도 있어 좀더 길게 기록을 적어주고 있다. 물론 추상어도 포함되지만 최근엔 구체적인 행동으로 뒷받침되는 게 추세다. 한 문장보다는 더 길어진 글이지만, 그 안에 아이의 일년 성장을 담으려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글은 남는다. 그래서 글쓰기를 잘해야 한다.


구체어가 필요한 순간


상담할 때 나는 추상적인 말을 별로 꺼내지 않는다. 아이를 관찰한 대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먼저 상담 자료로 아이의 배움공책, 미술작품, 글쓰기 공책을 이용한다. 평소 아이와 대화하거나 따로 상담했던 내용 중에서도 보호자와 상담할 때 자료로 쓰이니 필요하다. 아이가 만든 작업물들은 책상이나 사물함 속에, 또는 내 머릿속에, 학급 일지 속에 들어있다.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단정하고 결을 맺어야 하는 ‘학,종’ 글쓰기는 고뇌의 대상이다. 눈 앞에 그려지는 1년 간의 다큐처럼 아이가 보이지만 글 속에 함축적으로 담아야 하므로 꽤 오래 끙끙 앓는다. 그러나 상담은 보호자와 협의하는 과정이라 아이 모습 중에 몇 가지를 선택하며 하나씩 쌓아간다.


첫 시작은 늘 아이에게 칭찬할 만한 점으로 꺼냈다.

예를 들어 그림을 쉬는 시간마다 열심히 그리는 친구였다. (학생 이름은 가명)


은정이는요, 그림을 참 잘 그려요. 친구들이 그림을 그릴 때 옆에 가 서 있어도 계속 그리느라 모르거든요. 그러다가 누군가 말을 걸면 그제서야 잡았던 펜을 빼고 친구를 쳐다보지요.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얼마나 다정하게요.
-> 그림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남. (학종 문장)


관찰을 토대로 아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며사하다보면 보호자는 아이를 십여 년 간 보아왔기에 그 장면에서 멈춘다. 아이에 대해 들춰보고 싶은 이야기를 꺼낸다.


“은정이가 다른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을 좀 두려워해요. 매년마다 상담을 가면 담임 선생님들로부터 그런 모습을 이야기 들어요. 몇년 전부터 그렇게 그림만 그리는 거 있죠. 저는 그림보다 사람하고 친해졌으면 좋겠네요.”


“저도 보았어요. 아이들과 교류할 때 주저하는 모습을요. 저도 은정이에에 슬쩍 물어보기도 했었죠. 친구들이랑 같이 보드게임 하고 싶지 않냐고. 그런데 조금 귀찮다네요. 그냥 혼자 있어도 된다고요.”


보호자와의 상담은 서로가 발견한 아이의 모습과 성장할 때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대화 속에 쌓아간다. 교사는 보호자가 볼 수 없었던 학교에서의 아이 모습을, 보호자는 아이를 십수년 간을 키우며 바라보았던 역사가 담긴 모습을 꺼낸다. 두 사람이 겪은 한 아이의 이야기를 쌓아가다보면 아이가 성장해온 역사를 그려내고, 조금 더 종합적으로 보는 시간이 된다.


은정이 보호자와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한 것을 바탕으로 나머지 학기 동안 은정이가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도 틈틈이 개입해보지만, 학습에 참여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응원하는 것이 어떤지 협의했다. 상담 이후로 교육적 바탕을 깔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물론 내 뜻대로 강요하고 왜 그럴까 판단하며 재지 않으려고 한다. 다다간다. 아이에게 슬쩍 말을 건넨다.


“그림 그리는 거 친구들과 같이 해보는 게 어때? 우리 반 친구들도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잖아.”


은정이는 말없이 내 눈을 비껴 쳐다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 뒤로도 은정이는 끝까지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지는 않았지만 우리 반 프로젝트 중에 하나였던 연극공연에서 주된 역할을 했다. 연극 무대의 배경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은정이에게 연극 미술팀장을 맡겼다. 은정이는 팀장으로서 어떻게 리드할지 궁금했다. 학급 친구들에게 언어로 소통하기보단 그림으로 교류했다. 밑그림을 그려두면 아이들이 색칠하고, 색칠에 필요한 물감들을 준비물실에서 골라와 파레트에 챙겨놓았다. 아이들은 은정이가 준비해둔 것을 보며 천에 무대 배경을 그렸다.

은정이 보호자와 상담하면서 그런 큰 일도 잘 할 것이라는 것을 협의하며 알게 되었다. 어찌보면 이것이 내게는 큰 성과였다. 아이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는 것, 그로 인해 내가 아이에게 한뼘 더 다가갈 수 있다. 상담할 때 우리 반 아이의 보호자와 나눈 의견은 소중하다.



봄 가을 상담 기간이 돌아왔다.


아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수록 그 구체적인 장면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이 많고 거기에서 가지를 뻗어나간다. 봄, 가을 상담을 하면서 나와 보호자는 아이들의 과거도 보지만, 그 아이가 맞닥뜨릴 더 넓어질 미래도 염두에 둔다. 아이의 도전도 지켜보기로 합의한다.

그렇게 학기말 종합의견에는 두 주체의 뒷바라지가 들어간다. 알게 모르게 포함된다. ‘학,종’에 표현된 그 일년의 성장 기록이 단편적이지 않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이 학교에서 보호자에게 봄, 가을 상담을 적극 권장한다. 바람직하다. 보호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이야기도 쌓아올리면 아이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번에도 6학년 20명 학생 보호자들 대부분이 전화 또는 대면으로 상담 신청하셨다. 나와 보호자들은 아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함께 가을, 겨울 살이를 의논할 시간을 보낼 것이다.


덧붙임. 은정이 무대배경 그림 솔직히 멋졌다. 우리반 학급 문집에서 발견한 구절에는, 함께 칠하면서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은정이는 소감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문집 글을 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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