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입문한 날 (과거 회상기)
대학교에 두번째로 다니면서 교양과목에서 종종 만나던 현정이가 내게 ‘대학생 스키캠프’를 같이 가자고 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 그 전에는 ‘스키’란 돈 많이 드는 귀족 스포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키는 관심도 없었고, 운동을 하는 것이 딱히 흥미도 없었으며, 겨울에는 이불 속에서 뜨뜻하게 웅크리고 있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교를 두번째로 다니면서 나보다 어린 대학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나이는 들어갔어도 마음은 어려지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내 동기인 현정이가 제안하자마자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스키캠프 가격을 듣자마자 솔깃했다. 3박4일에 40여 만원이었다..(10년 전 물가에 40이라니…) 지금도 3박 4일에 40정도 하던데. 아르바이트 한달 열심히 하면 낼 수 있는 돈이어서 신청하였다. 현정이랑 같이 스키캠프를 신청했는데, 우리는 그때 조금 융통성이 없어서 같은 방을 신청하지 못했다. 따로 신청했어도, 우리가 친한 사이니까 전화 한번 넣어서 부탁했으면 좋았을 텐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한 방을 썼다. 현정이도 모르는 사람들과 한 방을 쓰니 불편했는지, 내게 같이 와서 자자고 청했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그 방 사람들의 눈치가 심하게 보여서 내 방으로 내려왔다.
현정이는 상급반이었고, 나는 초급반이었다. 아마도 상급반 사람들과 초급반 사람들이 갈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방에도 상급자, 중급자, 그리고 초급자인 내가 있었으니까. 방 정원이 4명이었다.
용평리조트의 ‘옐로 슬로프’에서 탔던 기억이 있다. 거기에서 우리를 가르쳐준 강사님은 대학 때 스키부를 했던 분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계약을 맺은 대학교 스키부 출신들도 와 있었다.
우리를 가르치는 체육과 교수님은 스키캠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키 타고 밥 먹고, 스키 타고 밥 먹고 3박 4일간 열심히 하면 스키를 처음 타는 여러분들도 스키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헝그리 정신, 아니 밥 먹고 타니까, 헝그리는 아니지, 잘 탑시다.” 라고 말이다. 헝그리 정신,에 모두들 빵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스키 타고, 밥 먹을 시간이 되고, 좀만 쉬면 다시 또 스키 탈 시간이 되고, 하루가 정말 ‘스키 타고 밥 먹고 스키 타고 밥 먹고’였다. 그리고 이내 피곤함이 몰려와 이불을 덮고 누군가 불을 끄자마자 곯아떨어지고 그랬다. 그랬더니 스키를 처음 타는 우리 조 초급반 사람들은 어찌 됐든 스키를 탈 수 있게 되었다.
1월달이었으니까 지금으로 치면 스키 타기 좋은 시절이었다. 나는 여동생의 보드복을 빌려 입고 스키 캠프를 떠났기에 스키보다 바지가 너무 커서 바느질을 하여 안으로 집어넣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탔었다. (신기한 것은 10년이 지난 뒤인 지금도 입기 좋은 보드복이라는 사실이다. 그 때 입었던 상의 자켓은 기능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가루가 되어 공기 중이 아닌 바닥으로, 내 티셔츠 위로 눈처럼 떨어져서 버렸지만, 바지는 아직도 보온이 잘 되는 빵빵함을 유지하고, 천도 굉장히 질이 좋아서 잘 쓰고 있다. 게다가 스키바지보다 주머니가 많아서 뭔가를 넣어둘 때도 유용하다.
맨처음 스키 장비를 받아들고 스키부츠를 신을 때는 발 사이즈를 제대로 말을 안 했던가, 발이 너무 쬐어서 아팠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우리 조 사람들 모두 뒤뚱뒤뚱 걸으면서 무겁고 힘들어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정강이와 발목 복숭아뼈가 무지하게 아팠다. 그래도 발 뒤쪽의 버클 하나만 딱 끼고 타는데 이게 안전한가 걱정도 되고는 했다.
우리 조 스키 강사님은 우리와 인사를 하자마자 우리의 걱정을 안다는 듯, 열 명의 조원들에게 스키를 신는 법을 설명해주었다. 안전하니까 꽉 조여서 타라고. 그 이후 스키 플레이트에 부츠를 끼우는 법, 빼는 법, 그리고 폴 잡는 법을 설명하시고, 옆으로 걷는 법, 넘어지는 법, 일어나는 법을 설명해주셨다. 그 당시 나는 통통하기는 했어도 뚱뚱하지는 않았는데, (사실 체중이 많이 빠진 지금보다는 체중이 덜 나갔음.) 그 기다란 스키 플레이트에 다리가 묶여있는 채로 일어나는 일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아무리 해도 일어나는 일은 고역이어서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넘어졌다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맨처음 스키를 타고 ‘옐로 리프트’를 올라가는 일은 두려움이었다.
‘아니, 겨우 게걸음 배우고, 넘어지는 법, 일어나는 법 배웠을 뿐이데 벌써 리프트라니…!’ 충격이었다. 그러나 남들도 다 올라가는 것 같으니 열심히 따라갔다. 리프트에 앉아서 처음 타고 올라가는데 안전함이 제일 걱정이었다. 손으로 안전바를 꽉 잡았다. 후들거렸다. 리프트에서 내릴 때, 안전요원이 일어나서 폴을 찍지 마라. 11자로 해라, 말을 해주었는데, 우리 조원들 중 상당수는 넘어져서 콰당, 했다. 나는 기억 안 나지만, 콰당은 안 했다. 기억이 안 나니까 안 한 것이 맞을 거다. 안간힘을 써서 조심스럽게 내려왔을 것이다. 초급 반에서 콰당 넘어진 기억이 세 번 있는데, 배운 후에 조금 어설프게 자만하다가 리프트에서 내려오다가 콰당, 메가그린에서 빙판에서 미끄덩하여 두번 연속으로 넘어졌다.
정말 조심해서 탔기에 배울 때는 거의 안 넘어지려고 노력했고, 많이 안 넘어졌다.
A자로 타는 것을 배우고, 자세를 배우고, 열명의 강습생이 하나씩 다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다보니, 한 슬로프 내려오는 것도 오래 걸렸다. 하루에 세 번 강습이 있었기 때문에, 오전, 오후, 저녁, 세 번의 강습을 모두 열 명의 조원들과 배웠다. 나는 수업이 아닌 지율로 왔기 때문에 스키 수업의 실기로 온 아이들은 참석을 열심히 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스키를 선택할걸.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넘어져서 일어나기도 힘들고, 강사님이 오셔서 일으켜줄 때까지 바둥거리는 모습의 내가 어느 순간 넘어져서 벌떡 일어서는 그 느낌을 알았다. 아, 이렇게 일어나는구나! 그 때의 나에게 기분 좋은 칭찬을 스스로 했다. 너 드디어 터득했구나!
A자로 천천히 내려오면서 강사님께서 자세가 좋다고 칭찬하셨을 때, 드디어 내가 자세를 익혀가는 구나 생각하니 너무 뿌듯했다.
그러면서 몇 회의 연습을 하며 조금씩 이 초급 슬로프 경사가 두렵지 않다고 느껴지는 그 때! 안정적으로 A자 턴을 하며 내려올 때 그 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그 뒤에도 시간을 들이고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스노우 플라우 턴을 하며 내려올 때, 뺨에 스치는 찬 바람을 느끼며 기분이 점점 상승되는 걸 느꼈다.
스키 부츠를 신고 엉기적엉기적 걷는 힘듦, 발과 종아리에 너무 딱 맞아서 신기 꺼려지지만 슬로프에 시간 맞춰 나가서 새로운 걸 배운다는 즐거움이 귀차니즘을 극복하게 했다.
3학년 겨울에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해서 가지 못했고, 그 뒤로는 스키를 탈 수 있은 기회가 없었다. 그때의 느낌과 기억들은 가라앉았다가 어느 날 올라왔다.
뭔가가 십년 전 기억을 촉발했는지 탐색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날의 일이 내게 스키 여행을 하고 레벨1을 취득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니까.
2023.3.30
겨울 스포츠가 그리운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