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를 읽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작은 학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반에 학생들은 몇 명 없고, 담임 선생님과 즐겁고 신나게 노는 분위기의 학교. 물론 영화 속에서 얻은 이미지로 생긴 학교이다. 그런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시골살이를 해야 가능했다. 도시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서 통학하는 꿈을 꾸곤 했다. 버드나무가 흔들리는 냇가를 건너고, 울창한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바람길을 따라가는 작은 학교. 작은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로 주변 환경도 있지만, 담임 선생님에게 내가 투명인간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대도시 학교에서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선생님과 가깝게 지내본 경험이 없다. 하지만 미디어나 책에서 본 ‘작은 학교’에 계신 선생님은 달랐다.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어른이자, 참 교육자로 그려졌다.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는 1997년 출간된 도서로, 이 책을 집자마자 ‘오래된 느낌이구나’와 동시에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물론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2000년 초반쯤에 읽었을 것으로 기억되는 이 책은, 내가 교육학을 전공하던 시절에 읽었을까 아니면, 청년기에 농촌활동에 관심을 갖고 농촌 공동체에 머물고 싶다는 시절에 읽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의 과거가 떠오르는 책이지만 어느 시절에 만났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 신선하다고 여겼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큰학교에서 조용히 지냈던 나에겐.
책 목차에 따르면 25년 전 학교교육에 관여했던 지성들은 학교의 문제를 살펴보며 교육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교육해야하는가를 고민하였다.
어떤 목차에서는 작은 학교, 마을 학교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제목이 눈에 띄었고, 현재 발도르프 철학을 기반으로 한 대안교육자 이름도 눈에 띄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는 제목만으로도 어떤 철학이 연주될지 가늠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은 이유는, 25년 전 펼쳤던 그 이야기들이 지금의 시점에서 어떻게 읽힐까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25년이면 한 세대이다.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책의 제목과 일치하는 첫 번째 글, 사티시 쿠마르가 쓴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글은 소박한데, 마음이 울렸다. 마을 전체가 우리의 학교라고 말했다. 쿠마르는 아이들은,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아이로, 아이를 도토리로 보았다. 이 관점은 아이의 잠재력에 의미를 두었다.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쿠마르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마을 전체가 학교라고 했다. 최근 ‘온마을이 아이를 키운다’의 시작이 이러한 관점이었을 것 같다.
쿠마르는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학교를 설립해달라고 국가에 요청할 수는 없지만, 작은 촛불을 켜듯이 아이들을 모아 작은 학교를 짓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마을의 중심이 되는 학교는 그렇게 탄생한다고 했다.
나는 이 생각이 참 멋지고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마을에서 키우는 아이들, 그것이 곧 학교였다. 요새 마을을 중심으로 한 마을결합형 교육과정도 중요시되고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중심에 두는 개념은 이미 있었다.
꾸밈없는 직설적인 문장들에 서걱서걱한 감정이 생겨 내 생각과 닿는 부분이 매끄럽지 않는 글이 있었다. 그러나 내용이 갖고 있는 탄탄한 뼈대가 마음에 들었다. 비노바 바브의 ‘참다운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이다.
이 글에서 “교육은 학생들이 지적으로 자립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했으며, “삶에 필요한 지식은 오직 삶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학교가 할 일은 삶에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학생들에게 일깨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학창시절, 학교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했던 나로서는 삶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지 않아도 별 탈없이 무난하게 생활을 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서 보니,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없었으며, 논쟁을 하거나 사회 변혁에 소극적인 사람으로 살아갔다. 그러한 거창한 부분은 말하지 않더라도, 반찬을 만들거나 밥을 지을 줄 몰라서 대개 부모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고 살았다.
학창시절이 끝나고 들어간 공동체 속에서 조금씩 배워가며 삶에 대한 배움을 스스로 깨쳐나갔던 것 같다. 내가 삶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학창시절이 끝난 다음이었다. 한 마디로 학교에서는 지식을 배우는 데 주력했다.
학교교육의 반성으로 대안을 논하던 분들이, 삶을 위한 학교로서 대안학교를 세웠다. 아름다운 작은 학교들은 학교의 색깔과 철학을 유지하며 교육활동의 본질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에 내가 방문한 곳은 2000년대 초반 설립한 광명의 볍씨학교였다. 광명의 동산 옆에 자리한 이 작은 학교가 아름다웠다. 아침에 도착하자 새소리가 들렸다. 산을 넘어 몇몇 아이들이 등교했다. 처음 보는 내게 아이들은 인사를 건넸다.
나는 오전 수업을 함께 하고, 점심 밥을 함께 먹으면서 교사와 학생들 곁에서 반나절 함께 했다. 1~3학년 10여 명의 학생들이 한 반이었다. 1학년을 입학한 아이가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2~3학년 아이들은 신체로는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간 날은 주변 호수공원에 아침열기를 하러 가는 날이었다. 호수공원에서 10명의 학생들과 담임 선생님은 아침을 열고 신체를 단련하며 놀이를 했다.
먼저 호수 공원 두 바퀴 돌기.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혹은 적당히, 나는 선생님과 아이들을 따라 함께 뛰었다. 나보다 느린 아이들은 없었다.
두 바퀴를 다 돌고 나니, 아이들은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나를 기다렸다가 이 작은 공터에서 무슨 놀이를 할 것인지 정했다. 오늘은 다방구를 해보자고 했다. 술래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도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아웃된 친구들이 있는 기둥 옆에 가서, 술래가 망을 보다가 한눈을 팔 때, ‘다방구’ 하면서 벽을 치면 아웃되어 잡혀있던 친구들을 풀어주었다.
이 잡힐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한 긴장을 즐기면서 술래와 잡고 풀어주는 것을 반복해서 놀았다. 10명이 이 놀이를 하기에 괞찮았다. 모두 함께 놀면서 달리기가 느린 동생을 적당히 봐주기도 하면서 놀이에 최선을 다했다.
끝내고 갈 줄 알았는데, 아직 모자른가보다. 이번에는 달팽이를 했다. 이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놀라운 체력과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아이들마다 가위바위보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무조건 열심히 내고보는 아이, 다른 사람들의 패턴을 분석하면서 우리 편의 전략을 짜는 아이 등. 놀이를 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자신의 색깔을 각양각색으로 펼쳐냈다.
나는 달팽이 놀이를 처음 해보았다. 학교 안뜰에 그려진 것은 보았어도 함께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에게 놀이방법을 배우면서 전략도 슬쩍 귀띔받았다. “가위를 내면 웬만하면 이겨요. 단발머리 친구는 안 통하긴 해요.” 나와 선생님, 아이들이 전력질주하는 소리, 가위바위보 후에 웃음 소리가 호수공원에 퍼지면서 마을을 온전히 이용하는 아이들의 활동에 학교 공간이 확장되어 있음을 보았다.
‘일하기와 교육’에서 이오덕 선생님은 일과 놀이가 갈라진 것에 대해 유감을 표현하였다. 그로 인해 아이들의 삶이 놀이와 일과 학습으로 갈라졌고, 일반 학교에서 이 갈라진 활동 속에서는 인격이 온전하게 성장할 수 없다고 보았다. 최근 아이들에게 놀이시간을 충분히(그래봤자 하루 30분+점심시간 약간)으로 주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어릴 적 방과 후 시간에 내내 놀았지만 저녁밥을 먹으러 들어가며 놀이가 끝나면 아쉬웠던 경험으로 비추어 그리 충분한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일과 놀이가 그대로 공부가 되는 것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교사가 하고 싶어도 교육과정과 학교 교육철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놀기만 한다고 민원을 받을 것이다.
“참된 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식이라고 한다.” 이처럼 부담되고, 책임감있는 말이 어디 있을까. 최근에 생활의 안정을 위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정책적으로 교육을 서비스로 보는 시각이 있다. 성직관으로서의 교사는 이제 구시대적 철학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소명을 떠올리는 순간 헌신과 열정을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의 교사를 소진하도록 쓰는 것이라는 비판이 따라올 수 있으니까.
그러나 위대한 스승들을 보면, 그들은 열정과 헌신으로 뼈를 갈아넣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진정한 배움으로 이끌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제자 한 사람 한사람에게 맞는 방법으로의 비유와 질문으로, 그들을 배움의 길로 이끌었다. 또 삶의 방식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임도 알려주었다.
내가 방문했던 ‘작은 학교’는 볍씨 학교가 유일했다. 이 학교에서 만난 1~3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날마다 마을에서 키우고, 함께 놀이하고, 교실에서 밥짓고, 청소하고, 학습하고, 놀이하고, 텃밭가꾸기를 하면서 서로 부대끼는 과정에서 삶과 삶,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책상에 앉아 글씨를 쓰고, 읽기를 배우고, 수학을 공부하고, 과학 실험을 하고, 미술을 하고, 체육을 하면서는 학습을 한다고 생각했지, 선생님의 삶과 내 삶이 만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니까.
이 역시도 이오덕 선생님은 교육자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아이들과 함께 놀아야 한다고 했다.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어떻게 놀 수 있겠느냐고 했다. 볍씨학교를 방문하기 전, 체육복을 꼭 입고 오라는 당부를 받았다. 당일 오전 활동을 하면서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뛰어놀고, 텃밭에서 자연에서 배웠다.
윤구병 선생님 말씀처럼 ‘먼저 자연이 큰 선생님, 사람이 작은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의 감각이 지닌 모든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는 교육’을 했다.
삶과 앎이 하나되는 교육, 아이들에게서 놀이와 일과 학습이 분리되지 않는 교육. 그것은 작은 학교에서 이루어가고 있었다. 볍씨학교의 반나절을 함께 하면서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를 실천해가는 작은 학교들이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모든 작은 학교를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알 수 있다.
큰 학교에서도 이러한 교육이 가능할까? 수많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큰학교 전체 구성원의 동의가 필요할 것이다. 작은 학교는 학교 철학을 펼쳐나가는데 좀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학교는 많은 구성원, 그 수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교육을 둘러싼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망들을 뒷전으로 하고, 생태중심으로, 삶 중심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학교교육 철학에 동의하도록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내 고민의 시작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