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맹신하거나 불신하거나
내 MBTI는 늘 ENFP이다. 누군가는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 E와 I가 왔다 갔다 한다고 하는데, 내 경우엔 20대 초반에 인터넷으로 처음 접해본 이후에 그 이후로 검사하면 쭉 ENFP였다. 그 이후로도 검사를 하며 “제출하기”버튼을 눌렀을 때 은근히 내 성격이 바뀌길 기대하는 건 있었다. 인간은 변화하는 입체적인 인물이니까. 그런데 변함없이 ENFP 결과로 뜬다. 어? 이상하다, 지금의 나는 어릴 때랑 성격, 기질, 습관은 달라진 것 같은데 말이다.
ENFP에는 재기 발랄, 스파크형, 인싸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 어색하다. 누군가 내게 MBTI 뭐 나오냐고 물어보면, 나는 항상 수식어처럼 서두에 이 말을 먼저 꺼낸다.
아 그게, 나인지는 모르겠지만 ENFP야. 내가 질문에 답할 때 진짜 나를 체크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체크해서 나온 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 ENFP야.
ENFP 설명 앞에 ‘재기발랄한 활동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걸 보고, 내가 규정하는 스스로의 자아상에 걸맞은 이름표가 아닌 것 같아 나도 항상 수식어를 붙인다.
이건 “내가 볼 때 나는 수줍고 낯가림도 있고 인싸 아니고, 더구나 발랄함도 안 보이는데… 그래서 아닌 것 같은데 내가 꽤 그럴듯한 활동가라고 하네 하하하하하.”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한편 내가 나를 어색해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한편에 치우쳐 바라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면 그건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아서 도저히 못 듣겠다고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솔직히 타인의 입장에서 들으면 거의 같다. 공간성이 사라져 평평한 모노로 들리긴 하지만 아주 다르진 않다. 그런데 우리가 녹음해서 들으면 놀라지 않는가! 내 녹음 목소리를 듣고 정말 “얘 누구야?? “ 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나는 내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 그 행동을 하가까징 내면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재기발랄함을 보면, 내가 하는 발랄한 행동은 실은 고민 끝에 하는 것일 수 있다. 내적과정은 나만 아는 것이니까. 남에게 비친 나의 행동만으로는 “쟤 엄청 발랄해” 그렇게 비쳐질 수도 있다.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볼 땐 내적 과정도 고려하여 바라보고, 타인이나를 볼 때 내가 행동한 것에 집중하므로 결국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의 불일치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한 번은 심리학으로 유능하신 선생님께서 나를 상담해 주시다가 물어보셨다.
음… 차이브 씨는 ENFP 죠?
앗, 어떻게 아셨어요?
티 나지. 자유롭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아. 그렇군요. 저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ENFP 맞아요. 적어도 내가 몇 년간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 이후로 나는 남에게 티가 나는 ENFP였구나를 알게 되었다. 내 성격유형을 나 스스로는 왜 아니라고 약간의 의심 내지 부정하고 있었을까?
그런 의문 속에서 성격 유형 관련 글들을 찾아보았다. MBTI의 해석을 알고 싶어서 글을 검색해보면 사람들의 글 속에 신뢰와 불신이 느껴진다. 어떤 이들은 16가지의 유형으로 나뉘는 이 결과에 불신하며 글을 올린다. 사람을 피상적으로 분류한다고. 나 역시 서로가 서로의 결과를 말하면 누군가를 서서히 파악하기도 전에 해석지에서 규정한 어떤 이미지에 국한하여 사람을 바라볼까 염려는 된다.
그래도 나는 내가 ENFP 라고 대문앞에 걸고 글을 쓰기로 했다. ENFP로서 들려주는 내 경험과 생각들을 써보기로 정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ENFP들이 공감을 한다면 MBTI 신뢰도가 올라갈 것이라 생각이 든다.
공감이 안 된다면… 그것 또한 좋지 않은가! 한 가지 성격 유형만 올곧게 나온 내가 내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내 글을 읽는 ENFP들 혹은 다른 유형들의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ENFP들과 비교하며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 그러다보면 같은 성격유형 안에서 보여지는 다채로운 인생 이야기에 “인생은 아름다워! “ 를 외치게 되겠지. 그러면서 삶을 만들어가는 건 성격인지 아닌지, 혹은 사건인지, 혹은 또 다른 무엇인지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성격유형을 전면에 내세워하는 인생 이야기가 오히려 MBTI에 함몰되지 않게 해 주리라 본다. MBTI를 MBTI 답게 그건 그저 타인을 이해하는 작은 수단으로 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
우리가 삶의 주인공으로서 이끌어가는 이 수많은 인생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 건져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속에서 연재를 시작한다. 성격유형을 내세운 인생 이야기라니!
게다가 글은 솔직한 ‘나’이므로, 정말 ENFP 티가 나는지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