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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IBS Apr 05. 2018

건담마커를 샀다

2600원

모름지기 공구란 많을수록 좋다. 처음엔 '조금 하는데 돈 들여서 그것까지 사야 하나' 싶지만, 적절한 공구는 생산성을 빠르게 높이는 좋은 수단이다. 처음에 건프라 만들 때는 문구용 커터칼 하나만 가지고 만들었다. 부품 떼어내고 다듬는다고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손은 또 손대로 아팠다. 작년부터 취미용으로 (비교적) 자주 만들면서 프라모델 전용 니퍼랑 핀셋을 샀었다. 니퍼가 비싼 것도 아니었는데 시간을 엄청나게 아낄 수 있었고, 좀 더 깔끔하게 부품을 다듬을 수 있었다. 씰 작업에도 핀셋 있으니까 편하게 - 스티커 안 망치면서 -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많이 사두고 하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핀셋+니퍼+문구용 칼에 먹선펜과 순간접착제 정도만 구비하고 있었다. 물론 이쑤시개랑 면봉도 중요한 도구이긴 하지만 일회용이니까 제외. 도색이나 마감에는 별 관심이 없고 깔끔하게 조립만 해서 만지고 노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트나이프는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잘못하다가 뼈 보인다... 고 해서 안 샀다.


다 건담마커라고 써 있긴 한데, 파란건 그냥 먹선펜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산 건담마커는 진회색이다. HG는 색분할이 좀 아쉬운데, 내가 가지고 있는 건프라들의 경우 특히 회색이 부족하다. 죄다 하얀색 단일 부품으로 된 경우가 많아서 회색으로 포인트를 주고자 구매했다.

일반적인 먹선펜이랑 비교하면 생긴 것부터 차이가 난다. 펜 촉이 쑥 들어가면 잉크가 흘러나오는 구조다. 약간 수정액 같은 느낌이다. 바닥에 대고 촉을 꾹 누르면 잉크가 흘러나오는데, 이걸 이용해서 잉크를 빼낸 뒤에 세필 붓으로 도색하는 사람도 있다. 붓도 얼마 안 하는데 문구점 가서 사 올 걸 그랬나...


마커까지는 가조립 수준에서 즐기는 사람들도 쓸 수 있는 정도라고 본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환기구, 각종 도료, 도료 통, 에어브러시, 집게, 마스킹 테이프 등등을 요구하는 전문 도색, 조금 더 많은 몰드를 만들어주는 패널라이너 등등 다양한 종류의 도구도 있다. 이 수준으로 넘어가면 돈이나 노력이 좀 많이 들어서 나처럼 일반인 레벨에서 취미로 즐기는 사람이 하긴 부담스럽다. 먹선이나 마커로 하는 포인트 부분도색까진 돈도 얼마 안 들고 어렵지도 않다.

부분도색 전

특히나 이 모델이 색분할이 부족하다. 물론 사진으로 보면 깔끔하고 괜찮은데,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특히 설명서에 붙어있던 사진은 부분부분 도색이 돼 있는데, 직접 만들어 본 건프라를 놓고 비교해보니 내가 만든 건 영 심심한 느낌. 처음에는 먹선펜만 가지고 디테일을 추가해보려고 했었는데, 그걸로 불충분했다.

테두리가 약간 까만 것은 먹선펜 때문
가이드로 쓸 테이프 같은 걸 안 붙이고 그냥 손으로 슥슥 칠해서 반듯하진 않다
도색전후 비교 1
도색전후 비교 2

넓은 면적도 생각보단 나쁘진 않다. 결 유지하면서 칠했다. 클로즈업해서 찍으니까 조금 얼룩덜룩해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그냥저냥 괜찮은 수준. 마커를 칠해두면 금방 마르는데, 마른 후에 면봉이나 이쑤시개 같은 걸 사용해서 삐져나온 부분을 지웠다. 그래서 조금 얼룩덜룩하다. 알코올계라 아세톤으로 지울 수 있다고 하니까 시간 나면 좀 더 꼼꼼하게 지우고 깔끔하게 칠해야겠다.


이렇게 자잘한 디테일 업에 신경 쓰니까 좋은 점이 몇 개 있다. 하나의 킷을 가지고 훨씬 더 오래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가성비의 측면이 1번. 먹선 넣고 부분 도색하는데만 거의 조립에 든 시간만큼 쓴 듯. 2번째는 당연하겠지만 만족도다. 조금 더 맘에 드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좋다. 


사실 이런 디테일업은 내 눈에만 크게 보이는 거고, 별 관심 없는 사람이 보면 큰 차이도 나지 않는다. 쓸데없는 데 시간 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긴 하다. 생각해보면 일이나 다른 결과물도 비슷하다. 별로 눈에 안 들어오는 디테일한 부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시간이나 노력이 꽤 상당한 수준으로 필요하다. 예전에는 '저것'이 '이것'보다 조금 나은 수준인데 결과에서 차이가 컸던 걸 조금 아니꼽게 보기도 했다. 큰 차이도 없는데 차이 이상의 성과를 가져가는 게 부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차이는 이 약간에서 나는구나, 다들 비슷한 와중에 조금 더 나은 부분을 만들어 내면 그게 이기는 거다. 물론 디테일에 신경 쓴답시고 전체적으로 느려지는 건 별개의 문제.


큐리오스 외의 다른 건프라도 건담마커로 부분도색을 했다. 추후에 산다면 아마 흘려넣기용 먹선 도구(잉크, 지우개), 마커 두어 가지 더, 프라모델용 접착제 정도 살 듯. 니퍼 날이 나가면 니퍼도 하나 더 사지 싶다. 게이트를 두부처럼 썰어버린다는 좋은 니퍼도 하나 살까 싶은데 그건 가격이 좀 나가서 일단 보류.


아 진짜 넘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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