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LUCA, 2021)
** 영화 전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바닷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바다 괴물 루카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고기를 기르며 가족과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는 루카. 매끄러운 푸른 피부에 지느러미로 덮인 외형은 육지 인간의 그것과 사뭇 다르지만, 가족과 둘러앉아 밥을 먹고 일을 하면서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외형이 다른 소수자들은 바닷속 깊은 곳에서 숨어 산다. 루카의 엄마는 루카에게 절대 육지로 나가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한다. 인간은 위험하니까. 하지만 애들이 다 그렇듯,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낚싯배 등에서 떨어지는 육지 물건들을 보며 호기심을 키우던 루카는 흔적들을 쫓아가다 육지를 오가며 살고 있는 자칭 '인간 전문가' 알베르토를 만나고 한 섬의 해변에 첫 발을 딛는다.
루카가 만난 육지는 찬란한 공간이다. 따스한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있는 곳, 푸른 잎이 바람에 부서지는 아름다움에 루카는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아름답고 새로운 육지의 것 중에서 루카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가져가 버린 게 있었으니, 바로 스쿠터 '베스파'다.
쓰레기로 가짜 베스파를 만들며 놀던 루카와 알베르토는 진짜 베스파를 구하기 위해 섬을 떠나 인간들이 사는 포르토르소 마을로 향하고, 그곳에서 빨간 머리의 소녀 줄리아를 만난다. 이렇게 만난 아싸들(underdogs) 의 목표는 수영과 파스타 빨리먹기, 자전거 타기가 결합된 포르토르소 마을의 전통 철인 3종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 우승 상금으로 베스파를 사려는 것이다. 영화는 따뜻한 질감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이 과정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우당탕탕하다가 결국 들키고, 경기에선 우승하는 그런 뻔한 흐름이다.
요샌 많은 영화가 그렇지만 디즈니-픽사의 영화들은 꾸준히 다양성을 포용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떼 왔다. 특히나 이번 작품인 루카는 퀴어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밝은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있는 육지를 애써 위험한 곳으로 여기며 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려는 '바다 괴물'들은 소수자를 상징한다. 특히나 옷장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메타포로 보인다. 이들이 육지를 터부시 하는 건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그게 바다 괴물인 '나'를 인간으로부터 더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니까.
그래서 루카가 육지를 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루카를 큰아빠가 살고 있는 더 깊은 바닷속으로 가두려고 한다. 깊은 바닷속에서 사는 큰아빠는 간헐적으로 심장이 멎어 죽곤 하는 심해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심장이 가끔은 멈추는 일인 셈이다.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루카가 자유를 갈망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결국엔 육지라는 사회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바다 괴물은 육지의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바다에 사는 루카의 종족은 육지로 올라오면 인간의 외형을 하게 된다. 겉으로 봐선 전혀 구분할 수 없다. 위기는 있을 수 있지만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 섞여 마치 다르지 않은 것처럼 살아갈 수도 있다. 이들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방법이 '위장'이라는 점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수자성이 퀴어함임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우정이라고만은 보기 어려운 루카와 알베르토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육지에 속한 것들 중에 루카와 알베르토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어버린 베스파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팩이 탄 걸로 유명한 브랜드다. 영화 때문에 로맨틱한 분위기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영화 속에선 자유를 상징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루카와 알베르토가 함께 베스파를 타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거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알베르토가 느끼는 질투의 표정을 담아내기도 한다. 극 중에서 알베르토는 루카와 줄리아가 친해지는 과정을 보며 질투한다. 질투는 갈등을 가져오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 하는 루카를 붙잡기 위해 알베르토는 줄리아에게 자기들이 바다 괴물이라는 걸 보여줘버리는 파국을 부른다. 관계를 파괴하면서까지도 루카에 집착하는 거다. 갈등을 맞는 루카의 대응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줄리아 옆에서 알베르토라는 바다 괴물을 혐오하고 부정해 버린다. 꿈꾸게 된 육지에서의 보편적인 생활을 지키려는 태도다. 여기에 상처 받은 알베르토는 다시 자기가 있었던 외딴섬으로 돌아가버린다.
공존은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인데 바다 괴물과 인간은 함께 살 수 있는 걸까? 영화 종반부에 픽사가 준비한 답이 있다.
마지막 포르토르소 3종 경기에서 비가 내리며 루카와 알베르토의 정체가 마을 사람들에게 공개되어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바다 괴물을 향해 작살을 드는 데 이들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있다. 빨간 머리의 소녀 줄리아와 한쪽 팔이 없는 장애를 갖고 있는 줄리아의 아버지다. 결국 서로 다르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하는 건 연대와 사랑으로 곁에서 손 잡아주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뻔한 얘기지만 이 영화가 세계에서 가장 큰 제작사의 대중 애니메이션임을 고려한다면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디즈니-픽사의 작품 답게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루카는 성장한다. 성장은 아이의 운명이다. 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게 물고기인 줄로만 알았던 루카는, 그게 광활한 우주라는 것에서 불타고 있는 별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제 포르토르소라는 작은 마을에서 떠나 더 넓은 도시로 갈 때가 온 거다.
알베르토는 루카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섬에서 혼자 지내던 알베르토에게 루카는 세상의 전부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한 때는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려는 루카를 막아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베르토도 안다. 루카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야만 한다는 걸. 그래서 알베르토는 루카와 함께 꿨던 꿈 그 자체인 베스파를 팔아 루카를 제노바로 보낼 기차 티켓을 산다. "너는 나를 섬에서 나오게 해 줬으니까" 알베르토가 루카에게 티켓을 건네며 하는 이 말엔 여러 감정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그렇게 알베르토는 자신을 외딴 섬에서 세상으로 꺼내 준 루카를 기꺼이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준다.
아마도 아이들의 앞에서 기다리는 세상이 포르토르소처럼 마냥 따뜻하진 않을 거다. 상처도 받을 거다. 그때마다 손 붙잡아주는 연대와 사랑이 이들을 지탱해준다면 좋겠다. Santa mozzar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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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묘하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분위기가 난다. 그 뜨거운 여름의 느낌도 그렇고, 루카와 알베르토의 관계 맺음도 엘리오와 올리버를 떠오르게 한다. 묘하게 루카의 외양이 티모시 샬라메를 닮아 있기도 하다. 참고로 <뉴욕타임스>에 실린 루카 리뷰의 부제는 '칼라마리 바이 유어 네임(Calamari by Your Nam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