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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IBS Mar 03. 2017

노트북 이야기

두번째 노트북

대학교 1학년 때는 노트북을 안 샀다. 1학년만 끝내고 군대를 다녀올 생각이었고, 1년 쓰자고 사는 건 아깝다고 생각했다. 다녀와서 필요하면 사려고 했다. 정말 그 1년간 노트북이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정치학입문 과목에서 무려 8장짜리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노트북이 없다 보니까 당시 거주하던 학사 1층 쌀쌀하던 컴퓨터실에서 덜덜 떨며 숙제를 했다. 싸이월드나 네이트온을 편하게 할 수 없었던 것도 불편했다. 그때(=2009년)만 해도 아직 스마트폰이 없을 때였다. 볼만한 콘텐츠는 PC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저녁시간이 대체로 무료했다.

교지 편집실에서 찍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2013년 하반기인듯.

하여간 전역 즈음에 동생을 시켜 중고로 넷북을 하나 샀다. 그때쯤 대학을 들어가게 된 둘째도 넷북을 하나 중고로 샀는데, 동생 걸 보니 생각보다 빠릿빠릿하고 괜찮았다. 맘에 들어서 내 것도 하나 사놓으라고 말해뒀다. 인터넷도 생각보다 빠르고, 조금 느리지만 던전 앤 파이터라는 게임도 돌아갔다. 가장 중요한 가격도 좋았다. 27만 원을 줬다. 전역 전까지 모은 쥐꼬리만 한 군인 월급을 모아 사려고 했고 실제로도 모았지만, 실제 결제 과정을 거치고 나니 그냥 엄마가 사준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 됐다.

당연히 키보드 백라이트는 없었다

남은 대학생활을 이 넷북과 함께 했다. 삼성제품이라는 것만 알지, 모델명도 잘 모른다. NT 어쩌고였던 것 같은데... 스펙도 잘 몰랐다. 아마 아톰에 램 2GB, 하드디스크 300GB 남짓? 넷북다운 최저 사양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생긴 첫 개인 노트북이어서 그런지 각별하다. 처음 물건을 봤을 때부터 무척 기분이 좋았다. 중학생 시절 첫 아이리버 MP3를 만났을 때랑 비슷했다. 배경화면을 어떻게 예쁜 걸로 넣어둘까 고민을 많이 했다. 사진도 저장하고, 일기도 썼고, 각종 콘텐츠도 이걸로 봤다. 내가 당시에 썼던 수많은 글도 이 넷북으로 작성했다. 잠깐 배운 코딩도 요걸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저 작은 걸로 어떻게 글을 썼나 싶다. 2년 4개월가량 쓰다 보니 고장 난 곳도 많다. 색도 변했고, 외형적으로도 낡았다. 베젤과 힌지도 금이갔고, 키보드도 한쪽이 덜렁거린다. 배터리도 거의 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돌아간다. 가끔 켜서 툭툭 자판을 쳐 본다.

이거 들고 정동진에도 갔다

노트북을 바꿔야 했다. 다나와에서 열심히 찾아봤다. 노트북 구매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이때 비짝 익혔다. 예산을 3~50만 원 정도로 잡았다. 거의 한 달을 고민한 끝에 비즈니스 라인업인 HP 프로북 430 셀러론 모델을 사려다 '스플릿' 리퍼비쉬 모델로 선회했다. 무개만 빼고는 모든 점에서 괜찮았다. IPS 패널 / 4세대 i3 / ssd 128gb / ram 4gb / 본체와 키보드 독이 떨어지는 투인원 형식. 작정하고 원효상가까지 갔는데 재고가 똑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어 용산을 돌다가 중고나라에 올라온 HP 파빌리온 x2 노트북을 사러 아이파크로 갔다. "그거는 다 나갔고 이거 어떠세요"라는, 사실 용산에서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듣고 구매한 게 hp pavilion 13 b122tu 모델이다. 전시됐었던 제품이다. 한 달을 고민했는데 본 지 삼십 분도 안 된 걸 샀다.

노트북 교체중

4세대 i3, SSD 128GB, 램 4GB, 13인치에 무게는 1.5kg. 플라스틱이지만 견고했다. 문서작성이 주가 될 나에게 무던한 용도로 쓰기에는 거의 완벽한 사양이었다. 실물을 보니 혹했다. 전시제품은 쉽게 사는 거 아니라지만, 나쁘지 않아 보였다. 현금가 49만 원에 샀다. 새제품 시세보다 15만원 정도를 아꼈다. 사기 전엔 다른 제품이 눈에 들어왔었지만, 사고나니 그렇게 예쁠수가 없었다. 화면이 커져서 시원시원했고, 타이핑도 한결 편해졌다. 노트북 스티커에도 맛들려서 붙였다 뗐다를 반복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지금은 다 뗐다

이 노트북도 거의 2년을 써 간다. 회사 노트북을 쓸 수도 있었는데, 그냥 내것이 좋아 내 노트북으로 일했다. 거의 하루종일 2년을 쓰다보니 조금씩 문제가 있는 곳들이 생긴다. 군데군데 삐걱거리는 곳이 조금 있다. USB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든지, 사운드에 문제가 있다든지, 터치패드에 오류가 생긴다든지 하는 등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튼튼하다. 새 노트북을 사면서 이 노트북을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격이라 쟁여두려고 했는데, 역시 누군가 계속 쓰는게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제 이 노트북은 고향집에 내려가 엄마의 컴퓨터 학습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일할 때 찍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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