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유기 보다가 항공권을 끊었다
점심을 집에서 먹게 되면 항상 곁들여 볼 영상을 하나 찾는다. 티빙앱이 이럴 때 편리하다. 실시간으로 재생되는 영상 중 하나를 골라서 보면 된다. 무한도전이 재미 없어진 수년 전부터 심심하면 나영석 예능을 챙겨봤다. 연예인들이 좋은 곳에서 즐겁게 놀고 맛있는 음식 먹는 걸 보면 심신이 편안하다. 정수기가 있는 2층에 내려가 컵라면에 물 받아오고, 신서유기 스트리밍 하나 재생한 뒤, 스마트폰을 모니터에 연결했다. 똑같은 화면 두 개를 보면 시선이 쪼개진다. 스마트폰은 소리만 나게 엎어둔다. 예능 하나 보면서 나무젓가락을 쪼개 휘적거리다 장면 하나를 반찬삼아 한 젓가락 집어 먹는다. 음식물 쓰레기는 만들어지면 귀찮으니까 국물까지 비운다. 예능은 한참 남았고, 사서 쟁여둔 과자나 아이스크림이 눈에 들어온다. 우물거리며 마저 본다. 쉬는 동안 이렇게 살이 찌고 있다.
이수근이 던지는 말장난에 숨이 넘어갈 듯 웃고, 송민호의 청정함에 피식거리며 본다. 중국을 다녀온 신서유기 시즌 3부터 이어보다 보니 베트남에서 촬영된 시즌 4로 넘어간다. 밥 먹으면서 잠깐 본다는 생각은 구석지에 치워진 컵라면 안쪽 국물 자국처럼 말라간다. 한참 재미있게 보다 보니, 모니터 속 음식에 눈이 들어온다.
포베이를 종종 가다가, 조금 더 본토의 맛이 나는 베트남 음식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프랜차이즈는 믿고 가는데, 에머이는 별로더라. 하필이면 불과 일주일 전에 홍대 몬비엣이라는 음식점에서 분짜와 반미 솟방(=소고기 스튜와 바게트를 함께 먹는 음식)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영상에서 쏟아지는 베트남 음식을 한참 지켜봤다. 에피소드 4-5쯤을 보고 있었을 때, 홀린 듯이 네이버에서 항공권 검색하고 50만 원에 왕복 항공권, 9만 원에 3박의 숙소를 예약했다.
인천공항에 가기 전까지 식당 위주로 검색했다. 영상에 나온 오바마 분짜 세트를 파는 분짜 흥리엔, 생전 처음 본 음식이었지만 너무 맛있게 생겼던 ‘반쎄오’라는 음식을 파는 꽌안응온을 먼저 넣어뒀다. 출장 가서 미팅 잡힌 업체들 위치를 구글 지도에 찍어본 적은 있어도, 식당이랑 숙소, 명소만 채워 본 건 처음이다. 기타 어차피 안 갈 것 같은 명소 몇 곳을 참고로 넣어뒀다. 너무 급하게 정해서 항공권을 비싸게 사긴 했지만, 대체 이때가 아니면 언제 갈 수 있을까 싶다. 부족한 시간 탓에 여행 전 설렘을 충분히 즐기지도 못한 채, 5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뻐근함을 등에 한껏 얹어 베트남-하노이에 도착했다. 하노이는 한국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봄과 가을의 온도로 맞았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면 베트남어로 '안녕하세요'가 뭔지 열심히 검색했다. ‘신 짜오’를 입으로 웅얼거렸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 입국심사대에 앉아 있으니 괜히 긴장됐다. 결국 ‘하이’를 입 밖으로 꺼내며 들어갔는데,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질문 하나 없이 도장을 각 잡고 쾅 찍더니 끝났다.
나보다 먼저 들어간 주제에 한참 늦게 나온 캐리어를 끌고 A2 출구로 나갔다. 호텔에서 픽업을 오겠다며 알려준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시간에 차이가 한 시간 넘게 생겨서 그런가 보다. 누가 봐도 관광객이다 보니 택시 기사들이 접근한다. ‘아엠 우버 드라이버’라며 핸드폰을 내보내는 사람들이 다수다. 우버가 신뢰의 증표라도 되는 걸까. 가이드북에서 읽었을 때 잘 모르고 택시 타면 바가지 쓴다고 해서 말만 걸면 다 쳐냈다. 믿을 만한 택시는 두 종류뿐이라는 글을 읽고 겁먹은 상태다. 나는 아직 ‘0 하나 떼고 나누기 2’ 해야 한다는 한국과 베트남의 환율 차이도 익지 않아서 바가지 쓰기 딱 좋다. 예약한 게 있다며 거절했다. 두어 번 더 들이대긴 했지만, 쳐내기 어렵지 않았다.
겨우 호텔에서 보낸 운전기사분을 만났다. 숙소 이름과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그 기사분이 너무 반가웠다. 문을 열고 노이바이 공항을 나서니 한국과 한참 다른 온도의 공기, 시끄러운 클랙션 소리, 수많은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 차를 기다리는 관광객과 관광객을 낚아보려는 택시기사들이 내는 소리로 혼잡한 장소를 마주했다. 이내 기사분이 차를 가지고 왔다. 픽업 차량을 타고 숙소를 향해 한참을 갔다. 오토바이가 자주 보이는 게 신기했다. 오토바이가 많더더니 진짜 많긴 많구나, 이 생각은 하노이 시내에 진입하자마자 박살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