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어때요?
얼마 전 가까운 분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는 일을 겪었다
40대 후반에 접어들지만, 장례식장 가본 적은 손에 꼽히고,
더구나 가까운 분을 보내드리는 건 13년 전쯤 아이 백일 무렵 시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게 처음이었다
많이 슬펐지만, 슬퍼할 겨를 없이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온전히 슬픔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장례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더더군다나 신경을 쓸 수도 없었다
남편과 아주버님과 집안의 어른들도 계셨기에, 나는 그저 아이를 보는 일에 집중하면 됐었다
우리 식구는 고모들과 친하다
특히 인천고모와 수원짝고모 (막내고모를 우리는 짝고모라고 부른다)
어릴 때 우리 세 자매는 방학 때만 되면 인천고모네 가서 한 일주일 정도 있다 왔다
고모는 요리를 잘하지는 않지만, 인천에 가면 먹을 수 있는 카레향이 너무 좋았다
(우리 엄마는 요리왕인데, 카레는 본인이 싫어해서 안 해준다)
사촌동생이랑 노는 것도 너무 재밌고, 근처 쇼핑센터 같은 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가정적이고, 자상하고, 재미있는 고모부는 퇴근 때마다 간식을 사 오셨다
나는 뭘 사 오셨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큰언니는 누런 종이봉투에 구리볼을 사 오셨는데 처음 먹어본 빵이 그렇게 맛있었다며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구리볼?
구리볼이 뭐야?
검색해 봤더니, 상투과자의 다른 말이었다
예전에 양과자라고 불렸던 종류의 빵이다 (양과자라니 도대체 나이가 몇이세요?)
암튼 구리볼을 포함해 여러 가지 간식을 사 오셨을 거다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따뜻했던 추억은 잊히지 않는다
아!
바둑을 좋아하시는 고모부랑 오목을 두는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열판 중 한판만 이기면 원하는 거 다 해주신다는 말씀에 기를 쓰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요리조리 흰돌을 놓아봤지만, 보나 마나 백전백패!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할 건 오목을 두는 게 아니라 바둑을 배웠어야 했다
나보다 7살 위인 큰언니는 나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다며 말했다
중학교 시절 경양식 레스토랑을 처음 데려간 것도, 돈가스를 먹고 커피숖을 데려간 것도,
커피숖에서 요구르트를 커피받침에 올려 대접받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 것도,
얼마 전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나온 일회용 나무젓가락 포장지로 수저받침 만드는 걸 알려준 것도 고모부라고 했다
좋은 식당에 갈 일도 많겠지만, 허름한 식당이 맛집인 경우도 많으니 거기서 이렇게 쓰라고 하며 말씀해 주셨다고...
뭐가 그리 행복한 추억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슬프고도 슬프다고 했다
우리가 성인이 돼서는 1년에 한두 번 엄마랑 같이 김치며 만두 녹두빈대떡 같은 걸 해서 고모네 놀러 가곤 했다
유난히 엄마 요리를 좋아하시는 고모부는 우리만 왔다 가면 먹을 게 많아서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 3개월 전 고모부의 폐암소식을 전해 들었다
특별히 증상도 없었고, 흡연도 안 하셨는데, 건강검진 후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해 보라는 소견을 듣고 대학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진 후 받은 진단이었다
방사선 치료받으시고, 좀 괜찮아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들은 또 인천으로 향했다
살은 많이 빠지셨지만, 식사도 잘하셔서 괜찮아지실 줄 알았다
다녀오고 한 달쯤 후 거동도 불편하시고, 많이 안 좋아지셔서 요양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또 들었다
"언니, 아빠 병원에 버리고 온 같아."라고 말하는 사촌동생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고 그 주말 우리는 또 인천 요양병원으로 갔다
병상에 누워계신 고모부를 보니 눈물이 너무 났다
손 잡아 드리고, 발 주물러 드리고, 기운 내셔서 꼭 회복하시라고 말씀드리고 나오는데 너무 속상하고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이 온몸을 감쌌다
그러고 5일 후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다음날 짐을 챙겨 올라갔다
정신없을 장례절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짝고모와 우리는 이틀을 같이했다
조 문 오 시는 분들 모두 고모부의 친절과 따뜻함이 기억난다고 했다
40년 전의 인연들도 친구분들도 지금 일하시는 곳의 분들까지 한결같은 말씀들이었다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생각하니, 슬프다는 말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는데 표현력의 한계가 아쉬울 뿐이다
13년 전 그때와 다르게 나는 오롯이 고모부를 잘 떠나보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 보며 좋았던 기억 하고, 슬프면 울고, 감정을 숨기고 감출 필요도 없었다
내가 아는 분들 중 가장 따뜻하고 친절하고 재미있고 유쾌하셨던 멋진 어른 우리 고모부
나는 종교는 없지만, 고모부는 천국으로 가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고모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곳에서 다 내려다보고 계실 것 같네요
잘 지내시죠?
우리 모두 너무 슬퍼하지 않고 잘 지낼게요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죽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죽음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 우주에는 '죽음'이 더 자연스러워요
오히려 산다는 것, 생명이 우주적 관점에서는 더 이상하죠
주변을 보세요
돌, 땅, 바닷물, 자동차 등등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죽어 있습니다
즉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고, 죽음이 오히려 가장 자연스럽죠
죽음 앞에서 그 무엇도 위로가 될 순 없지만 원자는 영원불멸해요
죽으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서 나무가 되거나 별의 일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내가 살아있다는 이 찰나의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돼요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 또한 이런 말을 남겼다
양배추를 심고 있을 때 죽음이 나를 찾아와도 아무렇지 않고,
그 일을 미처 끝맺지 못한 것에도 더욱더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께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후회나 미련 없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죽음을 염려하느라 현재의 삶을 힘들게 한다
마지막 15분의 고통을 위해 특별한 교훈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인생 별거 없다
지금 현재를 재미있게 살아라
뭐가 중요한 건 지 정말 알 것 같다
그리고
장례식 내내 생각났던, 큰 위로가 되었던 그 노래
[장례희망] - 이찬혁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한 공간에 다 있는게 신기해
모르는 사람이 계속 우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나 미안해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땅 위에 단어들로는 표현 못 해
사진을 못 보내는 게 아쉽네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나와 그닥 뭐가 없던 여자의
슬픔이 좀 과하게 보이길래
놀랐네 돌이켜보니 그러게
우리도 미묘한 신호가 있긴 했네
머리를 쾅 한 대 맞은 듯하네
이제 머리는 없지만 알기쉽게
모든 걸 알지 못했기 때문에
뭣 같고 즐거웠어 삶이란 게
한쪽엔 내가 생전 좋아했던
음식들이 놓였네 마치 뷔페
꾸준히 당부해 두길 자했네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길 바라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그리고 한 가지 더!
나의 장례식에는 내가 좋아하는 곡이 잔잔히 울려 퍼지면 좋을 것 같다
크러쉬와 자이언티 그리고 토이의 목소리로 그 곳을 채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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