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한다.
문장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피가 물보다 더 끈적끈적하니 진한 것은 맞다.
그런데 아들은 '물은 피보다 강하다'라고 말한다.
그냥 막연히, 아무런 이유 없이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름의 근거와 소신,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며칠 전, 일이다.
계절이 바뀌니 여지없이 공기가 팍팍해진다. 그 팍팍함은 아이의 연약한 혈관에 직격탄이다.
(어쩌면 요즘 부쩍 키가 크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단순히 코 안에 코딱지를 꺼내다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정신이 번쩍 드는 소리!)
아빠, 코피 나.
녀석의 오른쪽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흐른다.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도 피가 흐르고 있다.
어른이 코피가 나도 당황스러운데 아이가 코피가 나니 안쓰러움까지 더해진다.
일단 서둘러 지혈을 하고, 녀석의 손과 얼굴과 옷에 묻은 피를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간다.
다행히 피가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았다.
녀석은 세면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러다 얼굴에 묻은 피가 물에 조금씩 씻겨 나가는 것을 보더니 "아빠, 물이 피보다 힘이 훨씬 세다. 피가 다 없어졌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피는 진한데, 물은 강하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따금 '어라?' 싶은 것도, '글쎄' 싶은 것도, '그래!' 싶은 것도 있다.
마흔 해를 넘게 살아 뻔하다 싶은 매일매일이 아이와 함께하면 이따금 새롭고, 신선하다.
인생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