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20.5.26.(화), 기고문
도서관법에 따르면 도서관은 `자료를 수집·정리·분석·보존하여 공중에게 제공함으로써 정보 이용·조사·연구·학습·교양·평생교육 등에 이바지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정의에 충실히 부합하는 도서관을 충분히 가져본 적이 있을까.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열람실은 시험 공부만을, 자료실은 책의 대출과 반납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도서관을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동네 도서관을 방문했다. 코로나19의 지역 내 감염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장기간 휴관 중이었기에 더없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입구에서 체온을 확인하고, 손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방명록에는 이름과 주소까지 기재했다.
조금 불편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조치였다. 그렇게 다시 찾은 도서관은 조용했지만, 여유로웠다. 층을 달리하는 열람실과 자료실 한편의 열람실은 여전히 폐쇄됐고 오직 자료실 일부만 부분 개관했기에 책의 반납과 대출에 한정했고 그것에 충실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을 찾으려고 서가를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책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평소라면 독서실 같은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말을 건네지 못했을 사서 선생님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찾으려는 책은 어디 있는지, 왜 그렇게 분류되는지, 비슷한 책들은 어디 있는지, 아이 또래의 친구들은 어떤 책을 많이 보는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는지 등의 다양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도서관이 좋은 도서관이 아닐까. 외관을 아름답게 건설하는 것도, 최신식 장비를 구비하는 것도, 방대한 분량의 장서를 소장하는 것도 모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정의에 충실하려면 이용객들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한 양질의 정보 제공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도서관에 왜 가?"라고 물으면 "도서관은 궁금한 것을 자유롭게 읽거나, 편안하게 듣거나, 부담 없이 물어서 그 답을 찾거나 고민해 볼 수 있는 곳이니까"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도서관이 많아져야 개인의 힘도, 집단의 힘도, 국가의 힘도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