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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리피자 Oct 02. 2024

퇴사 4년 6개월이 흘렀다

자연섭리처럼 내 인생을 보이지 않는 흐름에 맡긴다.

20년 3월에 퇴사했다. 코로나가 터졌고 마땅히 갈곳이 없어 동네 스터디 까페를 끊었다.


자격증 공부를 6개월 했다. 결과는 낙방했다. 


퇴사하고 감정상태를 보니 우울하고 불안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쌓이고 억눌렸던 여러 기분나쁜 감정이 나를 지배했다.


괜한 열패감에 억울한 마음이 가득했고, 누군가가 미웠다. 그리고 자책했다.


이런 낮은 감정 주파수 상태에서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안부를 묻는 지인 전화를 피했다. 코로나 핑계로 내 시간을 갖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스크 쓰느라 답답했다. 퇴사하면 근사하게 여행이나 떠나고 싶었지만 모든 낭만은 올스톱 됐다.


마음도 답답했고 막막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코로나 때 그나마 많이 걸었다. 비용 안 들고 기분 낼 수 있는 유일한 여가였다.


여기저기 걷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2년차에 아주 우연히 도전할 분야를 발견했다. 먼저 그 분야에 대해 공부를 했다.


과연 이게 될까? 늘 의심과 불안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모르겠다 일단 해보자.


관련 분야 책을 읽었다. 필요한 부분은 노트에 정리했다.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떠도는 유튜브 영상을 들었다. 돈을 지불하고 강의도 듣곤했다.


그렇게 또 1년이 흘렀다. 물론 중간에 실전으로 일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부족했다.


그래도 몰입할 수 있는 내 분야가 생겨서 좋았다. 


과연 이게 될까? 늘 나를 불안하게 했지만 까지것 일단 해보고 나중에 안되면말지였다.


지인들은 내가 뭐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밟히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내 갈길도 바쁜데, 전화로 이런저런 해명과 설명을 늘어 놓기 싫었다.


심지어 회사 다니면서 별로 달갑지 않은 관계인 직장 동료 전화는 그냥 껐다.


같은 부서에서 잠깐 일할 때 참 이기적인 동료였다. 그저 여기저기 동향 파악하고 본인에게 유리한 것만 취하는 그런 부류였다. 


딱히 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퇴사하고 1년이 지나서야 전화가 왔다. 내 동향이 궁금했나보다.


나는 조금씩 과거와 결별을 했다고 느꼈다.


그런데 문득 뉴스를 보니 전직장이 언급되곤 했다.


그러면 괜히 핏대 세워 이렇고 저렇고 평가를 했다.


그리고 2022년에 들어서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내 일에 몰입하고 실전경험을 쌓았다.


그냥 22년 23년 두 해에 걸쳐 시행착오만 겪었다.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사람들 연락도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시절인연관계가 정리 되었다.


처음에 사회생활을 안 한다는 그 고립 된 생활이 두려웠다. 더이상 새로 만날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과거 사람과 교류도 없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은둔형 외톨이일까?


절대 아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새로운 일에 몰입했다. 돌이켜보니 그냥 매일 뭔가를 배우고 했다.


그리고 22년 말에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다. 


퇴사 후 불안한 생활과 마음에 오히려 평화와 사랑, 안정감을 주었다.


감사한 아기였다.


지금도 곁에서 육아를 하면서 아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23년 한 해는 그저 육아월드에 푹 빠져 있었다. 


부부가 힘을 합쳐 요령 껏 아기를 잘 케어했다. 


그렇게 육아와 내 일에 조금씩 스며 들었다.


내 감정 상태는 과거 기억과 멀어질수록 좋아졌다.


돌아보니 퇴사 후 밀려 왔던 여러 부정적인 감정에 내가 지나치게 몰입했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려 노력했다. 내 기분 상태를 좋게 해주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 주목했다.


눈 뜨면 이부자리를 정리했고, 일기도 쓰고 산책도 꾸준히 하고 운동도 했다.


직장이라는 어쩌면 나에게 부정적이였던 환경에서 벗어나니 자연스럽게 내 컨디션이 좋아졌다.


몸도 마음도 꾸준히 좋아졌다.


자연스레 감정상태가 좋아지니 세상이 감사로 가득찼다.


귀엽고 깜찍한 아기를 주신 신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맑은 하늘에 고마움을 느꼈고, 산책하는 길에 우연히 마주한 울창한 나무에 감사함을 느꼈다.


퇴사하자마자 내 인생 흔적을 남기려 일기를 썼는데 내 마음상태를 잘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 내가 무얼 했는지 기록을 남겨두니 안심이 됐다.


그렇게 나는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30대 중후반에 퇴사를 선택한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였다.


내 자신을 구했고,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우물한 개구리에서 벗어났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권하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저마다 그릇이 다르고 성향과 상황이 다르다.


사회생활 하며 나도 모르게 물들었던 나쁜 습관과 정신상태를 해체하고 원상태로 복구하는데 3년은 걸렸다.


그렇게 마음 상태를 어느정도 정돈하니 일도 잘 되기 시작했다.


극적인 성공 드라마를 쓸 생각은 없다. 그냥 즐겁게 과정을 밟아가는 데 집중할 뿐이다.


물론 회사 월급 꼬박 받을 때에 비하면 조금 더 허리 띠를 졸라야 했다. 그런데 다 적응 하더라.


오히려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해먹다보니 내 요리 실력이 좋아졌고 만족했다.


내 의지로 내 일을 하니 오롯이 내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든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


결과는 좋든 나쁘든 신경 안 쓴다.


그저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모든게 해결 된다.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것들은 일과 휴식의 경계를 허물어 준다.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더 잘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회사 다닐 때 답도 없는 일을 억지 텐션을 끌어 모아 이렇게 저렇게 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요즘은 더욱더 자연스러운 나에 집중한다.


일도 육아도 내 즐거움을 최우선에 두고 그저 하루를 경계없이 물흐르듯 보낸다.


어느덧 25년이 온다.


새로운 다이어리를 마련했다.


어떤 일로 가득할지 벌써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공들여 노력한 내 일의 결과가 궁금해진다.


내일이 기대가 되고, 내년이 기대가 되는 그런 인생을 산다.


그래서 그저 감사하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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