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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디 Oct 19. 2020

행복의 기원

"The rest are the details."


-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가령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아빠라는 사실. 또 하나는 목적론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저명한 물리학자 캐롤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물리학적 법칙과 화학 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인간은 수천 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시계보다 복잡한 존재지만, 이 복잡성 자체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 사람이라는 동물은 극도로 사회적이며 이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갖게 됐다.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돼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회적 경험이 행복에 중요한 것은 물론, 한 발 더 나아가 행복감은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었다고까지 생각한다. 


-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게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혁명적이다. 


- '음식과 맛'이라는 제목으로 위장한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초콜릿을 먹도록 했다. 진짜 관심사는 대학생들이 얼마나 초콜릿을 음미하며 먹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초콜릿을 먹기 전 설문을 했는데, 선명한 돈 사진 조건에서 초콜릿을 먹은 학생들은 돈을 보지 않은 동료보다 초콜릿을 덜 음미하며 먹었다.


돈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 준다. 그래서 초콜릿 같은 시시한 것에 마음 두지 않게 하고, 이런 자극을 음미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핮만 초콜릿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될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자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들이다. 


- 이런 절차를 통해 나뉜 외모 상위권과 하위권 사람들의 행복값을 비교하면, 외모와 행복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도 아픔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적응이란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시간이 갈수록 즐어드는 현상이다. 행복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보면 야속한 일이다. 하지만 정서의 본질적 관심사는 행복이 아닌 생존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원을 계속해서 더 많이 비축하고 확장하는 것이 유리하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느 생물학적 이유다. 


- 행복한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보다 사회적 시간이 약 2배 많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2배 이상 많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선천적으로 내향적인 사람도 타인과 함께할 때 더 행복할까. 내향적인 사람들도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 그들이 외향적인 사람들만큼 타인과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싫어서가 아닌, 불편해서다. 사람이라는 자극은 양날의 검과 같다. 사람은 즐거움의 원친이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내향성 사람들은 사회적 스트레스를 더 예민하게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경험한다. 하지만 그건 사람이 싫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외향적 사람이든 내향적 사람이든 오르고 싶은 산은 같다.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있는 정상. 이 둘의 차이는 얼마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오르느냐다. 외향적 사람의 짐은 가볍지만, 내향적 사람의 가방은 어색함, 스트레스, 두려움 등으로 무겁다. 


- 우리 사회의 결핍이 나타나는 부분은 더 이상 경제적인 부 측면이 아니다. 행복과 직결된 사회적인 부다. 양적으로는 인간관계가 과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 저녁마다 각종 모임, 회의, 약속이 있지만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만남이 아니라 대부분 어떤 필요나 목적 때문에 만나는 자리다. 에너지를 얻기보다 빼앗기고 돌아오는 만남들이다. 


하버드 대학의 제임스 파울러와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교수 팀의 연구에 따르면, 친구가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몇 명의 진짜 친구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만남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유감의 중요성이 또다시 등장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만남보다 만나고 싶은 만남들이 많아야 한다. 


-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두 가지. 음식과 사람이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이면, "The rest are th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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