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칼라일,『과거와 현재』
새해가 되면서 몸이 많이 아팠다. 뒷골이 심하게 당기고 안압이 높았다. 뼈마디까지 다 아팠고 입은 계속 썼다. 밤에는 증상이 더 심했다. 너무 아파서 자지 못하고 일어나서 울기까지 했다. 방에 누워서 앓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새해 다음 날이 생일인 내게는 가장 외롭고 서러운 생일이었다. 이불 말고 웅크리고 누웠더니 다시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내 생애 가장 외로웠던 날은 태어난 날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2.3kg의 작은 아기로 태어났던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팠단다. 그런데 딸의 대가족 시집살이가 걱정된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결혼 전에 보약을 먹여서 모유가 나오지 않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어떤 분유를 먹였을지 짐작된다. 아플 때도 병원이 아닌 동네 약국에 매달린 듯하다. 하도 자주 데려가서 약사가 그 애 아직 살아있느냐고 물었을 정도라고 엄마가 얘기해 준 기억이 난다.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산모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2.3kg짜리 아기를 낳았을까?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몸무게인데 집에 그냥 두었으니 더 아팠겠지. 집 안 분위기가 어땠을지, 산모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무엇보다 아기는 세상에 온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고스란히 다 느꼈겠지.
그래도 삼 남매 중에는 첫째라고 내게 가장 잘해줬다는데 이상하게 내게는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없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에 불효녀인가 고민될 때가 많다.
휴대폰이 생긴 이후로 엄마는 매년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낸다. 올해도 왔길래 아프다고 답장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문자도 전화도 없다. 그게 우리 엄마다. 어쩌면 이런 작은 기억들이 내 속에 무수히 많이 쌓여있는 건 아닐까? 엄마를 떠올리면 차가운 느낌인데 엄마의 몸을 닮아서 똑같이 자주 아픈 나라서 서럽다. 몸이 아프고 형편이 어렵고 시댁살이가 고달파서 엄마는 자식을 자주 안아주고 따뜻한 말 해주는 게 힘들었던 걸까?
내가 평생 먹지 못한 건 모유 한 방울뿐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식을 키워보며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니 내가 얼마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는지 알겠더라. 왜 어릴 때 내가 늘 겁먹은 표정이었는지, 왜 누군가의 작은 관심에 잘 넘어갔는지, 왜 할 말을 못 하고 울기만 했는지, 아무리 이제서 혼자 끌어올려봐야 금세 무너지는 자존감을 갖고 있는지 등이 모두 이해되었다. 햇빛과 자양분을 잘 받고 자란 식물과 물과 영양제를 줘도 자꾸 죽는 식물은 씨앗일 때부터 받은 사랑이 다르다.
낳아서 키워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말에 솔직히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워보니 양육자가 아이에게 어떤 사랑을 줄 수 있는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존재인지 실감했다.
이번에 아프면서 49년 전의 2.3kg 아기의 마음을 온전히 느꼈다. 아프고 외로웠던 그 첫 기억이 작은 몸에 새겨진 채로 내가 살아왔던 거라는 걸 알았다.
원가족을 벗어나 내 가족을 이루고 산지 13년 차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다시 키우는 기분이 든 건 내가 받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아이에게 듬뿍 주면서였다. 그러면서 치유되었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는 아직 작고 춥고 외로운 아기가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아기의 존재를 알았다. 생애 첫 기억을 잊고 새로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라고 꼭 안아주었다. 이제 다시 살몸을 만드느라 나는 연초부터 몹시도 아팠나 보다.
건강한 자는 자신이 왕국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행위, 기쁨을 자유롭게 다룬다. 반대로 병든 자는 종이 되어 고통에 예속된다. 그러므로 건강은 권력보다 위대하고 부보다 값지며, 모든 철학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삶의 조건이다. - 토머스 칼라일-
설사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건강을 지키지 못하면 손해다. 고통 속에 며칠을 지내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건강이 최우선임을 실감했다.
어제 한의원에 갔다. 역시나 자율신경이 깨져있었다. 체력이 안 되는데 정신력으로 강행했던 일들이 몸을 아프게 했을지 모른다. 몸이 약해지면서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것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겨울에 더 자주 아프다. 늘 그래왔으므로 겨울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이제 한약이 오면 열심히 챙겨 먹고 잘 쉬면서 몸을 회복해야겠다.
ON문장: 건강한 자는 자신이 왕국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OWN문장: 이제부터 진짜로 건강은 내게 1순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