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자기 괴로움을 세는 것만 좋아하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by 착한별

살다 보면 나를 스쳐간 사람 중에 좋은 의미로 '내게 왜 그랬을까' 싶은 사람이 있다. 어쩌면 하나님이 곳곳에 숨겨둔 천사들 중의 한 명이 아니었을까?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나쁜 기억들만 떠올랐던 건 아니다. 내게 왜 잘해줬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좋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윤. 영.

고등학교 1년 후배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수원에서 나름 명문여고였다. 양갈래로 딴 머리에 자주색의 단정한 교복을 부러워하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사춘기는 고등학생 때 찾아왔다. 왜 그렇게 반항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공부에서 손을 놓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들 공부할 때 난로에 종이 태워서 엽서 만들어서 편지 쓰고 그랬다.

나는 학원이란 데를 다녀본 적이 없는데 고3 되도록 학원 근처에도 안 가본 나를 보다 못해 작은 엄마가 자신의 남동생이 영어선생님으로 일하는 학원에 '끼워' 넣어줬다. 무료로 다니려니 쪽팔린데 그때는 안 간다는 말도 못 했다. 그렇게 마지못해 몇 번 나간 학원에서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인 학교 후배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아이가 나를 왜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키가 크고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고 공부를 엄청 잘하는 모범생도 아니고 그냥 사춘기가 늦게 온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오히려 그 아이가 얼굴이 아기처럼 뽀얗고 예뻤다. 미소년 같아서 여고생들이 좋아할 인상이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무료 학원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고 나는 그 아이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우리 교실로 프리지어 한 다발을 가져다 놓고 가서 반이 발칵 뒤집히게 했었다. 담임선생님이 어떤 자식이 이 밤에 여고에 꽃다발을 가져다줬냐며 연애하냐며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그 주인공이 나라는 것이 참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사탕, 초콜릿, 편지 등을 자주 선물해 주었던 것 같은데 난 그냥 '왜 하필 나에게?'라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다.



수능을 외국어영역 빼고 다 찍어버린 나의 결과는 처참했고 난 담임이 원서를 써준 외국에 1년 보내준다는 지방 대학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학교 노는 언니로 유명했던 아이 중 한 명과 내가 같은 학교라니. 내가 그 정도로 죽을 쑨 거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게임 종료였다. 내 인생이 하향곡선을 제대로 걷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늘 우울했던 대학 1학년 시절에도 그 아이는 내게 종종 만나자고 했었다. 그러다가 떠밀리듯이 나는 2학년 때 러시아에 갔다. 그냥 왠지 가야 할 것 같았고 내 인생의 첫 도피 같아서 꼭 가고 싶었다.

내가 러시아에 가 있는 동안 그 아이는 마치 군대 보낸 남자 친구에게 하듯이 나에게 지극정성이었다. 나는 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가 아닌 극동지역 하바롭스크라는 도시에 있었는데 90년대 후반인 그때에 한국에서 오는 편지와 소포는 모스크바를 거쳐 하바롭스크로 오는 시스템이라서 오래 걸리기도 하고 비싸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보내온 것들은 한국의 잡지들,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몇 달 치 녹음테이프, 한국 유행 가요 테이프들, 심지어 '다마고치'라는 미니 게임기까지 있었다. 덕분에 나는 러시아에 있으면서도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물품들의 원 가격, 해외택배 보낸 가격들도 엄청났지만 나에게 주려고 녹음했던 그 테이프들의 정성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나서 내가 귀국 후에 그 아이를 만났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왜 중간에 연락이 두절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단 하나 내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나에게 그렇게까지 잘해주었느냐는 것이다. 그 아이도 누군가 기댈 사람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부잣집 외동딸 같은 그 아이가 왜 하필 나에게 그랬을까? 그 당시의 내가 믿음직한 조언을 해주는 인생 선배는 아니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애는 누군가 나를 위해 보내준 사람 같다. 잠시 내 곁에서 사랑을 베풀다 가도록 말이다.


무조건 나를 좋아해 주고 나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나는 아직까지 왜 그랬을까라고 생각하며 믿지 못하고 있다니. 우리가 연이 닿아 사는 동안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꼭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ON 문장: 인간이란 자기 괴로움 세는 것만 좋아하지. 자기 행복은 세질 않아.


아프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게 사실이지만 내게 있었던 행복도 찾아보고 싶었다. 내 인생에 온 좋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있다. 이제 손에 꼽히는 행복이라도 행복을 세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올해는 자기 괴로움보다 자기 행복을 먼저 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OWN 문장: 올해는 자기 괴로움보다 자기 행복을 먼저 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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