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by 착한별

우리나라는 광화문 글판 보유국이다. 30-40자 안팎의 짧은 문장은 바쁘게 오가는 이들을 잠시 멈추게 하고, 읽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문장은 이내 각자의 삶으로 스며든다. 누군가 찍은 광화문 글판 사진은 직접 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찾아간다.

안희연 시인은 계절마다 바뀌는 광화문 글판을 통해 우리를 다녀가는 문장이 있을 때, 우리는 모두 '문장공동체'가 된다고 했다. 문장을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말이 음에 든다.

가로수 꼭대기에 걸린 글이
오래도록 마음을 안아주었다.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가 엮은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책을 읽었다. 광화문 글판 35년을 기념해 2025년에 나온 책이다.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 (김연수, 안희연, 요조, 유희경, 장재선) 인터뷰 글에는 작가들의 광화문 글판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글 쓰는 이야기도 있어서 좋았다. 광화문 글판에 걸렸던 문장들을 모아볼 수 있고 원문 전체까지 읽을 수 있어서 소장가치가 있다.

2023년 여름 광화문 글판, 안희연

계절별로 나눈 광화문 글판 글들 중에서 오늘의 나에게는 안희연 시인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시집『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 나오는 문장이다.

ON 문장: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들고 긴 시간은 짧아지고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삶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움직임은 시간을 견디게 하고 시간은 결국 우리를 다른 풍경으로 데려간다.


가고 있지 않은 것보다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다른 풍경'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가고 있다. 내가 맞이할 '다른 풍경' 무척 기대된다.


OWN 문장: 묵묵히 걷다 보면 시간이 선물해 준 안목과 식견으로 새로운 풍경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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