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1990년대~2000대 초반을 '대중가요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했다. 그만큼 좋은 가사와 멋진 멜로디의 노래들이 많았다. 나는 카세트테이프, CD플레이어, mp3를 다 경험한 세대이다. 어쩌다가 90년대 음악을 들으면 울컥한 마음이 올라오면서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기도 한다. 20대의 나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걷는 걸 즐겼다. 그러면 마치 내가 뮤직 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모든 가사가 왜 다 내 얘기 같던지.
좋은 가사는 어디서 들어본 듯하면서도 또 달라서 끌리는 것
30대 초반에 회사 다니면서 퇴근 후에 작사를 배운 적이 있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까 배우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소규모로 수업하던 김태희 작사가에게 가장 처음 배웠고 그다음에는 그 당시 유명했던 K노트 아카데미에 다녔다. 김형석 작곡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원태연 작사가의 수업을 들었다. 김이나 작사가의 원데이 특강을 들은 적도 있다.
소질은 하고자 하는 마음
원태연 작사가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소질'이라고 했다. 그 말은 나와 함께 작사가가 되겠다고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기회가 없을 뿐 우리는 준비된 작사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김형석 작곡가는 이미 마음으로는 작사가가 되어있던 수강생들에게'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잘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던 그가 우리에게 해주는 조언이었다. 그 당시에는 크게 와닿지 않은 말이었지만 살면서 내가 무언가를 도전할 때마다 계속 그 말이 생각났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인지 늘 먼저 생각했고 잘하지 못하는 건 포기하는 게 정답인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다.
사실 김태희 작사가의 수업을 듣던 시절에 운 좋게 작곡가 창따이의 데모곡에 썼던 가사가 채택되어 나오미라는 가수가 녹음까지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쓴 가사의 노래가 세상에진짜로 나오는 줄 알고 엄청 설렜었지만 결국 음원발매까지이어지지는않았다. 그래도 내게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해서 그 후로도 몇 번 도전했지만 작사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작사가가 되겠다고 아카데미를 다니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데모곡에 가사를 써볼 수 있는 기회는적었다. 그리고 기회가 온다 해도 기존의 유명한 작사가들에게도 가는 데모곡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만의 리그'인 곳이라서 인맥이나 대단한 실력 없이 들어갈 수 없는 세계라는 소문도 돌았다.
싸이월드 때부터 얼짱 작사가로 알려졌던 김이나 작사가를 보며 예뻐서 작사가로 입문하게 된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질투를 하던 시절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찐 실력자였다. 작사는 다른 분야의 글쓰기와 다르다. 음악에 옷을 입히는 일이다. 음악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풍부한데 언어적 센스까지 갖추었기에 실력을 인정받는 작사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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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좀 쓰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뛰어들었던 나는 피아노조차 배운 적이 없는 음악에 '음'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데모곡에 들어간 악기들도 구분 못했으며 마이너가 뭔지도 몰랐다.곡에 들어간 악기들과 곡의 느낌을 알고 쓰는 가사와 그렇지 않은 가사는 다르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다른 친구들이 데모곡의 음을 따서 작사할 글자 개수를 적을 때도 난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당황했던 적도 있다. 음악을 잘 모르고서 음악의 글을 쓰려고 했던 내가 무모했다는 걸 알고서 작사가의 꿈을 접었다.그리고 잊고 살았는데 제 작년에 다시 그 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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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그림 못 그리잖아요?
그림책 세계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배우다가 교육용 그림책 출판 지도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거니 가르치는 사람은 그림을 못 그려도 상관없다는 말에 속아서 비싼 자격증 과정을 들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자격증을 따려면 직접 더미북을 만들어서 제출해야 했다. 어린 시절에 다들 다니던 피아노 학원만 못 다닌 게 아니라 미술 학원도 다녀본 적 없던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절망했다.그림책은 그림의 비중이 글보다 큰 장르인데 아무리 아이들 교육용 출판이라도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 잘 지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그림 좀 그리는 사람이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이었다. 막상 드로잉 할 줄도 모르고 오일 파스텔, 물감 사용법도 모르고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보며 자격증을 진행한 강사는 그림 못 그리는 사람이라고 대놓고 말했다. 그가 말한 그림 못 그려도 지도 가능하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건 그 정도 능력밖에 안 되는 강사가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또 그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접었다.
음악을 1도 모르면서 작사가가 되려고 했던 나도, 그림 1도 모르면서그림책 만들기강사가 되려고 했던 나도 상처만 받았다.
출처: Pixabay
배운 적이 없고 안 해본 것일 뿐 아직 못한다고 생각하기엔 이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안 해 본 것이고 연습의 시간이 없었을 뿐인데 그걸 내가 못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건아니라고 말이다. 누군가와 내가 같은 시간을 배우고 익히거나 연습했는데 내가 못하는 것이라면 인정해야겠지만 배워본 적도 없는 것들에 대해 내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제대로 배워보고 판단해도 늦지않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그만둔 일들을 포기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건 잠시 멈춤이다.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잠시 멈춘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아직 내게 배울 시간은 충분하다. 잠시 멈춘 길을 다시 가고 싶다면 언제든 기초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된다.
아이에게 글쓰기 지도는 할 수 있는데 피아노 치는 건 봐줄 수가 없어서 당혹스러운 날이 있었다. 옛날에 까막눈 어머니가 아이의 숙제를 봐줄 때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똑같은 빈 종이라도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답답했던 날도 있었다.
배우지 않아서, 몰라서, 할 수 없는 건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지금까지는!'이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해도 앞으로는 아니게 만들 수 있다. 내년부터는 내가 배운 적이 없었던 것들을 하나씩 배워볼까 한다. 잘하는 것까지는 어렵더라도 '할 수 있는 것'까지는 만들어놓고 싶다. 우선은 거기까지만 해보자. 하나씩,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