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자리 오른쪽에 큰 책장이 있다. 빼곡히 책이 꽂혀있다. 책상의 왼쪽 한편에 미처 책장으로 가지 못한 책이 탑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아래에 있는 책을 꺼내 읽고 싶다, 생각하다 포기해버렸다. 중간에 있는 책을 빼다 탑이 무너져 버리는 상상을 해버렸다. 사무실 자리에도 파티션에 기대어 책이 늘어서 있다. 너무 많아 쇼핑백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는데, 그 쇼핑백이 1년째 지금 내 방 의자 뒤에 놓여 있다.
꽂혀있고, 쌓여있고, 담겨있는 이 책 중 내가 읽은 책은 반이 채 되지 않는다. 김영하 작가가 그랬었나?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놓은 책 중 읽는 거라고.
책을 사면 기분이 좋다.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하다, 책을 읽다, 광화문 지하철 역의 책 광고판을 지나치다, 동료와 커피를 한 잔 하다, 작은 책방을 둘러보다 운명이라 착각하는 책을 만난다. 표지가 내 스타일이어서, 작가를 좋아해서, 제목이 날 자극해서, 지금 내게 필요한 책이어서 한 권씩 사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중 몇 권은 정말 운명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책은 교과서와 문제집, 전공 서적일 뿐이었다. 학습의 수단이었고, 내 머리에 지식을 욱여넣기 위해 요약하고 정리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책을 통째로 읽기보다는 요약집을 먼저 찾았고, 답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문제에서 내가 미처 외우지 못했던 개념을 책에서 찾아 적어 넣었다. 시험을 보기 전 책을 읽으며 맥락을 이해하기보다는 답안지를 빼곡하게 채울 지식을 더 효율적으로 머리에 집어넣기 위해 동기, 선배들의 노트를 빌려 복사했다.
이러니 책이 재미있을 리 없다. 평균 이상을 소유하고, 평균 이상의 인정을 채우고, 평균 이상의 라이프 스타일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했고 그럴듯한 지식을 손쉽게 얻을 곳은 많았다. 한 권의 책을 통째로 읽는 건 시간 낭비에 가까웠다.
참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불편함은 왜 있는 건지. 책은 읽고 싶은 데 읽기 싫다. 책은 읽어야 좋지만 읽어 내기 어렵다. 오묘하고 불편하다. 알 수 없는 경외감이 책에 서려있다. 내 아이는 책 읽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이유는 경외감 때문일까? 책을 둘러싸고 있는 작가의 아우라나 천년 간 쌓아온 지식 전달 매체로서의 흔들림 없는 지위에서 오는 바로 그런 경외감? 아니면, 책을 읽는 사람이 전부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책을 읽는다고 하니까? 책을 읽는 이유는 성공하기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슬프다. 경쟁은 날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인정 욕구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가 생각난다.
네가 가진 게 많겠니
내가 가진 게 많겠니 난 잘 모르겠지만
한번 우리가 이렇게 한번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해보자고
너한테 십만 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 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 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자고
나는 과연 네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 원을 가진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있어 보이기 위해서? 그래서 책을 읽었나? ‘나 책 읽는 사람이야!’라는 일종의 대외 홍보 용 가면 같은 느낌?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도 있어 보이려고 30대 중반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어떻게 읽기 시작했던,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 이젠 재밌다. 유튜브, 넷플릭스, 요새는 애플tv나 디즈니+가 더 재밌지 않냐고? 뭐… 그래. 더 재밌다. 지하철에서 책을 꺼낼까? 유튜브를 볼까? 고민을 많이 한다. 유튜브가 더 많이 이기는 걸 보면… 책 읽기보다 재밌다는 건 인정.
책이 주는 즐거움은 다르다. 내 말초 신경을 미친 듯이 자극하고, 다 보고 나서 아… 숏츠만 한 시간을 봤네…, 후회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아니다.
스벤 브링크만은 <불안한 날들을 위한 철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설은 삶을 더 정직하게 그린다. 삶의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고 혼란스럽고 다면적인 모습을 그대로 그린다.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삶을 뜻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삶이 수많은 타인과 사회, 문화, 역사와 얽혀 있는지 깨닫게 된다.
온 우주에 나 혼자 있다면 모든 번뇌와 고민은 사라진다. 모든 건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 관계가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다는 면을 인정하지 못하고 단순화하고 해결하려 할수록 인생은 더욱더 불행해진다.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은 책을 읽으면 가능하다. 책에는 타인의 고통이 담겨있고 읽으면 만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이러한 만족감은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 릴스만큼 날 자극하진 않지만 오래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진다.
그래. 공감인가 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정혜신이 <당신이 옳다>에서 말한 공감은 궁금해하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무엇이 그를 힘들게 하는지 온 몸을 던져 궁금해하고 듣는다. ‘그렇구나… 힘들었겠다…’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공감하는 척하는 것이 아닌 진짜 공감은 상대방의 삶이, 삶에 담긴 서사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책을 읽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공감은 피어난다. 소설 속의 인물이 궁금해지고, 그 인물에 대해 대화 나누고 있는 상대방이 궁금해진다. 이 공감은 세상을 친절하게 만든다. 난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친절한 세상에서 살길 원한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