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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크렐 Mar 25. 2021

'이시국' 인천공항을 가 봤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가 본 공항...공허함은 여전했지만


지난해 2월 코로나19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퍼진 이후로 한 번도 공항에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왜 갑자기 공항이 가 보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출국할 일은 전혀 없었기에 공항에 갈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공항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 뭔가 헛헛한 마음을 달랠 것이 필요한 차이긴 했다. 하지만 사실 텅 빈 공항이 그다지 마음 달래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았다. 아무도 없을 게 뻔한, 그야말로 휑하다밖에 할 수 없는 공간을 보고 무슨 힐링을 얻는다는 것인지. 그래도 어쩐지 끌리는 마음에 다음날 바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부터 사람이 심각하게 없었고 예상대로 1터미널 역에서 나오자마자 텅 빈 터미널이 맞았다. 영업을 안 하는 가게가 태반이었고 그나마 영업하는 가게들도 손님이 없이 거의 가게를 놀려두다시피 하고 있었다. 무빙워크를 가르지르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 3층으로 가 보니 평소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출국장이 등장한다.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극소수였고(그나마 외국인) 수속을 밟는 카운터는 대부분 꺼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출항편이나 입항편이나 엄청나게 줄었다. 오전 11시쯤 공항에 도착해서 운항 시간표를 보니 인천공항 출발 비행기가 오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26편밖에 없었다. 2019년 기준으로 인천공항에서 하루 평균 여객기 531대가 이륙했다는 걸 생각하면 코로나 여파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거의 1시간당 2편 정도가 이륙한다는 건데 인천국제공항이 무슨 동네 작은 국제공항도 아니고...도착편도 마찬가지여서 오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26편이 인천공항에 착륙한다. 그만큼 수요가 없다는 거다. 실제로 출입국 플랫폼이랑 창문 너머로 보이는 면세구역을 보니 사람이 정말 없더라.


공항을 돌아다니는 사람의 70%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었고 20%는 어디 갈 데 없어 마실을 나온 듯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얼마 전에 공항에 다녀왔다는 아는 후배도 공항에 관광객은 없고 하릴없이 앉아 있는 노인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하는데 그 말 그대로였다. 공항에 사람은 없는데 시설은 깨끗하고 머무르기도 딱 좋으니 갈 데 없는 노인들이 장시간 앉아 있기에 딱 좋기는 했다. 여기에 탑골공원 이런 데와는 달리 고화질 TV까지 있으니...


그렇게 인천공항은 코로나19 때문에 크게 달라져 있었다. 새로움과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다. 



인천공항을 10번도 넘게 가 봤지만 공항에 발을 들일 때마다 늘 느끼는 두근거림 같은 게 있다. 어쨌든 한국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 자체에서 느껴지는 새로움에서 오는 감정이다. 그런 새로움이 공항을 감싸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행기표를 끊을 때, 출국 게이트로 나가기 전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비행기 시간이 되기를 기다릴 때...순간순간 그것을 느낀다. 그래서 내가 해외여행을 매년 가는 걸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후 '관광비행'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 (비록 가진 않았지만) 좋은 아이디어라고 여겼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행기에서 내리진 못해도 어쨌든 공항에 가서 여행을 한다는 기분은 낼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넓고 광활하며 깨끗한 공간이었을 따름이다. 그냥 전반적으로 멈춘 가운데 1시간에 한두 대씩 편성된 비행기 때문에 그나마 억지로 움직인다는 느낌이었다. 공항에서 '새로움'이 빠지니 뭔가 팥 없는 붕어빵을 집어든 느낌이다. 내가 어떻게 비행기표를 끊어서 출국을 할 예정이었다고 해도 뭔가 헛헛한 감정을 지울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새로움보다는 앞으로 2주간 자가격리돼야 한다는 불안함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항을 가니 헛헛함은 더 배가됐다. 뭐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공항의 풍경이기는 했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 인천공항은 또 처음이기도 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코로나 시국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했고 사실 코로나가 끝나고 해외여행이 가능하게 되기 전까지는 앞으로 공항을 다시 올 것 같지는 않아서 더 열심히 살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코로나19가 닥친 이후 개인적으로도 여러 부분이 변했다. 항상 마스크를 쓰거나 미팅이 취소되거나 하는 일들은 예사다. 업무상 해외출장이 1년에 몇 차례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전무했다. 1년에 한 번씩은 가던 해외여행도 지난해는 넘어갔고 따라서 공항에 올 일이 없었다. 아니, 그냥 기본적으로 밖에를 잘 안 나가려고 했다. 재택근무라서 굳이 밖에 나갈 필요가 없기도 했고 약속이 없으니 혼자 어디 나갈 이유도 없었기에 당연히 그랬다. 


무엇보다 그래도 1년에 몇 번은 오던 이직 제안이 지난해는 끊겼다. 코로나 여파로 회사들이 사람을 전반적으로 잘 안 뽑게 된데다가(그만큼 경력직 공채 경쟁도 치열해졌다) 다들 재택을 해서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으니 추천으로 들어가기도 더욱 벅차게 됐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이후 뭔가 '정지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매년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긱은 들었는데 처음으로 "올해 뭐 했지?"라는 생각이 든 해였다고 할까. 마치 텅 빈 공항처럼 말이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중얼거리며 식당가로 올라가려는데 전에 없던 가벽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사랑, 희망, 평화, 공존이는 글자 사이사이에 각각 '다', '시', '만', '나', '자'가 쓰인 마스크를 쓴 5명의 얼굴이 그려진 그래피티였다. 백인, 흑인, 황인, 남자, 여자 등 전세계인들을 아우르는 5명이 웃는 눈매를 한 채 "다시 만나자"고 말하고 있었다. 작년 8월에 설치된 그래피티 아트라고 하는데 나는 처음 알았다. 


진부한 메시지였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면 당연히 사람들은 다시 만나러 어디로든 갈 것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나는 그것을 몇 분 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봤다. 좌우로 긴 작품이라 몇 번이나 천천히 오가면서 계속 그림을 봤던 것 같다. 머릿속으로는 뻔한 메시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도 왜 자꾸 그곳에 눈길이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야말로 무의식적으로 그런 희망을 누구 못지 않게 강하게 품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수두룩하지만 나 역시 어느 정도는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이직을 강하게 바라고 준비해 왔던 상황에서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큰 마이너스 아니겠는가. 게다가 얼마 전에 야심차게 준비하던 이직이 보기 좋게 뒤엎어진 이후(이 이야기는 나중에 차츰 풀어볼 생각이다) 그냥 내가 처한 이 상황 자체가 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되뇌 본다. 비록 코로나가 언제 지나갈 수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정말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계속 저 그림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당장은 이직에 아깝게 실패하고 너무 상처가 커서 좌절스러움이 가득하지만 평생 그러한 감정에 휩싸여 살지는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도 가까운 시일 내에 기회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공항을 가서도 여전히 헛헛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빈 곳이 채워질 것이라는 생각은 문득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해 낸 것 자체만으로도 공항에 오길 잘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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