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인공지능이다. 1편

유연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by 차PD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습니다. 지인의 따님은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쪽으로 진로를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나름 유사한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조언을 부탁받았을 때 제가 건넨 말은 지인의 예상을 벗어난 메시지였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창작 산업 전체가 바뀌고 있어요,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종잡을 수 없기에 아직 나이가 어리다면 유연성을 기르는 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해요.“


진심으로 드린 조언이었지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는지 ‘유연성을 기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혹은 ‘왜 다름 아닌 유연성이 필요한가’로 대화의 깊이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나의 대답이 맞았나? 혹시 너무 넘겨짚지는 않았나?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봐도 제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름 아닌 저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대답이었으니까요.




유연하다는 것.


작은 충격이나 움직임에도 뼈나 근육을 다쳤다면 유연성 부족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순간적으로 벗어나면서 관절이나 인대가 손상되고 근육 경련이 생기기도 하고요. 특히 새로운 운동을 무리하게 시도하거나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쓰면 부상의 위험은 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운동을 하든지 본 운동 전에 스트레칭을 합니다. 관절과 근육을 이리저리 펴주며 예열을 하고 가동 범위를 얼마간 늘려주는 것이죠. 이렇게 확보된 유연성은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에도 부드럽고 융통성있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처럼 유연함이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 최대한 작은 충격을 받게 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응력, 대응력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요.


출처: OpenAI ChatGPT 이미지 생성



유연이 필수인 세상은 이미 도착해있어요.

물론 제가 지인의 따님에게 조언한 유연함은 고관절이나 햄스트링을 늘려주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삶과 업에 관한 유연성입니다. 만화 그리기에 관심이 많고 능력도 있다면 예상할 수 있는 학업의 절차가 있습니다. 아직 중학생이므로 애니메이션 특목고에 진학하여 일찌감치 특성화된 교육을 받아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거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미대 입시 준비를 할 수도 있죠. 관련 학과로 이름난 대학교에 진학하여 더욱 전문적인 공부를 하는 식입니다. 더 미래를 그려보자면 정적인 표현력을 길러 웹툰 같은 코믹스쪽 작가가 되거나 동적인 요소를 다루는 애니메이터. 나아가서는 내러티브를 시각화하는 비주얼 아트디렉터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선배가 이 길을 걸어왔고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걱정일까요? 제 우려는 이 공식이 앞으로도 통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습니다. 인공지능(이하 AI)은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던 창조적 영역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왔습니다. 한 명의 인간이 평생의 시간을 써도 다 학습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머금은 AI는 프롬프터 한두 줄이면 그럴듯한 이미지를 생성합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는 이미 어느 정도 허물어졌습니다. 더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면 애니메이션은 물론 실사 영상까지도 제작이 가능합니다. 원래는 업체나 프리랜서에게 의뢰되어 제작되었던 아웃풋들이 타이핑 몇 번으로 만들어져 가게 가판대에 붙어있기도 하고 웹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하며,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되기도 합니다. 아직은 기술 자체에 초점이 맞춰있고 ‘할 수 있다’ 정도에 머물러있는 태동기지만 이 기술이 마치 카톡 메시지를 보내거나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듯 누구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수준에 이르면 그림과 영상을 다루는 산업 자체에 어떤 변화가 들이닥칠지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우리의 예상보다 기술 발전이 훨씬 빠르다는 점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통념이 되었고요.


바로 이 지점에서 그 산업을 둘러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유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본질을 읽어내는 통찰과 판단력이 겸비된 유연성이 절실합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어떤 위기가 있을 수 있고 유연성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 복합적인 유연성 안에는 어떤 속성들이 포함될 것인가. 그 유연성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질문이 맺힙니다. 그 대답을 어설프게나마 더듬어가며 곰곰이 생각하고 찾아보고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 함께 담기엔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음 글에 이어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글 : 망했다! 인공지능이다! 2편 https://brunch.co.kr/@chalali/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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