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해지기 위해 해야할 일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이전글 : 망했다. 인공지능이다. 1편 https://brunch.co.kr/@chalali/38
결국 변화의 속도와 규모를 예상하기 어려운 미래를 대비해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체적 유연함이 아닌 직업적 유연함입니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의 유연함은 생각보다 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유연함이 실제로 동작하기 위해 뒷받침 되어야 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죠. 과거의 제가 지금 청소년기를 맞이했다면 어떤 미래를 겪게 될까 상상해보며 이 준비물들을 탐색해봅니다. -다소 과격한 일반화나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를 모색해보기 위함입니다. 특정 직업군이나 산업을 실추시킬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나는 작화에 능했다. 어릴적부터 종이와 아이패드를 오가며 드로잉을 했고 누군가가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웹툰 작가 혹은 애니메이터라고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 부모님을 비롯한 선생님, 친구들까지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고 그것이 그림을 지속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그 방향으로 미래를 꿈꾸었다.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장치들을 한 화면에 밀도있게 그려넣기를 좋아하고, 그 요소들이 어우러져 복잡해보이지만 눈길이 오래 머무는 작업물을 사랑했다. 회화에서는 피터 브뤼겔이나 히에로니무스 보스같은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고, 일러스트로는 마틴 핸드포드의 ‘월리를 찾아라’를 마르고 닳도록 봤다. 디테일을 잘 그려넣기 위해 수많은 장면들을 모작하고 인체 드로잉을 학습했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충분하지 못했고 미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그림의 꿈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기술의 변화는 예상치 못한 규모로 내 인생을 흔들었다. 사회로 나와 본격적인 직업을 갖기 전에 이미 미국의 대형 기업들을 중심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의 소형화 단계에 접어 들었다. 소형화란 이미지나 영상을 잘 만들어 내는 수준을 넘어 효율적인 GPU 사용과 시스템 최적화로 개인이 저렴한 비용으로도 누구나 만족할 만한 품질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이미지 몇 장, 혹은 url을 던저주고 원하는 타입의 아웃풋을 지시하면 몇 분안에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제 영화 감독을 꿈꾸는 학생도 집에서 컴퓨터 한 대와 월정액 요금이면 시놉시스, 시나리오 작성부터 한편의 실사 영화(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와 영화 포스터,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수많은 미디어 아웃풋들을 앉은 자리에서 반나절 안에 만들어낸다. 단순 셈으로도 그래픽 디자이너, 촬영 스태프, 배우, 고가의 촬영장비, 편집자의 역할과 비용이 불필요해졌다.
종합 예술이라 불리우는 영화가 이러한데, 그림의 영역은 더 큰 허무와 충격에 휩싸인다. 실제로 그림 그리기에 전혀 소질이 없던 대학 동기는 AI를 활용하여 캐릭터를 개발했고, 실사 분위기를 곁들인 짧은 애니메이션 콘텐츠로 유명한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그렇게 몇 개의 IP를 개발해서 광고를 비롯한 IP수익화로 직장인 몇 배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평생 그림 그리기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나와는 비교가 안되는 속도와 완성도로 산출물을 만들고 업로드를 하며 채널관리나 피드백도 AI가 도맡는다. 그 친구의 노력을 폄훼할 수는 없다. 그만큼 부지런히 공부했고 그 지식을 행동으로 옮겨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문제는 그 사이 나는 무엇을 고집했느냐다. 그래도 그림은 인간이 그려야한다는 정통성? 기계가 학습하는 오리지날리티를 끝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감? 미켈란젤로가 허리를 잃으면서까지 추구했던 디테일의 장인 정신? 미디어는 사람들의 취향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취향이 미디어를 따라간다. 픽셀로 그림을 표현하는 손바닥만한 기기로 대부분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지금. 대중은 디테일에 관심이 없다. 흥미를 끄는가, 아닌가. 그래서 내가 무한대로 리스팅된 콘텐츠 중 이 콘텐츠에 기회 비용(시간을 포함한)을 지불할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다.
피로감과 허탈감에 몸둘 바를 몰랐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명색이 생산하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AI는 만들어 둔 것을 기반으로 그럴싸한 조합을 하는 것이지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으로 내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본다. 내가 그린 그림들이나 좋아하는 작품들을 살펴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추상적이지만 표현하려고 하는 방식은 매우 구체적이고 논리적이다. 그림이라는 자유로운 수단을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요하리만치 개연성과 타당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대부분 무엇인가 희망이 깃든 의문점을 시니컬한 상황을 통해 던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문제 해결을 통한 희망 전달하기. 그림의 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내 작업의 본질은 여기에 있었다.
글의 시점을 지금으로 옮겨오겠습니다. 맞습니다. 제 얘기입니다. 작업의 본질. 그러니까 제가 스스로 세상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해하고나니 새로운 시야가 트였습니다. 더 이상 그림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단이 아니라 문제에 집중합니다. 시각화라는 장치를 유용하게 활용하되 그것이 비단 디자인, 그림에 국한될 필요는 없습니다. AI를 활용해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됩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 메시지는 일종의 직업 철학으로 동작하여 제 직장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회사 곳곳에서 어떤 지점에서 참여할지, 어떤 결과물을 창출할지 의사결정의 기반이 되는 일종의 오픈소스가 됩니다. 이게 맞는지 저게 맞을지 불필요한 고민의 시간이 줄어듭니다. 나의 역할과 사명이 선명해집니다. 어디에도 붙여넣을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유연성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술과 도구가 출시되기에 어떤 형태의 미래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심각하게 두렵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실마리는 찾은 느낌입니다. 결국 소비하는 자는 인간이고, 제 출발점과 도착지는 예외없이 인간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생산 기법을 버리고 모두가 새로운 기술에 맞추어 차세대의 결과물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워드프로세스가 발명되었고 그것이 아무리 편리한 글쓰기 방법이라고 해도 원고지에 연필로 사각사각 글쓰는 행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변화의 시점이 도래했을때 글을 생산하는 생산자로서 나는 어떤 태도로 글에 임할 것인지, 글쓰기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숙히 고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 고찰의 결과로 변화를 내 안에 융합할때, 오직 사고와 인식의 유연성만이 자유로운 의사 결정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나처럼 하면 된다’로 귀결되는 것 같지만, 지금도 부단히 찾고 있고 노력중에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 발견한 힌트를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 의심하라는 의미입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큰 변화를 몸으로 겪고 있는 과도기에는 '늘상 그래왔던’ 기성세대들의 관성에 편승하지말고 멈춰서고 숨을 고르고 의심해야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니까 화가나 작가가 되야지. 라는 일차원적 접근은 이제 통용되지 않습니다. 왜 그림인가. 작가란 무엇인가. 내 작업물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잘게 부수고 하나하나 의심하고 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지루하고 괴로운 일이지만 이 과정을 거쳐 나만의 답을 찾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앞으로 더 크게 벌어질 겁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생각하고 결정했다면 그때부터는 생각을 버리고 몸으로 부딫혀야 합니다. 될지 안될지 고민만으로는 결론지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시도와 작은 실패와 경험들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길이 보입니다. 그냥 해봐야 합니다. 그냥 해봐야 압니다.
왜를 자문하고, 개념을 이해하고, 시점을 바꾸고, 사유해야 합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며 가장 하기 싫어하는 작업입니다.(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에 늘 열쇠가 있습니다.) 좋은 글을 읽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글을 선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의 심판입니다. 오랜 시간 살아남은 텍스트를 고르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고전이라 부르는 위대하고 따분한 인류의 유산이 다행히도 아직 서점에 잔뜩 꽂혀 있습니다. 짧은 쇼츠에 언급된 자기개발성 메시지 몇 줄로는 인생이 변화하지 않습니다. 글은 충분한 맥락안에서 생각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앞서 말씀드린 행동양식들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1편 서두에 언급한 지인의 따님에게 드리고 싶었던 제 조언은 ‘좋은 책을 많이 읽을 것'이었습니다. 아아, 정말 세상 뻔하고 고루한 조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 풀어 헤친 이야기를 모두 해줄 수 없으니 그냥 간편히 일축한 문장입니다. 대 인공지능 시대에 앞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뷰티샵을 운영하는 지인의 말로 요새 그렇게 속눈썹 펌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로봇이 못하는 일이니까’ 라는 말과 함께요.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간병하는 요양사분들도 기계에게 일자리를 뺏길 걱정은 그래도 없다며 안심합니다. 인공지능과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속눈썹펌과 요양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기어이 나는 왜 태어났을까. 그저 남들 따라 같은 방향으로 달려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던 과거와는 다릅니다. 견고한 기계의 장벽 앞에서는 깨어있는 사람만이 인간다움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담대히 마주하고 자기만의 답을 반드시 내려야하는 시대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잔인하리만치 냉철하고 정밀한 기계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요.